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새 국내 제약업계의 풍경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한 문장이 있을까. 기술보단 판결로 승부가 나는 시장. 기업들이 장삿속으로 법정에 서는 사이 환자들은 소송 비용을 대신 지불해야 했다.
콜린 제제는 노인성 인지저하나 경증 치매 증상 개선 목적으로 약 10년간 처방된 약이다. 다수 글로벌 연구에서 약의 임상 근거와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국내에선 뇌기능 개선 약으로 널리 팔렸다.
건강보험료 청구 순위가 항암제 다음으로 높은 2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약이었다. 처방액은 2021년 기준 단일 성분만 5000억 원에 달할 정도다. 해외에선 건기식 수준에서 소비되는, ‘효능이 불분명한’ 약이 사회에 남용된 셈이다. 바꿔 말하면, 콜린 제제는 제약사들에게 ‘돈 되는 약’이었다.
제약업계는 즉각 소송으로 맞섰다. 80곳이 넘는 제약사들이 대웅바이오파와 종근당파로 나뉘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고 5년이라는 시간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건강보험 재정은 또 다시 침식됐다. 지난 2023년 기준 콜린 제제의 건강보험 처방액은 5600억 원에 이른다. 5년간 제약사 이익 실현을 위한 소송 비용을 국민이 내줘야 했던 구조다.
업계 관행으로 굳어버린 소송 문화는 콜린 사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허 다툼, 급여 기준 변경, 적응증 확대 등 제약바이오 산업 곳곳에서 소송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각종 소송에서 잘 이기는 게 경영 전략 중 하나로 자리잡은 실정이다.
물론 정부의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여론이 악화돼서야 재검토하는 뒷북치기식 수습은 늦다. 효능과 근거가 명확한 약품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나 급여 기준을 다시 구축하고, 기존 의약품의 안정성 및 유효성도 꾸준히 모니터링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인식 변화다. 제약바이오는 국민 건강을 다루는 공익 산업이다. 법정을 기회의 장으로 삼는 전략보다 임상 근거와 윤리를 기반으로 한 제품 개발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으로서 소송은 이익 수호를 위한 수단이자 합법적 권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을 환자와 국민이 대신 내줘야 할 이유는 없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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