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태계 변화에 따라 D.N.A(데이터, 네트워크, AI)나 IT 업종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직접 이끌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현신과 역동성이 확산되는 디지털 중심지로서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주도하는 똑똑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탄소중립(Net-zero)을 향한 경제·사회의 녹색전환을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는 그린선도 국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또 "국민의 삶과 일자리를 지켜주고 실패와 좌절에서 다시 일으켜주는 더 보호받고 더 따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감성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미래비전을 제시했다.
정부는 당장 2022년까지 총 사업비 67.7조원(국비 49.0조원) 투자하고 일자리 88.7만개를 창출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인 2025년까지 총 사업비 160.0조원(국비 114.1조원) 투자하고 일자리 190.1만개 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한국의 '변신'과 관련해 시간적으로 3개 국면을 구분했다.
우선 2020년, 즉 올해는 '대전환 착수기'로 명명했다. 위기 극복 및 즉시 추진 가능한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총사업비는 6.3조원(국비 4.8조원)을 투자(3차 추경 활용)한다.
2021~2022년은 '디딤돌 마련기'라고 칭했다. 새로운 성장경로 창출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시기다. 이 때까지 누적 총사업비 67.7조원(국비 49.0조원)을 투자하고 일자리 88.7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2023~2025년은 '대전환 착근기'라고 명명했다. 새로운 성장 경로 안착을 위한 보완과 완성의 시기라는 것이다. 누적 총사업비 160.0조원(국비 114.1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1만개를 창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3대 분야'별로 보면 우선 <디지털 뉴딜>과 관련해선 총사업비 58.2조원(국비 44.8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90.3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D.N.A. 생태계(국비 31.9조원), 비대면 산업 육성(국비 2.1조원), SOC 디지털화(국비 10.0조원)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그린 뉴딜>과 관련해선 총사업비 73.4조원(국비 42.7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65.9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기후 변화 대응 강화, 친환경 경제 구현을 위해 녹색 인프라(국비 12.1조원), 신재생에너지(국비 24.3조원), 녹색산업 육성(국비 6.3조원) 등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다.
<안전망 강화>와 관련해선 총사업비 28.4조원(국비 26.6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33.9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조 전환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해 고용·사회 안정망 확충(국비 22.6조원), 디지털·그린 인재 양성 등 사람투자 확대(국비 4.0조원) 등을 제시했다.
■ 시장의 기대감
일단 정부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만큼 경제성장률은 자극을 받게 된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집행은 국비 기준 4.8조원 규모로 작년 GDP 대비 0.25%에 불과하지만 내년 예산안부터 22조원 뉴딜 지원이 추가된다"면서 "코로나19 피해에 대응해 보조금, 지원금 형태로 지원했던 금년 추경과 달리 한국판 뉴딜은 인건비와 물건비 지출이 대부분"이라며 성장세 확대를 예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인건비 및 물건비 재정승수는 1.24로 민간 경상이전(0.23), 순융자(0.00)에 비해 재정 효과가 크다.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성장 기여도가 커질 수 있다.
하 연구원은 "내년 22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집행으로 약 30조원 가량의 GDP 증가가 기대된다. 이는 작년 GDP의 1.5~1.6% 수준"이라며 "여기에 10조원 수준의 민간투자까지 더해질 경우 GDP 제고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판 뉴딜 정책에 따른 경기 모멘텀 강화 효과로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이 상승할 것이란 낙관론도 보인다.
사실 중국의 7대 신인프라 투자정책, 미국·유럽·아시아 국가 등의 ICT 플랫폼 구축 등에서 보듯이 세계는 '주도산업'을 놓고 경쟁 중이다.
이런 경쟁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사람들은 경기와 주식시장 낙관론을 펼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큰 변화는 재정투자 규모"라며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공개했던 2022년까지 재정투자 규모는 12.9조원이었지만, 14일 종합계획 발표에서는 19.6조원(51.9%)으로 증액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DNA 생태계 강화(95.3%), 녹색사업 혁신 생태계 구축(88.2%),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90.7%)에 투자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투자규모나 증가율을 감안할 때 핵심은 ICT 투자"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전 산업분야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과 기존 산업의 ICT 기능 접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노린다.
이 연구원은 "한국판 뉴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업종은 5G 중심의 무선통신,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데이터 산업과 2차 전지 및 신재생에너지"라며 "주식시장은 IT(데이터 산업, 2차 전지, 신재생 에너지) 주도로 상승추세를 전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장의 의구심
코로나19 사태와 산업 생태계의 변화로 전세계가 '큰 정부' 실험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전날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미 뉴딜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 또 이런 정책 방향은 정부가 주도한다기 보다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진단들도 보인다. 아울러 주식시장의 관련 종목들은 이미 상당히 오른 상황이다.
A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판 뉴딜은 알려진 내용"이라며 "세상의 변화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진행되던 것이며, 주가엔 이런 점이 많이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숨겨진 수혜주를 찾는 움직임은 계속되겠지만, 기대감이 상당히 반영돼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 주도 정책 그 자체가 산업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보는 것 역시 조심스럽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 두루뭉실하다거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와닿지 않고 재정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면서 우려하는 시각도 상당히 존재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가 온갖 좋은 말을 동원해 천지가 개벽할 것이란 식으로 말을 했다"면서 "정부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하지만, 뭔지도 모르고 좋은 건 다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일반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제일 나쁜 건 무능한 정부가 사리분별 못하고 열심히 하려는 것"이라며 "이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은 재정악화와 국민들에겐 더 높은 세금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산업정책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의 틀을 만드는 동시에 규제 혁파를 통해 산업의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했다.
■ 돈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 부채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쓸 돈'은 계속 많다. 경기가 나빠 세금을 거두기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세원 발굴과 함께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두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뉴딜을 통해 향후 적자국채 발행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2025년까지 국비 114조원, 총사업비 160조원을 거론한 상황에서 채권시장엔 물량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명실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반영한 2020~2025년 연간 국고채 발행액은 평균 16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2018년, 2019년 국고채 연간 발행액 97.4조원, 101.7조원을 크게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비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지만 세출구조조정을 통한 국비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결국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한국판 뉴딜의 재원 조달이 이뤄질 것"이라며 "채권시장의 공급 부담은 불가피하고 매수 심리 위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C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올해부터 국채 발행이 대폭 늘어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튼 정부정책으로 적자국채가 늘어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뉴딜의 구체성이 부족한 데다 어차피 '큰 정부의 큰 예산 편성'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면서 상황을 봐야 한다는 지적들도 많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뉴딜에 따른 국채 발행 물량 증가를 우려하기도 하지만, 예산에 포함되는 내용이고 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전날 약간 반응하는 듯도 했지만, 사실상 시장 반응이 별로 없는 것도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라며 "당장의 수급 우려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률이며, 이 부분은 여전히 비관적이어서 금리가 오르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의 뉴딜 정책을 폄하하면서 정치적 의도나 불확실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E 증권사 딜러는 "지금 나라 살림은 어렵다. 세출은 10% 늘어도 세입이 따라오지 못한다"면서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뉴딜이 필요한지도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경기 모멘텀은 없으니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라며 "정부가 추경을 계속하거나 돈을 많이 쓸 것이란 점은 모두가 아는 기정사실"이라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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