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정부로서는 다음달 8일 석가탄신일이 마지막 기회다. 최근 재계가 이 부회장 등 주요 기업인들 사면·복권을 청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아니라 현 정부가 나서 경제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한 매듭을 풀어주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진작에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중이던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하고 있어 우리도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며 이 부회장 현업 복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바로 며칠 뒤엔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을 찾아 K-반도체 전략보고를 받고 "기업인들의 도전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도 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던 때라 이는 이 부회장 사면·복권을 염두해 둔 발언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 사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던 대통령의 고민이 깊었던 탓이다. 이 부회장은 대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법무부에 해외 출장을 신고해야 하는 보호관찰자 신분이다. 향후 5년 취업 제한에 묶여 등기 임원으로서 책임 경영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정권 교체기 신·구 권력 충돌과 이른바 ‘검수완박’ 다툼에 넋 놓고 있는 사이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2년여 지속된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툭툭 끊어졌고, 식량과 원자재 값은 급등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불황에 신음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 사면·복권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진영 논리 혹은 반기업 정서로 인해 특혜 시비가 불거지는 상황은 곤혹스러울 수 있다. 문 대통령 고민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최근 임기 마지막 기자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 사면을 묻는 질문에 "국민의 지지 또는 공감대 여부가 여전히 우리가 따라야 할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 판단 기준은 이미 나와 있다. 기 진행된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이 부회장 사면을 찬성하고 있다. 사면 시기 역시 당장 하거나, 가급적 빨리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여론은 “이 부회장이 경제 외적 어려움에 발목 잡히지 않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이다.
'위기에 강한 나라.' 지난해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코로나 시기 현 정부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말로 구호가 아니라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에 강한 나라’를 입증해야 할 때다. 국민의 삶을 지키고 미래를 책임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최용성 기자 cys@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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