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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7(월)

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부동산 불패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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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부동산 불패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자산 버블 형성에 있어서 배경이 된 두 번째의 신드롬은 ’부동산 불패 신드롬‘이다. 일본의 부동산 불패 인식을 강화시킨 근저에는 일본이 인구에 비해서 국토가 비좁은 데다 산지가 73%에 이르는 국토의 특성에 따라 가용토지가 적다는 생각이 전 국민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실시된 농지개혁으로 인해 대지주 소유의 농지가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산되면서 토지 소유는 국민 다수의 주요한 자산 축적 수단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1950~70년대 고도성장기 동안 도시로의 인구 집중과 산업화가 심화되면서 도시 중심지의 토지 수요가 급증했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과정에서 토지 소유는 상속과 매각을 통한 부의 축적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부동산은 안정적인 자산 축적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특히 토지는 주식과는 달리 실물자산이자 세대를 넘어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라는 점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함께 보유세가 낮고 거래세에만 중점을 둔 토지에 대한 세금제도 역시 토지를 보유하려는 인센티브를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은행 예금금리를 규제했던 1990년까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자산이 부동산이었다는 사실도 부동산 불패 신드롬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1955년부터 1990년까지 도쿄부 도쿄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아이치현 나고야시, 교토부 교토시, 오사카부 오사카시, 효고현 고베시 등 일본의 6대 도시 지가의 연평균 상승률은 12%이었던 반면 같은 기간 중 일본의 은행들의 평균 예금금리가 평균 5.5%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부동산 투자의 수익률이 가장 보편적인 일반 국민들의 투자 대상인 은행예금보다 월등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버블 기간인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기간 중에는 이들 6대 도시 지가의 연평균 상승률은 23.1%로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언급할 때 1990년대 초가 정점이었던 소위 ‘헤이세이 버블’을 지목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제 애널리스트인 다키치 마코토에 따르면 그 이전에도 두 차례의 유사한 지가 급등기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로 그는 1960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소득배증계획’이 촉발시킨 지가 상승을 들고 있다. 소득배증계획은 10년동안 일본의 실질 국민소득을 2배 이상 높이겠다는 경제발전계획이었다. 이케다 내각은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이 계획을 달성한다는 목표 하에서 오사카를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의 거점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업용지를 중심으로 지가가 급등했다.

1960년대 초반 일본 평균 지가는 연 10~20%대 상승했으며 일부 도심지나 산업집중지역에서는 연 30~40% 급등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부동산이 단순한 실물자산을 넘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이라는 인식이 대다수의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1972년 다나카 카구에이 내각의 ‘일본열도 개조론’이 촉발한 지가 급등을 들 수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일본해 연안부터 산간벽지까지 골고루 경제성장의 성과를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공업지역을 일본 전역의 거점도시로 분산해 이들 도시 사이를 신칸센 등 철도와 고속도로 연결하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지가 상승을 견인했다. 이와 함께 일본 경제는 그 당시 미국 닉슨 대통령의 1971년 8월 15일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 조치 후 소위‘달러 쇼크’로 엔화의 평가절상 압력이 급격히 커지면서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수출기업이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에 대응해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대폭 완화했는데 통화정책 완화기조가 지가 상승을 가속화했다고 한다.

결국 일본열도 개조론은 대상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역의 지가를 상승시키게 되었다. 노동보다 토지 보유가 더 효과적인 재산 축적 수단이라는 믿음이 토지 소유자들 사이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졌다고 한다.

일본의 평균 지가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50배 정도 상승하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고작 2배 오르는데 불과했다. 이는 토지의 실질 가치가 25배 급등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지가가 하락한 것은 제1차 오일쇼크로 일본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에 돌입했던 1974년뿐이었다.

지가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지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일본 사회 전반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에도 지가 상승은 계속되었는데 도쿄 지가는 1981년부터 버블 붕괴 직전인 1990년까지 5배 이상 폭등했다.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자본시장에서 낮은 비용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했던 대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소위 재테크가 성행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더욱 상승시키는데 기여했다.

▲일본 부동산 가격 지수 추이(1950~2024)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부동산 가격 지수 추이(1950~2024)
이밖에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과 은행 대출 시 담보로 부동산이 가장 선호되었다는 점도 부동산 불패 신드롬 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담보대출은 제공한 담보의 가치가 대출자의 신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 때문에 차입거래에서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담보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면 대출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차입자에게 담보를 추가로 요구하거나 일부 상환을 촉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차입자들은 대출 축소에 따른 자금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서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차입자들에게 더 많은 담보를 거치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담보로 제공하는 자산의 가치가 더욱 하락하게 된다. 반면 담보자산의 가치가 계속 상승한다면 대출자들은 물론 차입자들은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추가 담보로 제공해야 하는 불편이 없어지게 된다.

일본의 은행들이 대출 담보로 부동산을 가장 선호했던 근본원인은 일본의 부동산이 1950년 이후에 계속 상승세를 보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한다. 히토츠바시 대학의 시미즈 요시노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대형은행들은 토지를 대출의 적격 담보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1885년, 1920년, 1927년에 발생한 금융위기 때마다 지가는 하락했다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만 지역은행들의 경우 토지 이외에는 적격 담보 자산이 없었기 때문에 토지가 대출의 담보자산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농업용 토지는 소작농제도 덕분에 수익성이 높은 자산이었다는 점도 감안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맥아더 사령부가 지주로부터 농지를 저가에 강제 매입한 후 소작농에게 저리 장기할부로 매각한 후 농지 가격은 일정 수준으로 안정되었다. 그 후 고도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산업화가 진전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가가 상승하게 되면서 건물이 없는 토지가 모든 은행 대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담보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가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은행 대출에 있어서 토지가 가장 안전한 담보자산이라는 관행이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신용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 대출을 위해서는 토지 등 부동산 보유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다양한 수요가 부동산 시장을 견인하면서 부동산은 계속 오른다는 신드롬이 사회 전반에 깊게 각인되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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