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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전세제도, 폐지도 유지도 쉽지 않다

기사입력 : 2023-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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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전세 폐지론'에 이한준 LH 사장 반대의견 제시
'이중채무구조' 전세대출 축소 선결과제, 임대사업자 검증 강화 필요성도
박근혜정부 시절 시도됐던 에스크로 제도, 낮은 호응에 시장안착 실패

지난 16일 열린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국토교통부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6일 열린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국토교통부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 및 급등 피로감 등으로 인해 집값이 빠르게 하락한 여파로 전세시장 역시 유례없는 침체를 맞이했다.

하락기를 맞은 전세시장은 2020~2021년 호황기에 자행됐던 갭 투자로 인해 무리한 대출, 이른바 영끌로 인해 형성된 거품이 터지며 여러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서울조차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등 전세사기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우려가 쏟아지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마저 전세제도 자체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정부 주거정책의 첨병 중 하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전세제도는 필요하다는 반대의견을 내며, 정부 내에서도 전세제도를 두고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 정부 부처도 전세제도 놓고 설왕설래, “수명 다했다” vs “인위적 폐지 안돼”

원희룡닫기원희룡기사 모아보기 국토부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한다"고 발언했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응급처방이 되는대로 잘못된 판을 수리하는 작업을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임대차3법을 폐지하는 차원에서 넘어 임대차시장의 문제점 자체를 분석하고 복기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각오다.

원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정부가 사실상 전세제도 자체의 점진적인 폐지를 거론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전세제도는 세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금융 제도로 꼽힌다. 특히 소득대비 높은 수준인 집값으로 인해 전세제도는 서민 실수요층의 주된 주거 사다리로 통해왔다.

그러나 2020~2021년 사이 집값이 두 자릿수대로 폭등하는 등 부동산시장의 유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자 전세시장도 비정상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당시 횡행한 갭 투자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의 매매 가격과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전세 계약이 종료되면 전세금을 올리거나 매매 가격이 오른 만큼의 차익을 얻을 수 있어 저금리, 주택 경기 호황 시기에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갭 투자는 부동산 호황기에 집값이 상승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깡통주택으로 전락해 집을 팔아도 세입자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집 매매를 위한 대출금을 갚지 못할 수 있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대출금액과 전세금액의 합이 집값의 70%보다 커져, 계약 만기시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경우를 가리켜 깡통전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희룡 장관이 띄운 전세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분석은 이 같은 갭 투자가 전세시장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한준 LH 사장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제도는 필요하다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정부가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자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다""국민이 선호하는 것에 따라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소득별 주거점유 형태 / 자료=국토교통부 통계누리이미지 확대보기
2021년 기준 소득별 주거점유 형태 / 자료=국토교통부 통계누리

2021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당해 기준 임차주거비중은 39.0%로 나타났다. 수도권으로 한정하면 이 비중은 45.7%까지 오르며, 특히 소득 하위계층은 49.5%로 2명 중 한명이 전월세 임차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소득 하위계층까지 범위를 좁히면 절반 이상이 전월세로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전세제도가 급작스럽게 폐지될 경우 현재 거주 중인 전세 거주민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단이 사라져 시장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구조적 문제점 지닌 전세제도, ‘이중대출등 해묵은 문제점 해소 가능할까

전세제도는 집을 담보로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담보대출인 셈인데, 이를 얻기 위해 세입자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세입자가 빌린 돈을 다시 임대인에게 빌려주는상황이 되면서 폭탄을 돌리는 형국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세보증금 일부를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공탁(에스크로 제도)하게 하거나, 보증금을 집값 70% 이하로 제한해 역전세와 사기 악용을 막는 방안 등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제도들이 시행되면 그간 이중대출구조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전세제도의 약점을 완화해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 장관이 띄운 에스크로 제도는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시도된 바 있다. 다만 당시 낮은 수수료로 인해 시장 참여자들의 충분한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전세 레버리지(갭투자)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보증금을 신탁기관에서 관리하므로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현저히 감소할 수 있으며, 임대인과 임차인간 정보, 협상, 편익 등의 비대칭적인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임대인 입장에서는 공탁을 강제 받을 경우 발생할 수익성 악화 및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이에 임대인들이 전세를 기피하고 월세를 놓는 것을 선호하게 되면 오히려 임차인들의 주거 취약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 밖에 ▲전세자금대출 요건 및 금액 기준 강화 ▲공인중개사 등 임대사업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철저한 검증 ▲부동산거래 전반을 감시할 독립 정부기관 출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거나 갈 길이 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부동산 한 전문가는 전세제도는 워낙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제도고, 해묵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정부도 바라던 바가 아닐 것이라며, “현재로써는 전세사기와 여름 역전세난 우려 등 급한 불을 끄고 나서 구체적인 대안을 협의하는 게 정부의 방향성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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