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신혜주 기자] 참새떼가 들판 곡식을 축내자 마오쩌둥은 참새 박멸을 지시한다. 참새가 사라진 들판은 메뚜기가 지배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이다. 더 많은 곡식이 사라지고 있다. 결과는 3000만명이 굶어 죽은 1958~1961년 참사다. 서민을 위한 정의로 포장된 정책이 취약계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강태수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인하됐다. 등록 대부업체 수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불법 사금융은 호황을 누렸다.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2021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대부업자 수는 5620개로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기 직전인 6월 대비 72개(1.3% 감소)가 사라졌다. 반면 불법 대부광고와 고금리, 불법 채권추심, 불법 중개수수료 등 불법 사금융은 2017년 5937건에서 2021년 9238건으로 최근 5년간 56%나 증가했다.
대부업계가 쪼그라들고 불법 사금융이 판을 치는 와중에도 정치권에선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20% 보다 더 낮춰야 한다는 법안을 계속 발의했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7월 이후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 여당의 법정 최고금리 인하 관련 법안이 7개나 제출돼 있다. 최고 이자율을 연 13~15%까지 낮추자는 등 저마다 주장하는 금리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현행 20%인 최고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문제는 최고금리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대부업계가 붕괴될 수 있고 7~10등급의 저신용자는 결국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8년 2월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내려갔을 때 26만1000명이 대출 만기 후 제도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이중 4만7000명이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됐다.
서민들의 이자 비용 경감과 대출시장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작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결과적으로 대부금융시장 대출 공급량 및 공급 축소 → 저신용자의 대부업체 이용 기회 축소 → 대부금융시장 지속가능성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업계와 학계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최고금리 규제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대부금융시장의 적정 금리는 몇 % 인지 등을 진단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대부업 업태가 변하고 있다. 대부업은 급전이 필요한, 담보가 없는 서민에 대한 신규 대출을 담당하는 곳이다. 금감원의 지난 4년간 자료를 보면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4%, 20%까지 두 차례 인하될 동안 대부업계 총잔액은 16조5000억원에서 14조6000억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잔액은 46% 줄었는데 담보대출 잔액은 106%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20년 말 대비 2021년 말에도 약 5%가 증가했다.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소액 대출을 취급하는 대부업권이 위험차주에 대한 대출을 신용대출 대신 담보대출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업권 자체 특성 및 취지와 무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서민금융을 담당하는 제2금융권 및 대부업권의 경우에 급등한 자금조달 비용으로 운영마진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지난해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 20%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저금리 상황에 설정된 최고금리가 높아진 시장금리와 부합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고위험 차주에 대출 시 위험가중치가 증가하고 대손충당금 설정에 따른 위험관리비용 증가로 이어져 신용위험이 큰 차주에 대한 금융지원을 배제하고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금융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오는 것이 아닌 미래의 자기 소득을 당겨오는 행위다. 저신용자는 이런 소비평활화(소비평탄화 · Consumptiom Smoothing) 행위를 통해 소비를 일관되게 가져가고 있다. 현재 취약계층의 소비평활화를 도와주는 곳은 2금융권과 대부업권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에서 여신전문금융회사채를 매수하는 행위들도 이런 철학을 담고 있다. 결국 신용평가의 핵심은 앞으로 ▲미래 소득 경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를 잘 파악한다면 법정 최고금리를 정하지 않는 게 사실상 소비자 호용에 훨씬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퇴짜 맞은 서민 취약계층을 불법 사금융의 먹잇감으로 내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금리 상승기 민생 안정을 위한 최고금리 규제 완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법정 최고금리를 최소 26.7% 이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물가 상승률 등에 따른 대부금융시장의 적정금리 수준을 예측한 결과 대부분의 예측치가 20%를 상회했다. 기준금리와 물가 상승률이 각각 3%와 5%일 경우 대부금융시장의 금리 예측치는 최저 26.7%, 최대 37.7%, 평균 32.2%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대부금융시장의 적정 금리 수준이란 외부 영향 요인의 변화라든지 시장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어떤 상황 변화에도 예외 없이 20%라는 고정적인 금리 상한을 정해 두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금융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경제 상황에 따라 최고금리를 올릴 수도 있는 ‘탄력적 규제’가 보다 실효적”이라며 “취약계층의 포용 확대를 위해서라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정 금액 이내의 단기 소액 대출은 최고금리 적용을 예외로 두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라는 게 금융시장의 현 상황을 판단해서 인하하기보단 정무적인 판단, 즉 선거와 연동하는 착한 정책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업법이 생겨난 이유는 지하경제의 양성화였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더 인하하는 것은 대부업권을 음성화로 회귀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신혜주 기자 hjs050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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