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이라는 시간은 공과를 평가하기에는 다소 짧은 기간이지만, 현성철 사장은 업계 1위 삼성생명의 CEO에 걸맞게 짧은 기간에도 적지 않은 행보를 보이며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부서 또한 구매팀, 전략지원팀, 경영지원실 등 전 분야를 경험하며 폭넓은 전문지식을 얻었다.
특히 삼성화재 전략영업본부장 부사장직을 맡았던 시절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통했다.
또한 현 사장은 저익 취임 5일 만에 자회사 주식 2500주를 장내 매입할 정도로 책임경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현성철 체제 출범 이후 100일째를 맞이하는 삼성생명은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또한 2019년 금융당국의 금융계열사 통합 감독안에 따른 대형사 지배구조 개편 문제 해결 역시 중요한 당면과제다.
삼성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수많은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어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 금산분리법과 보험업법 등 관련 법망에서도 하 역시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는 것 역시 현성철 사장의 당면 주요과제로 지목된다.
◇ 치아보험 등 신상품 적극 출시.. 사업비 증가 등 체질개선 진통 불가피
현성철 사장은 정식 취임 전인 사장 내정자 시절부터 직원들에게 보다 강력한 영업력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던 현 사장의 취임에 삼성생명 임직원들이 적잖이 긴장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로 현 사장은 삼성화재 부사장 재임 당시 우수한 영업실적을 이끌었던 전적이 있다.
그가 부사장을 지내던 2016년 당시 삼성화재의 순이익은 8606억 원으로 전년대비 5.8% 늘었으며, 이듬해인 2017년에도 9602억 원을 기록해 11.6%의 상승세를 보였다.
본격적으로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현성철 사장은 철저한 성과주의를 표방하며, 지점장의 나이와 무관하게 능력과 성과에 따라 중용하겠다는 철칙을 밝히기도 했다.
이를 장려하기 위해 삼성생명은 2018년 1분기 들어 전례에 없던 신상품 러시를 선보이며 시장 장악에 나섰다.
우량고객을 대상으로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영업방식을 선보이던 삼성생명이 노선을 전환해 기존에 취급하지 않았던 상품들을 연달아 출시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1월에는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 2월에는 유병자를 위한 간편가입 유니버설 종신보험, 3월에는 치아보험을 출시했으며, 6월에도 3대질병과 당뇨를 보장하는 종합건강보험 신상품을 내놓는 등 공격적인 영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3월 출시된 치아보험 신상품은 출시 첫 날 2만5000건의 판매건수와 함께 12억 원이 넘는 초회보험료를 확보하는 등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경쟁 대형사들이 500~600%의 높은 인센티브로 빈축을 샀던 것과 달리 과도한 인센티브도 없이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해당 상품은 ‘위험률’ 항목에서 생명보험협회로부터 6개월간의 배타적 사용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구강 건강자를 대상으로 신규 위험률 16종을 개발해 구강 건강자형(진단형)과 일반형을 구분한 점이 유효했다는 평가다.
위험률이 낮은 구강 건강자용 치아보험은 면책과 감액기간 없이 가입 즉시 보장해주고 보험료도 일반형보다 최대 40% 할인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6월 출시된 종합건강보험 역시 '고지우량체' 제도를 도입해 고객 편의를 늘리고자 했다.
고객이 별도 진단 없이 체질량과 흡연여부를 ‘고지'하기만 해도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식이다. 가입 이후 꾸준한 건강관리를 통해 우량체 기준을 충족하면 추후 보험료에 대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사장은 소비자권익보호를 위해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해당 위원회는 교수, 변호사, 의사 등 외부 전문가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됐으며, 이경주 홍익대 경영과 교수를 초대 위원장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삼성생명과 소비자 사이에 발생하는 이해상충 사안을 심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소비자 권익 보호정책을 제시하는 등 자문위원 역할도 겸한다.
해당 위원회의 발족은 김창수 전 사장 당시 불거졌던 보험금 늑장지급이나 고객불만 민원 불수용률 불명예를 타파하기 위한 현 사장 나름의 소비자 보호 방안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현 사장은 온라인에서만 진행되던 고객패널 제도를 오프라인까지 확대하는 등, 기존에 삼성생명에 쏟아지던 ‘고객관리 소홀’ 비난을 적극적으로 타파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처럼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사업비용 지출이 늘어나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배당이익이 줄어들면서 1분기 순이익이 30% 이상 급감한 것이다.
삼성생명의 연결 재무제표 공시에 따르면 이들의 1분기 당기순이익(지배기업 소유지분)은 3899억 원으로, 전년 동기 5663억 원에 비해 1764억 원(31.1%) 급감했다.
매출액 역시 9조1704억 원에서 8조99억 원으로 1조1605억 원(12.7%) 줄었으며, 영업이익 또한 7990억 원에서 5529억 원으로 2461억 원(30.8%) 감소했다.
수입보험료도 지난해 1분기 5조7260억 원에서 5조2840억 원으로 4420억원(7.7%) 줄었다.
반면 해당 기간 사업비율은 7.1%에서 7.8%로 0.7%, 손해율은 81.8%에서 84.1%로 2.3% 상승했다.
신상품 개발 및 출시와 더불어 판매채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과정이나 소비자권익보호위원회 설치 및 운영 등으로 사업비가 늘었고, 겨울철 한파의 원인으로 보험금 지급이 많아져 손해율이 늘어난 것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1분기 순이익 감소는 삼성생명만이 아니라 보험업계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며, “그룹 자체의 기초체력이 워낙 튼튼한 편이라 특별히 문제될 정도로 순익 감소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 금산분리법 넘었지만 보험업법 문제 남아…19조 매각 ‘숙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지난달 30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0.42%(2700만 주)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블록딜)으로 매각했다.
그 중 삼성생명은 1조1790억 원에 해당하는 주식 2298만3552주를 처분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899만843주를 연내 전량 소각하기로 한 것이 원인이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삼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10%를 초과하게 된다.
이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각각 8.90%, 1.55%로 높아져 양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은 10.45%로 올라간다.
금융당국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분리법)’에서는 그룹 금융계열사의 제조계열사 지분 보유를 제한하고 있기에, 삼성 보험사들이 서둘러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번 블록딜은 금산법 위반 소지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및 지배구조 개편에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더욱 지대한 영향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은 총자산 대비 3% 이상 주식 소유 제한 기준을 ‘취득가액’에서 ‘시가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을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 가운데 적은 금액으로 보유할 수 있다.
삼성생명은 이 법률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인 8조5000억 원 정도까지 보유할 수 있다.
취득원가 기준 삼성전자 지분은 5600억 원 가량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 주식 8.23%의 가치는 26조 원 가량으로 급증한다.
따라서 삼성생명은 이 경우 19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소각해야 하기에 부담이 큰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블록딜 결정에 발빠르게 나선 것을 두고, 삼성이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 표시’를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조에 달하는 대규모 지분 매각에 나서기 전 시간벌이 겸 숨고르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실제로 금융위 관계자는 “블록딜 이후 보험업법 관련 문제는 추후에 종합적인 검토를 거쳐 다시 진행될 예정”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번 블록딜 매각은 삼성이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긴 전략적인 한 수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현성철 사장이 삼성의 다른 금융 계열사들을 거치며 순환구조 문제에 대해 오랜 경험을 쌓았고, 지배구조 개편의 키를 쥐고 있는 태스크포스(TF)인 ‘금융 경쟁력 제고TF’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통합감독 대비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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