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카드사 고위 관계자가 최근 기자와 만나 자리에서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계속 낮춰 제로(0%)가 되면 영세한 중소 가맹점주들이 만족하겠느냐”며 이 같은 볼멘소리를 냈다.
카드 수수료 인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이후 9차례나 있었다. 통신요금과 함께 지난 20여 년간 선거 등 정치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 선심성 단골 메뉴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부분 후보들은 카드 수수료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카드사 수익과 직결되는 수수료율이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결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영세 소상공인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를 지시하고 최종구닫기

시장을 배제하고 정치논리를 대입시켜 시장 자체를 망가뜨린 사례는 많다. 미국은 2011년 직불카드 수수료를 건당 21센트로 제한하고, 정산 수수료율도 결제액 대비 0.05% 이하로 못 박았다.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개정안이다. 카드사 이익을 줄여 소비자와 가맹점 혜택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수익이 떨어진 카드사들은 고객 혜택을 줄이고, 카드 발급을 축소했다. 고객들은 카드를 버렸고 시장은 망가졌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전업계 카드사들은 낮은 연회비 대비 많은 혜택으로 인기를 끌던 '알짜카드'의 신규 발급을 중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카드사들 수익은 카드 결제사업인 본업이 아니라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서 나온다. 이미 왜곡된 구조다. 외국 카드사들은 본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경기 침체에다 과당경쟁으로 신음하는 중소 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카드업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금융시장의 경쟁 원리는 무시한 채 문제를 ‘관치 금융’으로 해결하려는 오래된 병폐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규칙을 만들고 시장질서가 유지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관치 금융으로 인한 부작용이 기업과 소비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밀어붙이더니 그 실패의 책임을 카드업계에 전가한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카드사들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소형사 중심으로 2~3년 뒤에는 대거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펼치는 가격통제는 ‘업(業)의 본질’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이른바 ‘교각살우(矯角殺牛)’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신용카드업 관련 종사자의 실업이 느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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