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가는 ‘플랫폼’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투자자는 예치 형태로 자금을 맡기고, 증권사는 이를 기반으로 기업대출이나 인수금융 등으로 운용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증권사가 은행처럼 자금을 흡수하는 구조가 본격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경쟁은 ‘수익’이 아니라 ‘자금의 입구’를 누가 장악하느냐로 옮겨갔다.
반면, 자산운용업계는 전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조우철 유리자산운용 대표는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된 원인을 ‘성과 문제’가 아닌 ‘구조 변화’에서 찾는다. 그는 “펀드가 안 팔리는 것은 상품 경쟁에서 밀려서가 아니라, 고객이 플랫폼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며 “운용사 입장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을 빼앗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ETF 확산이 단순한 상품 트렌드가 아니라 고객 접점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ETF는 ‘상품’이 아니라 ‘플랫폼 종속형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이같은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2025년 한 해에 국내 ETF시장에 유입된 개인 투자자 자금만 약 30조 6,000억 원에 달한 반면 공모펀드는 순유출이 이어졌다.
증권사 앱과 HTS 등 플랫폼 위에서 투자자가 직접 사고파는 구조인 만큼, 가격과 타이밍에 대한 결정권이 투자자에게 있다. 조 대표는 “ETF는 운용사가 설계한 상품이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위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며 “결국 투자자는 운용사가 아니라 플랫폼에 붙는다”고 말했다. ETF가 커질수록 운용사의 존재감이 희미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ETF의 확산이 곧바로 투자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장기 자산관리 영역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ETF는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구조상 단기 거래 성향을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장기 안정적 운용을 지향하는 퇴직연금과 충돌한다.
때문에 펀드의 역할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펀드는 분산투자와 리밸런싱, 운용 전략이 내재된 구조로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조 대표는 “장기투자는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며 “퇴직연금과 같은 자금은 펀드 구조가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ETF와 펀드가 경쟁 관계이면서도 동시에 역할이 분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중심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자산운용사의 생존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특정 분야에서 초과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문성이 필수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유리자산운용이 비메모리 반도체 펀드 등 특정 섹터에 집중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 전략은 여전히 주요 투자 축으로 거론된다. 결국 플랫폼 시대에도 살아남는 운용사는 ‘차별화된 알파’를 가진 곳이라는 논리다.
개인 투자 전략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재편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코스피200과 같은 대표 지수를 활용한 장기 투자와 함께, 성장 섹터에 대한 선택적 접근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조 대표는 “개별 종목이나 타이밍에 집중하기보다 지수와 시간에 투자해야 한다”며 “예금처럼 장기적으로 가져가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현재 금융투자업계는 뚜렷한 승자가 가려진 상태라기보다,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증권사는 플랫폼을 통해 자금의 입구를 장악하고, 운용사는 전략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구조가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상품 중심에서 플랫폼 중심으로의 이동은 분명하지만, 장기 투자 영역에서는 여전히 펀드의 역할이 남아 있는 이유다.
이처럼 자금의 흐름과 투자 방식, 산업 구조가 동시에 바뀌는 가운데 금융투자업계는 지금 ‘상품의 시대’를 지나 ‘플랫폼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서 있다. 승부는 결국 ‘상품’이 아니라 ‘고객이 머무는 곳’에서 갈린다. 증권사는 플랫폼으로, 운용사는 알파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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