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신 회장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입지전적 일대기를 쓴 인물이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에는 드물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였고, 외국어 능력까지 뛰어났다고 한다. 경기여고 졸업 후 국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힐대학(Chesnut Hill College)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애경유지공업은 세탁비누로 사업을 이어가다 1956년 자체 독자기술로 만든 화장비누 ‘미향’을 선보였다. 이후 미향은 출시 한 달 만에 100만 개나 판매되며 국민 비누로 등극했다.
비누로 뜬 애경유지공업은 합성세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1966년 최초 주방세제 ‘트리오’를 출시했다. 트리오는 적은 양으로 충분한 거품을 내 식기에 묻은 기름기를 쉽게 제거했다. 트리오는 가정주부들 애정 공세를 받으며, 시장점유율 90%대까지 올라섰다. 애경유지공업은 그러나 1970년 채몽인 창업주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뜻하지 않게 위기를 맞았다. 장영신 회장 인생에 또다시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는 1972년 8월 최초 여성 CEO로서 애경유지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취임 1년 만인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유류 가격이 치솟았고, 전기요금도 크게 뛰었다. 애경유지공업도 원료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장영신 회장은 이때 그룹 미래가 화학에 있다고 판단했다. 비누·세제 제조기업인 애경유지공업은 화학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다. 장영신 회장 본인도 화학을 전공한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그는 미국 화학업체 걸프를 만나 “한국 석유화학이 발전해야 미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며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걸프는 일본 미쓰비시가스케미컬을 새로운 원료 수급처로 연결해줬다. 애경유지공업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자사 제품을 해외로 판로를 넓혔다.
애경산업은 탄력을 받아 세제에서 화장품, 치약, 샴푸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나갔다. 재계에서 ‘터프우먼’이란 수식어를 얻은 장영신 회장은 1987년 애경그룹 회장직에 이름을 올렸다.
장영신 회장은 애경그룹 외형을 키워나가면서 백화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1993년 애경유지공업 옛 공장 부지였던 구로에 AK플라자 전신인 애경백화점 1호점을 세웠다. 애경백화점은 쇼핑 외에 스포츠센터, 문화공간 등을 함께 조성했다. 여성 관점에서 백화점을 조망해 누구나 찾아와서 쉴 수 있도록 시장을 파고들었다. AK플라자는 수원, 분당, 평택, 원주 등에 차례로 개관했다. 쇼핑몰인 AK몰도 홍대, 기흥, 광명, 금정, 세종에 두고 있다. 수원의 경우 수원역사를 활용해 백화점과 호텔을 연결한 ‘노보텔 엠버서더 수원’도 선보였다.
제조에서 유통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한 장 회장은 항공업에도 진출했다. 지난 2006년 국내 최초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 출범이다. 제주도민 항공교통 개선을 위해 애경그룹과 제주도가 손을 맞잡았다. 제주도는 장영신 회장 남편이자 애경그룹 고 채몽인 창업주 고향이다. 제주항공은 제주-김포 노선으로 시작해 일본, 대만, 태국 등으로 하늘 길을 늘렸다. 현재 12개 국가에서 66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애경그룹은 현재 41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상장사로는 생활용품·화장품 애경산업과 애경케미칼, 제주항공, 지주사인 AK홀딩스 등이 있다. 애경그룹은 창립 60주년 되던 해 매출 5조를 달성했다.
당시 장영신 회장은 “60년 동안 생활용품·유통·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쉼 없는 성장과 도약을 해 온 애경인의 개척자 정신에 남다른 긍지를 느낀다”며 “잘 나갈 때 어려울 때를 대비하고, 힘들 때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간다면 이루어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애경그룹은 코로나 기간 유통·항공업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그룹 매출이 한때 2조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매출 4조4797억원을 기록해 전년(3조7880억원) 대비 18.3% 오르는 등 재도약에 나섰다. 제주항공이 항공업 특수를 누리면서 전체 실적을 견인했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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