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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쫓다 증시에 도착한 거인:러쥐 로보틱스(Leju Robotics)의 시대 [전병서의 中 첨단기업 리포트⑭]

기사입력 : 2026-09-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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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도 성화 봉송, 그 로봇의 정체

2025년 11월 3일, 중국 제15회 전국체육대회(全运会) 성화 봉송 현장. 중국 로봇 역사에 한 줄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키 175cm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1.6kg의 성화를 한 팔에 들고 사람처럼 뛰며 다음 주자에게 전달했다.

▲‘5G-A’ 휴머노이드 로봇(사진=상하이정췐바오)이미지 확대보기
▲‘5G-A’ 휴머노이드 로봇(사진=상하이정췐바오)

보조 기술자도, 리모컨 조종도 없었다. 5G-A 네트워크와 자체 모션 제어 알고리즘으로 완전 자율 성화 봉송을 해낸 것이다. 2025년 2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같은 로봇이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 성화 주자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배터리를 잡아먹고, 관절 윤활유를 굳게 만드는 극한의 조건에서 이 로봇은 버텼다.

이 로봇의 이름은 “쿠아보(KUAVO·夸父)”다. 그리고 이 로봇을 만든 회사가 러쥐 로보틱스(Leju Robotics·乐聚机器人)다. 쿠아보라는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3,000년 전 중국 신화로 돌아가야 한다.

쿠아보(夸父): 신화 속 거인이 현실이 되다

고대 중국 신화집 『산해경(山海經)』과 『열자(列子)』에는 '쿠아보(夸父)'라는 이름의 거인 신화가 등장한다. 쿠아보는 엄청난 체격을 가진 신화 속 거인족의 수장으로, 어느 날 황당하고도 웅장한 결심을 한다. "태양을 잡아오겠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끝까지 태양의 뒤를 쫓았다(夸父逐日). 달리면서 목이 말랐다. 황하(黄河)의 물을 통째로 마셨다. 위수(渭水)도 마셨다. 그래도 모자랐다. 북쪽의 큰 늪을 향해 달리다가, 결국 힘이 다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 죽는 순간 그가 쥐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고, 그 지팡이는 거대한 복숭아나무 숲이 되어 훗날 지나가는 여행자들의 갈증을 달래줬다.

이 신화에서 쿠아보는 단순한 '무모한 실패자'가 아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집념의 화신이고, 자신은 죽어도 미래를 위한 씨앗을 남긴 자다. 중국인들은 이 이야기를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끝까지 쫓는 자만이 무언가를 남긴다"는 의미로 해석해왔다.

러쥐 로보트의 창업자 냉효곤(冷晓琨·Leng Xiaokun)이 자신의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 이름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8년 '쿠아보 프로젝트'를 공식 시작할 당시, 휴머노이드 로봇은 중국에서 "교육·연구용 소형 로봇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자본도 시장도 대중도 관심 없는 냉대 속에서 냉효곤은 말했다. "로봇을 만드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쿠아보가 태양을 향해 뛰었듯, 러쥐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연혁으로 보는 러쥐의 궤적: '교실'에서 '증시'까지이미지 확대보기
연혁으로 보는 러쥐의 궤적: '교실'에서 '증시'까지

하얼빈공대 박사가 선전에서 창업하다

러쥐의 신화는 1992년생 청년 과학자 냉효곤(冷晓琨•Leng Xiaokun)에서 시작된다. 중국 공과대학의 산실 하얼빈공업대학(哈尔滨工业大学·HIT) 로봇연구소 출신 박사다. HIT는 중국 최초의 우주 소형 위성을 만들고, 달 탐사 로봇 기술을 개발한 곳이다. 국방·항공우주·로봇 분야에서 중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이다.

