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5년 만에 대표에 오르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년간 넥슨에 몸담아 온 정통 ‘넥슨맨’이다. 2003년 넥슨코리아 입사 후 2010년 네오플에서 게임 서비스를 담당하는 조종실 실장, 2012년엔 피파온라인 게임 서비스 총 책임자격인 피파실 실장을 맡았다. 이어 2014년 넥슨 사업본부 본부장, 2015년부터는 사업총괄 부사장을 역임했다.넥슨 주요 타이틀인 ‘피파 온라인’은 네오위즈가 개발해 2006년 서비스한 작품이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수익성은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아이템 판매 등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고도화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네오위즈는 1년 뒤 ‘피파 온라인2’를 내놨지만, EA와의 재계약에 실패했고, ‘피파 온라인3’는 EA 한국 개발사인 ‘스피어헤드’가 개발했다. 넥슨은 국내 서비스를 맡았다.
이후 넥슨은 ‘던전앤파이터’가 중국에서 잭팟을 터트렸고 ‘피파 온라인3’ 흥행까지 성공시키며 국내 1위 게임사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넥슨코리아의 지속적 성장을 이끈 점을 인정받아 이 대표도 지난 2018년 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입사 15년 만이다.
넥슨은 지난해에는 국내 게임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거둔 가운데 나 홀로 성장세를 지키며 국내 게임사 1위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넥슨코리아는 넥슨 전체 실적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넥슨 내에서 비중이 절대적이다. 호실적을 기록한 배경으로는 지난해 선보인 신작 ‘던전앤파이터 모바일’과 ‘히트2’ 흥행이 있었다.
또 2021년 출시한 서브컬처 게임 ‘블루 아카이브’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서 큰 인기를 끌었고, 기존 타이틀인 ‘피파 온라인4’와 ‘피파 모바일’은 카타르 월드컵으로 수혜를 입었다.
지난 2021년 연임에 성공한 이 대표는 내년 3월까지 회사를 이끌 예정이다.
위기 속 해결사로 나서
이정헌 대표는 대표이사 취임 직후 개발력 향상을 위해 신규 개발조직을 ‘독립스튜디오 체제’로 개편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각 조직 개성에 기반한 창의적 게임 개발을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스튜디오는 △데브캣 스튜디오 △왓 스튜디오 △원 스튜디오와 개발 자회사 △띵소프트 △넥슨지티 △넥슨레드 △불리언게임즈 등 총 7개로 운영됐다.
당시 이 대표는 7개 스튜디오에 대해 “넥슨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나갈 키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 체제 1년 만인 지난 2019년 창업주 고(故) 김정주닫기김정주기사 모아보기 NXC 대표가 넥슨 매각을 공식 추진했다. 하지만 해외 전략적 투자자들 참여가 저조했고, 세 차례나 본 입찰이 지연되자 6개월 만에 매각을 철회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수 프로젝트가 개발 중단 사태를 맞는 등 회사는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았다. 김 창업주의 넥슨 매각 선언으로 혼란이 가득한 회사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 대표가 나섰다.
그는 PC와 모바일 사업 부문을 통합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키로 결정했다. 또 신작 론칭 전략을 ‘다작’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바꿨다. 완성도 높은 게임, 큰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게임만 시장에 선보이겠다는 이 대표 의지의 반영이었다.
넥슨은 매년 10종 이상 신작을 내놨는데, 2018년 넥슨코리아는 매출 9468억원, 영업손실 128억원을 기록했다. 넥슨코리아 창사 이래 첫 영업손실이었다. ‘천애명월도’ ‘니드포스피드 엣지’ ‘피파 온라인4’ ‘배틀라이트’ ‘아스텔리아’ 등 다양한 신작을 내놓았지만, ‘피파 온라인4’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넥슨은 ‘듀랑고’ ‘어센던트 원’ ‘마블 배틀라인’ ‘배틀 라이트’ 등 출시 1년이 채 안된 타이틀의 서비스를 종료했다.
또 ‘제노프로젝트’ ‘데이브’ ‘네 개의 탑’ 등 개발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특히 8년간 600억원을 들여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 ‘페리아 연대기’도 중단하는 등 고강도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구조조정은 없다”며 혼란을 잠재웠다. 그는 “넥슨이 계속 1등이었지만 최근 국내건, 해외건 두각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프로젝트 중단 등은)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서 진행된 일”이라며 “직원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 구조조정과 연결해서 네거티브한 프레임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이 대표는 업계 우려를 뒤로 하고 실적으로 넥슨의 명성을 입증했다. 넥슨코리아는 2019년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섰으며, 영업이익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20년엔 게임업계 최초 연매출 3조원을 기록하는 등 국내 1위 게임사 자리를 공고히 했다.
이 대표는 “2019년이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내부에서도 많이 달라지려고 노력해왔고, 이제 아주 조금씩 보인다고 생각한다”며 “재미있는 게임을 잘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사랑받는 넥슨’이 되도록 체질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이 곧 IP”
최근 개봉한 영화 ‘리바운드’는 게임사 넥슨이 처음으로 상업 영화에 투자한 사례다. 영화는 지난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농구부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들이 이룬 8일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영화 ‘리바운드’ 투자 소식을 알렸다. 당시 업계에선 “넥슨이 게임과 관련 없는 투자를 한 것은 엔터테인먼트 분야 진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영화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게임 외적으로도 다방면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전달하고자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며 “영화를 베이스로 하는 엔터 산업에 한국에서 뛰어든다는 것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대표는 그간 신규 IP 확보가 곧 게임사 생존 수단이라고 봤다. 기존 서비스 중인 IP로는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미래 게임사가 생존하려면 필수적으로 IP를 확보해야 하는데, IP는 스토리텔링이라고 보고 있다”며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게임과 웹툰, 소설, 영상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만들며 진화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IP 확보에서 벗어나 게임뿐만 아니라 IP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면 다양한 문화로 만들어내기 위한 투자도 지속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일환으로 넥슨은 콘텐츠 형식과 범위에 얽매이지 않고 IP 확보와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월엔 영화감독 루소 형제가 설립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AGBO에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IP 확장을 위한 영화·TV 콘텐츠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영화 ‘기생충’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와도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주목하며 게임, 영화, TV, 음악 분야별 최고 회사들과 다각도로 협력하고 있다”며 “넥슨은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IP 확장과 확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더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넥슨 일본법인 이사 합류
이정헌 대표는 지난달 열린 넥슨 일본법인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넥슨 일본법인은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한 모회사다. 지난 2018년 넥슨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회사 성장에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대표이사 첫해인 2018년 창사 이래 첫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2019년 강도 높은 체질 개선으로 사상 첫 연매출 1조원을, 2020년엔 업계 최초 연매출 3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연매출 3조946억원을 거두며 역대급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일본법인 이사로 합류하게 되면서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법인 대표이사와 패트릭 쉐더룬드 엠바크스튜디오 대표, 우에무라 시로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기존 등기이사와 함께 그룹의 전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선 이 대표가 일본법인 이사진에 합류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 확대는 물론 사업적 시너지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넥슨 측은 “넥슨코리아의 최대 성과를 경신하고 있는 이정헌 대표의 넥슨 일본법인 이사진 합류로 넥슨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와 최상의 사업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은경 기자 ek786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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