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실제 가치가 있는 식량이나 옷가지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조개껍질과 교환해주었다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내가 1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가을에 수확한 쌀에 대한 대가로 받은 조개껍질들이 내년 봄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서 수확될 과일과 교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타인과 공유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은 명확한 순기능이 있었다. 우선 잉여 식량에 대한 판매가 가능해짐으로써, 흉작일 때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고, 잉여 식량이 유통됨으로써 전체의 소비량이 늘 수 있었고, 다양한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영양 상태가 좋아질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특정 품목에 대한 전문화를 통해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자본이 축적됨으로써 세대 간의 협업이 가능해졌고, 더 나아가서는 옆의 부족의 식량을 약탈하는 것 보다, 식량을 빌리는 것이 보다 이익이 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짐으로써 부족간 전쟁이 발발하는 사례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수많은 부족들이 어떻게 조개껍질의 가치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돈은 인류를 하나의 큰 경제 공동체로 엮어 주는 기능을 한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금태환 신용화폐 또한 완전하지 않았다. 준비통화를 금과 일정한 비율로 바꿔주겠다는 최대 금보유국의 약속은 자유로운 국제 교역을 촉진시켰지만,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로 일컬어지는 구조적 한계점이 있었다. 트리핀 딜레마의 핵심은 국제 경제의 유동성과 준비통화 발행국의 적자 간 양의 상관관계이다.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미국은 금 채무는 늘어났다. 결국 1970년대 수많은 국가들의 금 태환 요청에 미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하였고, 지난 반세기는 전적으로 신용에만 기반한 불태환 달러 기축화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불태환 화폐의 최대 단점은 환율의 불안정성이었다. 1970년대 이후 달러는 이전과 달리 유동성 공급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었는데, 만일 공급를 받쳐줄 수 있는 달러 수요가 없을 경우에는 그 가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사우디 등 우방 국가들과의 정치적 협약을 통해서 달러의 수요를 만들어 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금의 속박에서 벗어난 달러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떠한 화폐보다 원가가 적은 “돈의 신상품”이 되어 세계화를 가속시켰다. 이에 더해 1990년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어떠한 형태의 돈보다도 생산과 운반, 결제가 빠르고 간편한 디지털 화폐까지 등장함으로써, 우리는 어느 때 보다 빠르고 간편한 형태의 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신 버전의 상품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첫 번째로 원가가 없는 불태환 기축화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브레이크 장치가 없었다. 즉, 경기가 과열된 초과공급 상태에도 통화량을 비교적 손쉽게 팽창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행했던 양적 완화는 정치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결단이었지만, 금융자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양하게 됨으로써 자산가와 비자산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풍부하고 저렴한 달러는 해외로 더욱 빠르게 흘러나가면서 미국의 국제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금융자산 가격 부양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한 소외된 다수는 금융기관의 해체, 고립주의, 무역전쟁 등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들을 각기 형성하였다. 결과적으로 국가중심의 정치적, 정책적 의사결정에 기반한 불태환 기축화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존재의 이유인 자유시장의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가져왔다. 두 번째로 디지털화된 전자화폐는 마이너스 금리 적용 등 정책적 목표를 이루는데 매우 유연하게 활용 가능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즉, 국가가 주도하는 불태환 화폐의 “정치성”이 국가 권력에 대한 정치적 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이 극에 달하던 2009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개발자들이 주도하는 대안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하였다.
비트코인은 기존에 존재했던 돈의 기능과 특성을 확연하게 초월하는 혁신이 있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결국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돈이 결제되는 조건을 프로그래밍 할 수도 있어, 금융 계약을 자동화 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참여자 간의 합의에 의해 발행과 운영 규약이 유지 관리되니 2008년의 양적완화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인터넷 민주주의 화폐였다. 또한 국가나 은행 등의 신용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프라이빗 키를 보유하는 개인이 소유하며 통제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를 상쇄시킬 수 있었다. 불태환 화폐 시스템에 대하 비판에서 출발한 비트코인이라는 실험이 불과 10년만에 시총 100조 가까운 규모로 성장한 것은 위에서 열거한 요인들과 더불어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이 기존 오프라인 기반 경제를 디지털 세계로 빨아들이고 있는 21세기의 사회적 트렌드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하기도 하였다.
물론 비트코인은 돈으로서 사용되기에는 가치 변동성이 심하다는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아직 안정적인 수요가 없기 때문이고, 안정적 수요 창출의 전제조건인 핵심 인프라가 부재하다. 첫 번째로 비트코인은 널리 통용되기 위한 금융 인프라와 제도가 미비하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해킹 사고와 시장 교란행위가 판을 치고 있으며, 예치 기능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국내에서는 헷지를 위한 파생상품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도 내려지지 않았다. 금융 인프라와 제도가 미비하니, 포트폴리오 헷징을 위한 순수 금융 수요조차 쉽게 창출되지 못 하고 있다. 두 번째로 비트코인의 소위 “확장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술 인프라가 아직 완성되지 못 한 상황이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신뢰를 이용한 고급 금융 계약 애플리케이션은 차치하고, 초당 처리할 수 있는 트랜젝션의 숫자 자체가 제한적이니 단순 결제, 송금 수요를 충분히 만들지 못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금융인프라와 기술인프라가 아직 미완성 상태이다 보니 안정적 수요가 만들어지지 못 하고 있으며, 돈으로 널리 통용되기에는 가치 변동성이 너무 높다.
물론 “돈”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민간 주도의 암호화폐가 널리 통용되는데 실패하여 “인터넷 대안화폐”로도 자리잡지 못 할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이 인터넷 환경에서 데이터의 상호호환성을 높이는 기술로서 자리를 잡는다고 하면, 적어도 하나의 개방형 블록체인은 생존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 환경에서 수 많은 블록체인 상 기록되어 있는 데이터의 신뢰성을 공증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환경에서 작동되는 블록체인은 암호화폐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그 뜻은 즉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된다고 하면, 각종 블록체인들을 연결 시켜주는 가장 널리 쓰이는 개방형 블록체인이 적어도 한 가지는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 블록체인의 암호화폐에 대한 범용적이고 안정적인 실수요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특정 부문에서 쓸모가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특정 부문에서는 “인터넷의 돈” 역할을 할 수 있는 암호화폐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국내에서 암호화폐는 나쁘지만 블록체인은 좋다라는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블록체인은 기술로 인정하지만 암호화폐는 투기꾼들 혹시 사기꾼들의 도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본 기고문에서 필자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결국 암호화폐도 “기술”이라는 것이다. 돈 또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온 사회적 발명품이며, 암호화폐 또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과 함께 등장한 인터넷에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돈의 혁신적 기술”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이 개방된 환경에서 데이터의 자유로운 상호호환성을 증진시키는 “좋은 기술”이라고 가정 한다면, 암호화폐라는 돈의 실험은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