태양을 쫓다 증시에 도착한 거인:러쥐 로보틱스(Leju Robotics)의 시대 [전병서의 中 첨단기업 리포트⑭]

2016년, 만 23세의 냉효곤은 HIT 동료 대학원생들과 함께 선전(深圳)에 러쥐를 창업했다. 그런데 창업 당해 텐센트가 5,000만 위안(약 100억 원)의 전략 투자를 집어넣었다. 완성된 제품도 없는 신생 스타트업에 텐센트가 왜 거액을 투자했을까.

답은 '교실'에 있었다. 냉효곤이 창업과 동시에 내놓은 첫 제품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니었다. 30cm 크기의 교육용 로봇 AELOS(에일로스)였다. "로봇 수업을 실제로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었고, 이 로봇은 중국 전국 수천 개 학교 로봇 교육 교재로 채택됐다. 러쥐는 이 시절 수만 대의 소형 로봇을 팔면서 결정적인 자산을 쌓았다. 양산 공급망, 품질 관리, 현장 피드백 소화 능력, 이것이 훗날 쿠아보 30분 1대 생산의 토대가 됐다.

이것이 러쥐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중국의 수많은 로봇 스타트업이 "완벽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꿈꾸며 연구실에서 10년을 보낼 때, 러쥐는 소형 로봇으로 현장 경험을 쌓고 있었다.

러쥐 로보틱스 기업 개요이미지 확대보기
러쥐 로보틱스 기업 개요

쿠아보가 특별한 이유: '뼛속까지' 화웨이

쿠아보는 단순히 '걷는 로봇'이 아니다. 화웨이의 오픈소스 하모니OS(HarmonyOS)를 기반으로 러쥐가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 KaihongOS가 로봇 전체에 뼛속까지 박혀 있다. 여기에 화웨이 클라우드의 판구(盤古) 구현 AI 대형 모델이 올라간다.

쉽게 말하면 "로봇의 몸은 러쥐가, 신경계와 두뇌는 화웨이가, 그 위에 러쥐가 다시 소프트웨어를 얹는" 3단 수직 통합 구조다. 애플이 아이폰에 iOS와 A-칩을 함께 집어넣어 안드로이드 진영과 차별화했듯, 러쥐는 하드웨어-OS-AI를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었다. 부품별로 다른 회사의 소프트웨어가 따로 돌아갔다면 영하 20도 성화 봉송의 안정성은 보장될 수 없었다.

하드웨어도 특색이 있다. 쿠아보의 핵심은 360Nm 고토크 관절이다. 인간의 고관절이 낼 수 있는 최대 토크가 약 200~250Nm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쿠아보의 관절은 인간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이 토크 덕분에 쿠아보는 모래밭·풀밭·장애물·빙판 위를 4.6km/h 전방향(omnidirectional) 보행으로 통과한다.

러쥐 로봇 쿠아보 제품 스펙 비교이미지 확대보기
러쥐 로봇 쿠아보 제품 스펙 비교

'17배 폭증'의 진실: 가격을 낮춰 문을 두드렸다

러쥐의 2025년 실적은 숫자가 눈을 사로잡는다. 연간 매출 2억 5,800만 위안, 전년 대비 365.2% 급증. KUAVO 시리즈 출하량 577대, 전년 32대 대비 17배 폭증. 이미 글로벌 3~4위 출하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전략적 베팅 하나가 보인다. 쿠아보 시리즈의 평균 판매가가 2024년 41만 3,900위안에서 2025년 30만 8,100위안으로 25% 내려갔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 판매량을 키웠다 , 중국어로 '이가환량(以价换量)'이다.

2026년 4월 선전거래소가 도입한 창업판 제4기준이 이 전략의 배경이다. 제4기준의 핵심 조건 중 하나가 "최근 1년 매출 2억 위안 이상 또는 3년 복합성장률 30% 이상". 러쥐의 2025년 매출은 2.58억 위안으로 기준을 정확히 통과했다.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17배 끌어올린 덕분이다. 제4기준 시행 후 불과 24일 만에 IPO 신청이 수리됐다.

