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사법 리스크를 털어냈다. 금융감독원 중징계에 불복해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다. 손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징계 근거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1·2심의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것이다.
◇ 'DLF 징계 취소 소송' 최종 승소…법원 “제재 법적 근거 없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5일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문책 경고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하지 못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고 봤다. 반면 손 회장 측은 내부통제기준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경영진까지 제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손 회장은 같은해 3월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제재 조치 사유 5개 중 ‘금융상품 선정 절차마련 의무 위반’만 인정되고 다른 4개 사유는 모두 인정되지 않아 무효라고 판결했다.
금감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지난 7월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집합투자상품위탁판매업무지침 등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 법정사항을 포함시켰고,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이상 내부통제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제재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1심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의 '내부통제기준 설정·운영기준'을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 판단기준으로 인정하지 않은 반면 2심에서는 실효성 판단기준으로 인정했다. 금감원은 내부통제기준의 설정·운영기준이 법규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법리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고 상고를 결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돼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설시했다”며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그 내부통제기준을 일부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분 사유로 볼 수 없다고 본 원심을 수긍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향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관련 제재안건 처리 및 향후 제도개선 등에 참고 및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역시 “향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잣대로 금융위 등 관계기관과 함께 내부통제의 실효성 제고방안 마련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상 내부통제기준 설정·운영기준의 규범력이 인정되었다는 점에 상고의 실익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최대 실적 등 성과…라임펀드 중징계 등은 변수
손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손 회장은 2019년 1월 그룹 체제로 재출범한 우리금융의 초대 회장으로 오른 뒤 그룹 최대 숙원인 완전 민영화 과제까지 풀어냈다. 우리금융의 실적 성장세도 이끌고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전년 동기 대비 97.9% 늘어난 2조587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4대 금융그룹 가운데 순이익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올 상반기엔 전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1조76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이날 DLF 소송 승소 확정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DLF 중징계 관련 사법 리스크도 털어냈지만 연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중징계 등 다른 변수가 산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9일 정례회의에서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 문책 경고 상당의 조치를 의결했다. 금융위의 중징계 확정 이후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손 회장이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손 회장은 라임 징계와 관련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인 행정소송 제기 등 대응 방안을 두고 장고를 거듭해왔다. 사내 법무실뿐 아니라 김앤장 등 외부 자문 인력과 함께 법리 검토를 진행했다. 손 회장이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이 이를 인용하게 되면 금융위의 징계 효력이 일시 중지되고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
손 회장 입장에선 DLF 소송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 만큼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 건 역시 소송으로 대응할 명분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DLF 징계와 라임 징계 건은 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과 위반 사항에서 차이가 있다. DLF 징계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사항 위반이, 라임 징계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부당권유 금지조항 위반 등 불완전판매가 제재 처분 사유다.
금융당국은 라임펀드 판매 당시 행위자가 본점 부행장급이었던 만큼 감독자인 손 회장(당시 우리은행장)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자본시장법 제49조는 ▲ 거짓 내용을 알리는 행위 ▲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거나 확실하다고 오인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알리는 행위 ▲ 투자자가 거부했는데 투자 권유를 계속하는 행위를 '부당권유' 행위로 간주하고 금지하고 있다.
소송 상대도 다르다. DLF 징계는 지배구조법상 금감원장 전결로 확정된 데 반해 라임 징계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금감원 제재심에서 금융위에서 의결했다. 자본시장법 등은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는 금융위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금융당국이지만 금융위는 정부 기관에 속한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이 금융위를 상대로 소송을 강행할 경우 현 정부의 방향성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손 회장이 연임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명예 회복 등의 차원에서 라임펀드 징계 건에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부정적 기류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손 회장 연임에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감원장은 지난달 10일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의 소송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당사자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금융권은 이를 손 회장의 연임에 대한 사실상 ‘경고성 발언’이라고 봤다.
이 원장은 같은달 14일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가 ‘새 사람’을 원하는 기류가 감지되는 점도 손 회장의 연임 결정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최근 신한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 모두 임기 만료를 앞둔 회장을 교체하기로 했다.
농협금융은 지난 12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신한금융은 8일 차기 회장 후보에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닫기조용병기사 모아보기 현 회장 대신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선정했다. 조 회장은 “세대교체를 할 때”라고 물러나는 이유를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갑작스러운 조 회장의 사퇴를 두고 외압설, 정부와의 교감설 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손 회장은 16일 열리는 우리금융 이사회에서 직접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이사회는 내년도 경영계획 등의 안건을 보고·의결하는 정기 이사회지만, 비공식적으로라도 손 회장의 연임 여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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