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과 보험업계, 의료계 등이 한데 모인 ‘대화의 장’ 마련 역시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10년째 공회전만 돌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또 한 번 멀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손의료보험은 소액 보험금을 빈번하게 청구하는 형태를 띠므로, 번거로운 청구 절차로 인해 소액인 보험금 수령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당국은 물론 보험업계 역시 청구간소화에 대한 논의를 수 년 째 거듭하고 있지만, 매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공회전만 돌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보험업계 역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인해 늘어날 보험금 지급을 우려해 이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보험 소비자들의 니즈가 늘어나고, 청구과정에서 번거롭고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줄여보려는 취지에서 청구 간소화 찬성으로 돌아선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계만큼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시 발생할 부작용들을 우려하며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의협은 성명문을 통해 의협은 보험사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의료기관으로부터 보험사가 원하는 환자의 건강과 질병 정보를 마음껏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보험사들이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새로운 보험 가입과 기존 계약 갱신을 거부하거나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청구 간소화 논의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관계 부처의 이기주의가 개혁을 늦추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서울 노원갑)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심평원은 자신을 중계기관으로 하여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으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험업 정책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최종구닫기최종구기사 모아보기 전 위원장은 “심평원을 활용하게 될 경우 청구 절차가 굉장히 간편해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며 의료계가 환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바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의 눈치를 보면서 “요양급여의 심사, 평가와 관계없이 실손보험계약자 등과 의료기관, 보험회사 간 서류의 전송과 관련한 업무를 위탁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심평원도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위탁업무는 건강보험 이외의 다른 법률에 대해 급여비용의 심사 또는 평가업무로 한정되어 있어 개정안이 위탁하는 내용은 건보법 개정 없이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같은 법 제63조 제1항 제6호는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업무를 심평원이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미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건강보험 관련 보건의료빅데이터사업,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사업, 요양기관 정기 현지조사 사업,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 조정 업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고용진 의원실은 “실손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본인부담금을 보상하는 보험이고, 실손의료보험의 진료비 관련 증빙서류(계산서, 영수증 등)에는 급여와 비급여 정보가 모두 나타나므로, 이를 전송하는 업무가 건강보험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매우 깊히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보험금 청구 절차 개선을 위한 ‘보험중계센터’ 등을 신설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현재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체계는 이해 당사자인 피보험자, 요양기관, 보험회사 모두에게 불합리한 제도"라며, "요양기관이 증빙서류를 온라인상에서 보험회사로 직접 전송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진다면, 피보험자의 불편과 시간 소모, 미청구 사례가 줄어들며, 요양기관의 행정력을 아낄 수 있고, 보험회사는 지급행정 비용 및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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