이를 두고 전략인가 연출인가 하는 비판도 있다. 연속 3년 적자, 누적 손실 1억 7,200만 위안인 회사가 Pre-IPO로 15억 위안을 받고도 또 26억 위안을 공모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쿠아보의 공업 제조 현장 매출은 2025년 기준 전체의 3.88%에 불과하다. "공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로봇"보다 "전시·연구·행사용 로봇"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증권업협회는 현장 감사 대상으로 러쥐를 선정했다. 심사의 칼날은 예리하다.

중국 언론은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夸父追日, 乐聚追钱(쿠아보는 태양을 쫓고, 러쥐는 돈을 쫓는다)." 냉혹하지만 정확한 비유다.

러쥐 vs 중국 빅4: 포지션 전쟁이미지 확대보기
러쥐 vs 중국 빅4: 포지션 전쟁

러쥐, '40개 생태계를 붙잡은 작은 거인'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가 인증하는 국가급 전정특신 소거인(小巨人) 기업은 중국판 '히든 챔피언'이다. 독일 강소 기업처럼 한 분야에 집중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러쥐는 이 인증을 보유한 국가 공인 첨단 기업이다.

하지만 러쥐의 진짜 무기는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다. 현재 러쥐가 구축한 파트너사는 40개 이상이다. 화웨이(OS·AI), 텐센트(AI·투자), 바이트댄스 화산엔진(AI), 알리클라우드(클라우드), 중국이동·중국전신(5G-A 통신), 아너(스마트기기), 중국제일자동차(자동차·산업 현장)까지. 이 구조를 이해하면 러쥐 전략의 윤곽이 보인다.

AI 클라우드가 로봇의 두뇌를 키우고, 5G-A 통신망이 로봇을 연결하고, 자동차 공장이 로봇의 산업 현장을 제공한다. 러쥐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는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 플랫폼의 허브'다. 단순 제조사가 아니라 생태계 지휘자다.
러쥐의 이야기는 한국 로봇 산업에 세가지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처음부터 완벽한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라는 것이다. 러쥐는 교육용 소형 로봇 수만 대를 팔면서 양산 능력을 기른 뒤 휴머노이드 시장에 진입했다. 협동 로봇, 물류 로봇, 서비스 로봇에서 먼저 양산 DNA를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복잡한 로봇으로 올라서는 계단식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AI 대기업과의 수직 통합이 경쟁력이다." 러쥐가 화웨이 OS를 뼛속까지 집어넣었듯, 한국의 로봇 스타트업들은 삼성·SK·네이버·카카오의 AI 역량과 OS 수준의 깊은 통합을 이뤄야 한다. 단순한 API 연동이 아닌, OS와 AI 모델 레벨의 통합이 차세대 로봇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셋째, "공공 행사를 마케팅 무기로 써라" 이다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 장면 하나가 러쥐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에는 2025년 대전 세계엑스포,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가 있다. 한국 로봇 기업들이 이 무대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것은 기회의 낭비다.

'교실에서 성화대로', 그 다음은 공장

신화 속 쿠아보는 태양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쓰러진 자리에 복숭아 숲이 생겼다. 냉효곤의 러쥐가 A주 상장에 성공할지는 현장 감사를 통과해야 알 수 있다. 연속 3년 적자, 공업 현장 매출 3.88%, 17배 출하 폭증의 이면에 있는 가격 인하 전략, 자본시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영하 20도의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성화를 들고 뛰었던 그 로봇은 연구실의 시제품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교실에서 소형 로봇을 팔고, 공장에서 양산 DNA를 익히고, 화웨이와 OS 수준의 통합을 이룬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쿠아보가 태양을 쫓듯, 러쥐는 지금 증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 달리기가 성공으로 끝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것들 , 40개 파트너 생태계, KaihongOS 표준, 현장 데이터는 이미 복숭아 숲처럼 자라고 있다.

태양을 쫓다 증시에 도착한 거인:러쥐 로보틱스(Leju Robotics)의 시대 [전병서의 中 첨단기업 리포트⑭]이미지 확대보기
전병서 박사는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일했다.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지내고 이후 19년간 중국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병서 박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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