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가 있다. 1999년 10월 개봉했으니까 벌써 사반세기 전 옛날 영화다. 줄거리도 잘 생각나지 않는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무대포라는 깡패 역으로 출연했던 유오성의 대사다.
“상대가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난 한 놈만 패.”
영화에서 유오성은 동네 철가방 군단이 무더기로 싸움을 걸어오자 그 가운데 만만한 놈 하나만을 집중 공격한다.
오성은 사방에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최초 목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기가 질린 상대방들이 점차 겁을 먹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싸움판은 오성 주도로 판세가 바뀐다.
실제 상황에서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슈퍼맨이 아니라면 숫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많은 적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불리할 때는 좋게 표현해 ‘잘 하는 것 한 가지에 올인하는 선택과 집중’, 나쁘게 말하면 ‘나 건드리면 피곤해진다고 겁박하는 일종의 또라이 전략’이 필요할 거 같다.
뜬금없이 영화 한 장면을 언급한 이유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쿠팡과 CJ 간 일련의 갈등이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쿠팡은 경이로운 회사다.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투자자들에게 ‘밝은 미래’를 확신시켜 줬고, 경쟁사들을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런 회사가 지난해 3분기부터 마침내 영업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난 1분기엔 처음으로 분기 흑자 1억 달러를 넘기며 3분기 연속 흑자를 실현했다. 이런 기조라면 올해 연간 흑자 달성도 가능할 거 같다.
롯데, 신세계 등 전통적 유통 강자들은 여전히 “쿠팡은 과대 평가돼 있다”고 강조하지만 내심 불편하다. 지난해 쿠팡은 27조원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이마트와 롯데쇼핑을 제쳤다.
이들과 다소 결은 다르지만 국내 이커머스 1위인 네이버 역시 쿠팡의 ‘로켓 성장’이 부담스럽다.
네이버는 최근 포털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스마트스토어를 제외한 쇼핑 부문 성장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네이버가 신세계와 2500억원 규모 피를 섞는 제휴 관계를 구축하고 배송력 강화를 위해 CJ대한통운과 물류 동맹을 맺은 이유다.
쿠팡 입장에서 보면 비로소 이익이 나기 시작했는데 돌연 ‘사면초가’인 상황이 돼 버렸다. 국내 1위 네이버, 이베이를 인수하며 단숨에 이커머스 강자로 떠오른 신세계 등과 치열한 플랫폼 경쟁을 치르는 가운데 CJ와 같은 플레이어마저 적으로 돌아선 형국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 쿠팡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쿠팡은 ‘반쿠팡 연대’를 끊기 위해 전면전에 나서는 대신 고리 하나를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본다.
‘한 놈만 패는’ 유오성식 선택과 집중 혹은 또라이 전략이다. 그리고 쿠팡이 사방 뭇매에도 불구하고 집중 공격하는 대상으로 삼은 게 바로 CJ인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햇반, 비비고만두 등 CJ제일제당 제품 발주를 돌연 중단했다. 쿠팡은 수차례 납품량을 맞추지 않은 데 따른 페널티라고 했고, CJ제일제당은 플랫폼 갑질이라며 발끈했다. 어쨌든 처음 싸움을 건 쪽은 쿠팡이다.
이어 최근에는 CJ올리브영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중소 뷰티 브랜드의 쿠팡 납품을 방해해 손해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이번에도 쿠팡 선공이다.
CJ 상품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쿠팡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쿠팡은 CJ제일제당 납품 중단에도 국내 중소기업들과 제휴해 만든 자체브랜드(PB)로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쿠팡은 협상 대신 갈등을 선택하고 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쿠팡과 CJ는 일부 사업 영역이 겹치면서 앞으로 갈등 양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를테면, 물류(CJ대한통운 vs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OTT(티빙 vs 쿠팡플레이) 등이 그런 분야다.
물류까지 확전될 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만일 OTT에서 쿠팡과 CJ가 다시 맞붙는다면 쿠팡이 이른바 ‘유오성식 전략’을 취했다는 가설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될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티빙을 론칭한 CJ와 달리 쿠팡플레이는 쿠팡이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선보인 지원 도구일 뿐이다.
주요 전선도 아닌 OTT 분야에서 CJ와 쿠팡이 다시 대결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쿠팡은 사면초가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나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용성 기자 cys@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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