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신작 위주의 작품 총 17점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세밀한 묘사가 아니어도 섬세한 감정과 감흥이 전달되는 화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살갑게 거닐다가 헤어진 후 다가서는 약간의 시간적 간극, 살아온 시간만큼 경험한 사건들이 무디어져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순간의 허전함과 비슷하다. 무관심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색을 탐하여 자세히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데면데면하고 무표정한 거리두기다. 2023년 가을, 금번 전시되는 작품의 주요 핵심어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감성의 정도를 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풍부한 감정의 영역이 있다.
화가가 어떤 종류의 사회적 공감과 철학적 입장을 전달하고자 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걸음은 곡선을 그리며..>가 있다. 걷는 여성과 멈춰진 여성의 배경에는 도식화된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바삐 지나간다. 앞면에 그려진 두 여성은 각기 다른 포즈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무심하지만 바쁜 듯 걷는 여성의 손에는 일본화가 나라요시모토의 “life is only one”의 이미지가 있는 것을 보면 화가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하필 제목이 <걸음은 곡선을 그리며>라니? 아마도 삶이 지나는 길이 구불구불하다는 의역이 아닐까.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화가이거나 그림 애호인 이어도 상관없다. 여성의 정체가 중요한 것 또한 아니다. 지금을 사는 현대 여성과 주변인, 함께 있어도 타인으로 느껴지는 잠시의 외면. 공감하지만 공감하지 않는 이중구조의 시대대변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이어지는 <공감>시리즈는 다른 양태의 미적구조를 지니고 있다. 두 손을 모우고 잠시 정지된 모습의 여인, 등짐 지고 골똘에 빠진 여인, 도심 어느 공원에 든 여인, 같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행동을 하는 세여인 등의 작품이 있다. ‘입 가린 여인’과 ‘손 등짐을 진 여인’은 각기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배경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들판이거나 바다이거나 상상에 맡겨도 될 만큼 미학적 목표가 거리두기의 목적으로 자리한다.
정향심 스스로도 “‘인간’ 에게는 얼마나 많은 거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삶은 공간과 함께 이루어지며 그 속성 안에는 같은 무리 간에 제각기 점유하고 방어하는 영역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유지하는 일련의 일정 거리도 있다.”고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회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이나 차이 등을 여인을 주제로 표현한다고 하였다. <공감 Sympathy_Four seasons>이 있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시간과 계절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숨어 있다. 심산(深山)의 단청과 같은 색으로 긴 시간과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며있다. <좁아진 너의 마음만큼_Staying>의 인물을 중첩시켜도 좋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각양의 거리가 함께한다.
화가 정향심은 조선대학교미술대학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수료하고 46회의 개인전을, 다수의 그룹전과 단체전을 진행한 중견 여성 화가이다. 이번 전시는 2023년 9월 15일부터 10월 4일까지 삼청동 더아트나인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창선 기자 lcs2004@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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