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상반기만 해도 산업안전 관련 조치 미비로 근로자 287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최근 20대 건설사 CEO와의 간담회에서 “중대재해 감축은 기업을 옥죄거나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는 것이 대통령과 제 생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고용부가 발표한 ‘2025년 2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른 후속 대응이기도 하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산업안전 부주의로 인한 사망자는 총 28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명(3%) 줄었으나, 사고 건수로만 보면 12건(4.5%) 늘어나 여전히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실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50대 하청 노동자가 6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즉각 현장에 투입돼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조사했으며, 원청사인 DL건설 본사와 하청업체를 압수수색했다.
특히 노동자가 안전고리를 체결하지 않은 채 작업에 나선 정황이 드러나면서, 기본적인 안전관리조차 지켜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현장 관리 부실을 넘어 대기업 건설사들의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사고 이후 DL건설 대표와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은 ‘안전 부실’이 더 이상 현장 소장의 책임으로 그치지 않고 경영진 전체의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건설업은 산업재해 중에서 비중이 높은 업종에 속한다. 국회가 1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최근 5년간 사고재해자 수를 살펴본 결과, 1만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대우건설의 사고재해자 수는 1931명에 달해 10대 건설사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현대건설 17명·롯데건설 15명·대우건설 14명 등 집계됐다.
이에 정부는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대해 강력한 제재 방침을 천명했다. 산업재해가 잦은 건설사에 대해서는 입찰 자격 영구 박탈은 물론 금융 제재까지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공공조달제도 전반을 개편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조달정책심의위원회는 국가계약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가장 큰 변화는 공공공사 입찰 평가에서 ‘안전평가’ 항목을 신설하고, 이를 시공능력 평가와 동일한 수준으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안전 역량이 부족한 건설사는 사실상 공공사업 참여가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한 정부는 기존의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시 입찰 제한’ 기준을 넘어, 연간 사망사고가 반복 발생하는 기업도 공공입찰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
아울러 법인 분할이나 명의 변경을 통한 제재 회피를 막기 위해 제재 승계 제도도 도입한다.
이는 대형사고를 반복하는 기업을 공공시장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차관은 “계약 과정의 안전 관리 체계 강화, 기업의 안전투자 지원, 그리고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라는 세 축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며 “안전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정착시키고, 안전 불감 기업은 공공입찰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도 검토되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반복적으로 중대재해를 일으키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며 “입찰 자격 영구 박탈과 과징금 부과 등 강력한 제재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과징금 제도 신설을 논의 중이다.
형사처벌에 더해 금전적 제재까지 부과해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높이려는 취지다. 동시에 사망사고가 잦은 원·하청 구조를 겨냥해 다단계 하도급 관리 강화, 안전 예산 의무화, 안전담당 임원 책임 명확화 등 제도 보완도 추진되고 있다. 이번 대책은 건설업계에 뚜렷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안전은 비용 절감의 변수가 아니라 기업이 공공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일부 건설사들은 안전관리 조직을 본부 단위로 격상하고, 안전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제도가 정착되면 건설사 간 입찰 경쟁에서 ‘안전 가중치’가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수주 경쟁력의 절반 이상이 안전관리에서 갈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가중되는 처벌에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중대재해는 더 이상 ‘불운한 사고’로 치부되지 않는다.
사망사고가 많은 건설사는 공공사업에서 배제되고, 경영진은 법적·사회적 책임을 직접 져야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 방안이 과도한 ‘중복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안전을 챙겨야하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솔직히 막막한 점도 있다. 건설사는 항상 리스크를 짊어지고 해야 하는 업계가 돼 버린 것”이라며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을 강화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보다는 과징금·공공수주 불가 등 처벌만을 강요하는 점은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안형준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현재도 건설사에 대해 벌금,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행위자 처벌, 작업·영업중지, 징벌적 손해배상 등 5중 제재가 내려지고 있다”며 “기업활동 중단을 불러올 중복 규제보다는 현장 여건을 고려한 법·제도 개선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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