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닫기김병환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이 20일 은행장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은행권 혁신을 위한 규제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장들은 김 위원장에 비금융 회사 지분 취득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지주 내 계열사 간 데이터 공유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장들과 만나 “은행은 우리 금융산업의 중심축으로서 높은 건전성을 유지해 왔으며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민생 안정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은행의 수익이 높아질수록 사회적 논란이 제기된다”며 “은행권은 왜 이런 비판들이 이어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은행권에 충분히 경쟁이 있는지 ▲은행이 일반 기업과 같이 치열하게 혁신을 해왔는지 ▲민생이 어려울 때 상생 의지를 충분히 전달했는지 등을 화두로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은행권의 혁신 노력에 장애가 되는 규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걷어내겠다”고 약속했다.
금융권의 대표적인 규제로는 금산분리가 꼽힌다. 금산분리는 은행 등 금융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분리하는 원칙을 말한다. 현재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은행과 보험은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출자가 불가능하다.
앞서 은행권은 지난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숙원 과제로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를 제시한 바 있다. 국내 은행의 총이익에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말 기준 8.9% 수준이다.
은행 비이자이익 비중은 2019년 14%, 2020년 15.1%, 2021년 13.2%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 2022년 5.7%로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1년 전보다 3.2%포인트 늘었지만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핵심은 금융사의 부수업무와 자회사 출자 범위 확대다. 은행들은 신사업 진출을 통한 은행산업 발전과 혁신을 위해 은행 부수·겸영업무 및 자회사 투자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고객 정보를 계열사 간 공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취임사를 통해 “금융규제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 변화된 환경에 맞지 않는 규제는 과감히 풀겠다”며 “금융회사의 업무 범위도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하겠다”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 재추진을 시사했다.
금융당국은 작년 8월 말 금융지주와 은행의 비금융 회사 출자 한도를 현행 각각 5%, 15%보다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산분리 완화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결정하고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은행권은 최근 발표된 망분리 개선 방안에 이어 신사업 진출 기회를 가로막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도 다시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날 은행장들은 현재 추진 중인 서비스형 뱅킹(BaaS), 고령층 대산 자산관리 서비스 고도화 등의 신사업 사례를 언급하면서 “혁신적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 비금융 회사 지분 취득 규제 완화, 금융지주 내 계열사 간 데이터 공유 허용 등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BaaS는 은행이 비은행 플랫폼 기업에 금융 기능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신한은행은 다양한 기업과 협약을 맺고 BaaS형 금융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6월 BaaS 형태로 삼성금융네트웍스와 통합플랫폼 ‘모니모’에 뱅킹거래 및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조용병닫기조용병기사 모아보기 은행연합회장은 “그간 꾸준히 논의해 왔던 은행의 업무 범위 개선이나 디지털 경쟁력 강화 방안도 국민경제와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다시금 논의해 나간다면 좋은 방안이 도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위에서 최근 발표한 망분리 혁신의 경우에도 은행이 앞으로 클라우드와 AI를 더욱 손쉽게 활용해 소비자 편익을 제고할 수 있는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기 유리해졌다는 점에서 소비자 관점 규제 혁신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지난 13일 생성형 AI 활용 허용과 SaaS 이용 범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금융사 대규모 전산마비 사태를 계기로 도입된 망분리 규제는 금융사 내부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랜섬웨어 등 해킹 등으로부터 금융시스템을 보호하는 데 기여했지만 클라우드, AI 등 신기술 활용을 어렵게 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혀왔다.
김 위원장은 은행장들에 신뢰 회복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은행은 항상 신뢰의 정점에 있어야 함에도 최근 은행의 신뢰 이슈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환골탈태한다는 심정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내년 1월 시행되는 책무구조도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주요 업무에 대한 책임자를 사전 기재해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금융지주와 은행은 내년 1월 2일까지, 금융투자업자(증권사)와 보험사는 자산 규모 등에 따라 늦어도 2026년 7월 2일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위해 오는 10월 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면 시범 운영기간(올해 11월~내년 1월 초)에 소속 임직원의 법령 위반 등을 자체 적발·시정한 경우 제재를 감경 또는 면제해주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또 최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발표 후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던 은행 등 금융회사가 시장에서 재평가받고 있는 사례를 들면서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금융권의 성장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게 중요하다”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은행장들에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과 금융사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건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밝혀진 우리은행 부적정 대출 등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9일 우리은행 현장검사 결과 2020년 4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우리은행이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 차주를 대상으로 총 42건, 616억원의 대출을 실행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중 28건(350억원)은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대출로 드러났다.
우리은행에서는 최근 직원 횡령 사고도 잇따라 발생했다. 우리은행 경남지역 지점 한 직원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35회에 걸쳐 개인과 기업 고객 17명 명의로 허위 대출을 신청해 대출금 177억7000만원을 지인 계좌로 빼돌렸다가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지난 2022년 4월에는 본점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이 은행 자금 707억원을 빼돌려 주가지수옵션 거래 등에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부동산 담보가치 부풀리기를 통한 과다대출 등 배임 사고를 각각 세건씩 적발됐다.
한아란 한국금융신문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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