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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위기를 기회로' 반도체 신화 쓰다

기사입력 : 2020-10-25 13:56

(최종수정 2020-10-25 19:29)

기술강국 신념으로 이룬 반도체·휴대폰 사업
'숙원' 자동차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어받아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삼성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이 회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인 반도체· 휴대폰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끊임없는 위기 의식과 도전정신이 바탕이 된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 뚝심으로 이룬 '반도체 1등'

1974년 삼성은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 모든 임원들이 반대했고 이병철 선대회장도 마지막까지 주저했다. 이건희 회장은 "내 개인돈으로라도 인수하겠다"며 밀어붙였다.

1983년 마침내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1994년 삼성 반도체 사업은 세계최초로 64Mb D램 개발에 성공하며 결실을 맺었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합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이건희 회장의 일성처럼 한국이 반도체에서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삼성은 현재까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1등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20년 2분기 매출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은 44%이며, 낸드플래시는 31%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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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 회장.


◇ 끊임없는 혁신으로 만든 휴대폰 신화

이건희 회장은 1994년 "마누리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발표한다.

그가 점찍은 사업은 휴대폰이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고 예견했다.

삼성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은 1995년 한국 시장에서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 점유율로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당시 한국은 모토로라가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애니콜 신화'는 2011년 나온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가 이어받는다. 이 회장은 2008년 비자금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후 2010년 복귀한 상태였다. 당시 이 회장은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 사업과 제품은 10년 만에 사라진다,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잡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동차 꿈' 이재용닫기이재용기사 모아보기에게

이건희 회장이 모든 사업에서 성공한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 사업은 이 회장의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았다.

삼성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당시 정치권과 기존 자동차업계의 완강한 반대에도 사업유치를 원하는 부산 지역 여론이 힘이 됐다.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개인적으로도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보유한 1억원 이상 자동차만 124대, 4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1998년 닛산과 기술제휴를 통해 세상에 나온 중형세단 1세대 SM5는 삼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델로 남았다. 당시 IMF 사태로 삼성차 적자가 불어나자 신차 출시 1년만에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다.

이건희 회장의 '못 다 이룬 꿈'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이어받는 모습이다. 자동체 제조업이 아닌 차량용 반도체, 전장 등 미래차 핵심부품 사업을 통해서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담당 임원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공략 없이 비메모리 1등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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