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6·25전쟁이 끝나면서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았고, 신생아 수가 100만 명을 넘길 정도로 베이비붐이 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한반도 전역이 폐허가 된 상태였고,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기아에 시달렸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사교육 부담 증가 등으로 인해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우유 주력 소비층인 아이들이 감소하면서 유업도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대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마저 오랜 기간 문을 닫았다. 유업 내부적으로도 우유가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이 대내외 경기 불황으로 내수 침체에 저출산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실적 정체기를 맞고, 우유라는 본업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에 공들이는 배경이다.
‘내수 침체·저출산 현상’…실적 정체 부닥친 유업계
31일 한국금융신문이 기업 데이터 플랫폼 ‘딥서치’를 통해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의 총주주환원율(TSR)을 산출했다.데이터 집계 기간은 엔데믹 무렵인 2022년 말부터 최근 2025년 8월 26일까지로 잡았다. TSR은 주가수익률과 배당수익률을 합산한 값으로, 주주가 주식을 산 후 일정 기간 주가 차익과 배당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의미한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2022년 말 이후 현재까지 TSR이 각각 –25.76%, 20.04%로 집계됐다. 예컨대 주주 A, B가 엔데믹 시점에 맞춰 두 회사의 주식을 1000만 원씩 샀다고 가정해보자. 매일유업 주식을 산 A는 257만6000원을 잃고, 남양유업 주식을 산 B는 200만4000원을 벌게 된다. 앞서 남양유업은 지난해 11월 20일 1주당 액면가를 10:1 비율로 분할, 주당 5000원을 500원으로 줄였다. 이에 TSR에서는 약간의 오차가 있다.
매일유업은 최근 3년간 연 매출이 2022년 1조6856억 원에서 2023년 1조7830억 원, 2024년 1조8114억 원으로 성장세가 미미하다.
특히 지난해엔 본업인 유가공 부문이 전년 1조969억 원에서 0.5% 준 1조909억 원을 기록, 역성장을 그리면서 전체 실적에도 영향을 줬다. 최근 3년 매일유업의 누적 배당수익률은 6.91%로 나왔다. 배당금은 2022년과 2023년 1200원, 2024년 1250원으로 사실상 동결 수준이다.
반면 남양유업은 2022년 12월 31일 4만8900원(액면 분할 전 48만9000원)에서 2025년 8월 26일 5만6600원으로, 주가가 15.75% 상승했다.
남양유업의 최근 3년간 연 매출은 2022년 9647억 원에서 2023년 9968억 원, 2024년 9528억 원으로 매일유업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이 기간 남양유업의 누적 배당수익률은 4.29%로, 매일유업에 살짝 못 미쳤다. 배당금은 2022년과 2023년 1000원을 유지하다 2024년 액면 분할 영향으로 100원을 집행했다. 액면 분할을 감안하면, 배당금은 사실상 1000원 동결이다.
남양유업의 액면 분할 전 주가를 기준으로 누적 배당수익률을 매기면 0.61%로, TSR은 16.36%로 조정된다. 다시 말해 남양유업 주식 1000만 원을 산 주주는 163만6000원의 수익을 챙기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남양유업의 주가가 매일유업보다 강세를 보이면서 실적이 정체된 흐름 속에서도 주주들의 투자심리를 끌어냈다.
남양유업 ‘주가 부양’ 시동 vs 매일유업 ‘사업 다각화’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의 희비를 가른 것은 주가 제고에 있다. 남양유업은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홍원식닫기
남양유업은 올해에도 자사주 소각에 앞장섰다. 1월 36만500주(약 201억 원), 3월 30만5464주(약 200억 원), 7월 13만1346주(약 98억 원)를 추가로 없앴다.
아울러 지난 7월에는 자사주 2만4736주(약 16억 원)를 임직원 1546명에게 16주(약 104만 원)씩 무상으로 지급했다. 남양유업이 올해 소각한 자사주(79만7310주)만 500억 원에 이르면서 발행 주식은 600만 주로 맞춰졌다.
남양유업이 강력한 주가 부양책에 나서는 동안 매일유업은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았다. 우선 매일유업의 디저트 사업을 영위하는 엠즈베이커스는 지난해 4월 성수동 유명 빵집인 ‘밀도’를 인수했다.
당시 매일유업이 베이커리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매일유업의 지주사인 매일홀딩스도 외식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매일홀딩스의 외식 사업을 맡는 엠즈씨드는 현재 카페 ‘폴바셋’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키친일뽀르노’, 중식당 ‘크리스탈제이드’를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매일홀딩스는 지난 5월 일본 삿포로인터내셔널과 합작해 만든 엠즈베버리지를 통해 또 다른 자회사 엠즈비어를 설립했다. 엠즈베버리지는 일본의 유명 맥주인 삿포로와 에비스 등을 수입해 국내 유통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다 엠즈비어를 만들어 지난 7월 서울 성수동에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 스탠드’ 매장을 선보였다. 일본 도쿄 긴자의 ‘삿포로 생맥주 블랙라벨 더 바’를 국내로 들여왔다. 여기서는 삿포로 프리미엄 맥주와 매일유업의 체험형 테마파크인 상하농원 식재로 만든 음식이 제공된다.
남양유업도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새 CI(Corporate Identity)와 슬로건을 공개했다. 새 슬로건은 ‘건강한 시작’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기업의 건강한 변화와 뛰어난 품질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남양유업은 매일유업과 다르게 외식 사업에서 손을 뗐다.
기존 운영해오던 ‘일치프리아니’와 ‘오스테리아 스테쏘’, ‘철그릴’ 등의 매장을 과감히 정리한 것이다. 대신 카페 ‘백미당’은 별도 법인인 백미당아이앤씨를 꾸리면서 리브랜딩에 나섰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 소매점 판매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우유 시장 규모는 2022년 1조9843억 원에서 2023년 1조9639억 원, 2024년 1조9182억 원으로 매해 축소세다.
지난해 기준 우유 제조사 점유율에서는 남양유업이 3위, 매일유업이 4위를 기록했다. 1위 서울우유가 압도적으로 흰우유 시장을 장악했고, 2위 빙그레가 바나나맛우유로 가공유 시장을 선점했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60년의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유업’ 명패를 지켜왔다. 그러나 유소년 인구가 해마다 감소하는 상황에서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면서도 본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이인기 매일유업 대표는 “지속적인 원가 상승, 출산율 감소 및 내수 불황 등 어려운 환경에 처했으나 수익성 높은 프리미엄 흰 우유와 발효유 성장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승언 남양유업 대표 역시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효율성을 제고해 경영 정상화 기반을 다지는 등 기업 이미지를 빠른 시일 내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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