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시가총액을 앞설 정도로 불안했던 한글과컴퓨터(한컴)가 6년 만에 ‘철벽 재무’로 거듭났다. 회사는 공격적 인수·합병(M&A) 유산을 털어내고 현금 중심 경영으로 돌아선 김연수닫기
김연수기사 모아보기 체제 아래, 안정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성장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공격적 M&A가 낳은 부작용
지난 2019년만 해도 한컴은 재무 불안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부채가 시가총액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한컴 총부채 3,180억 원이 시가총액 2,444억 원을 압도해 시장이 바라본 한컴 신용도는 ‘위기’에 가깝게 평가됐다.이는 2010년대 공격적 M&A 후유증이었다. 한컴은 AI, 모빌리티, 생체보호장비 등 신사업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다수 계열사를 편입했다. 예컨대 미래엔씨티(한컴모빌리티), 한컴MDS(구 MDS테크), 한컴라이프케어 등 계열사를 잇따라 인수했다.
문제는 일부 사업에서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데 있다. 대표적으로 한컴MDS 매출은 ▲2019년 1,549억 원 ▲2020년 1,466억 원 ▲2021년 1,551억 원으로 대동소이했으나, 영업이익은 ▲2020년 44억 원 ▲2021년 40억 원 ▲2022년 22억 원으로 지속 감소했다. 매각 직전 실적이었던 2021년에는 당기순손실 240억 원을 기록해 한컴 자회사 중 가장 큰 손실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M&A로 커진 몸집은 그룹 외형 성장을 이끌었지만, 차입금 증가와 부진한 자회사 실적으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악화됐다”며 “부실 자회사로 자산 효율성이 떨어져 재무 취약성이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군살 빼고, 현금 상환
흐름은 2021년 김연수 대표이사 취임을 기점으로 급변했다. 그는 부임 직후 “핵심에서 먼 사업은 버린다”는 기조 아래 과감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김연수 대표는 한컴MDS 매각 등 비효율 자산을 정리하며 ‘군살 빼기’에 속도를 냈고, 매각대금으로 확보한 현금은 즉시 차입금 전액 상환에 투입했다. 그 결과 한컴 총부채는 2019년 3,180억 원에서 2023년 1,612억 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여기에 수익성 중심 경영이 가속화되면서 내부 유보금인 이익잉여금은 2019년 1,399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 말 2,634억 원으로 거의 90%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외부 차입 없이도 독자적인 기술 투자가 가능한 현금 창고가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실 경영 성과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금융신문이 AI 데이터 플랫폼 딥서치를 통해 확인한 한컴의 알트만 Z-스코어는 2019년 1.68에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25로 높아졌다. Z-스코어의 연도별 추이는 ▲2019년 1.68 ▲2020년 2.43 ▲2021년 2.34 ▲2022년 2.08 ▲2023년 2.76 ▲2024년 2.99 ▲2025년 3분기 말 3.25를 기록했다.
‘라이선스 모델’이 쌓은 현금 창고
한컴이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주력 계열사 정리뿐만 아니라 수익 모델의 근본적 전환이 있다. 재무 안정화로 시장 신뢰를 회복한 한컴은 AI를 실질적 매출 동력으로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김연수 대표는 기술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기존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일회성 패키지 판매 방식을 과감히 탈피했다. 대신 ‘한컴어시스턴트’, ‘한컴피디아’ 등 AI 기능 사용에 따라 과금하거나 기업 규모에 연동되는 ‘AI 최적화 라이선스 모델’을 도입했다. AI 기반 문서 분석 및 음성·문자 인식 기술을 제품군에 결합해 정기적인 현금 유입이 가능한 구독형 매출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이 같은 구독형 모델은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켰고, 재무 안정성을 높여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수익 구조의 진화는 곧바로 실적으로 증명됐다. 지난해 한컴은 연결 기준 매출 3,267억 원·영업이익 365억 원, 별도 기준 매출 1,753억 원·영업이익 509억 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덕분에 현금성자산 또한 ▲2023년 809억 원 ▲2024년 1,074억 원 ▲2025년 3분기 말 1,222억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한컴의 기술적 자신감은 대외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비정형 문서 데이터를 AI 학습용 데이터로 정밀하게 변환하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컴은 LG AI연구원 컨소시엄의 주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AI 모델의 산업 현장 적용과 응용 서비스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은 재무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 AI 성장 결실이 맺히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증권가 관계자는 “약 2,600억 원에 달하는 이익잉여금은 향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배당 확대는 물론 글로벌 AI 신사업 투자를 위한 든든한 실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출 효율 혁신’ 나설 차례
철벽 재무를 구축한 한컴 다음 과제는 자산 효율성 제고다. 한컴 매출액/총자산 비율은 2019년 0.49에서 지난해 3분기 말 0.43으로 소폭 하락했다. 현금과 이익잉여금은 쌓였지만, 이를 실제 매출 창출로 연결하는 효율은 아직 정체 상태라는 의미다.이에 업계에서는 자산 매각 등으로 확보한 자금을 포함한 약 2,600억 원 이익잉여금을 단순히 보유하기보다 생산적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컴은 이 자금을 AI와 클라우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영역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경쟁력 확보 방안이 관건이라는 평가다.
김연수 대표는 올해 초 주주서한에서 “올해는 AI 에이전트들이 필수적으로 호출하는 핵심 기능과 인프라스트럭처를 제공하는 글로벌 ‘AI 오케스트레이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며 “AI 기술 고도화와 사업 비중의 전폭적 확대를 통해 글로벌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도하는 AX( AI 전환) 리딩 기업으로 확실히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에는 구글 스위트, 지라 등 글로벌 메가 플랫폼 에이전트를 현업에 적용하고 에이전트 간 자율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A2A(Agent to Agent)’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는 과거식 M&A가 아닌, 쌓인 현금을 자산 효율성 제고의 동력으로 삼아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컴은 위기를 버텨내며 스스로를 증명했다”며 “시장이 진짜 반응하려면 이제 그 돈으로 무엇을, 어떻게 벌 것인지 매출 효율의 혁신을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정채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chaeyu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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