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규제 위주의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아파트 값은 잠시 안정되는 듯 하다가 고개를 들기 일쑤였다.
서울과 같은 아파트 수요가 많은 지역에 신규 공급이 별로 없었던 데다, 정부의 규제 역시 적극적인 공급(집 보유자 매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권 초 8.2 대책이 갭투자로 이어졌고, 이후 임대사업자 '특혜'가 물량을 더 잠기게 만들었다. 이어진 각종 정책들도 수요를 제어하거나 공급을 늘리지 못했다.
2019년엔 상반기 안정되는 듯하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반기에 다시 급등했다.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12.16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2020년이 시작된 뒤 청와대는 솔선수범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의 공직자들에게 그런 '권고'는 먹히지 않았다.
■ 미래 충북 도지사 후보...서울 안 팔고 청주 판다
그런 뒤 자신이 나서는 듯했다.
2일 노 실장이 서울 아파트를 처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일부 언론 매체는 '긴급 뉴스'로 이를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정부의 적극적인 집값 안정 의지로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오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 실장이 판다고 한 아파트는 서울 아파트가 아니라 '청주 아파트'라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 일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일부에선 "다음 번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 출마가 확실시되는 노 실장이 강남 아파트 대신 충북 청주 아파트를 파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면서 "강남 아파트를 위해서라면 도지사까지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이런 내용들은 금융시장 메신저 등을 타고 돌아 다녔다. 각종 우스개 소리(?)도 많았다.
노 실장이 서울 아파트를 보유하기로 한 데엔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의 컨설팅 효과가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나, 부인이 '그깟 권력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면서 막았을 것이란 추론 등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최고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조차 서울 아파트를 아까워하는 세태를 개탄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집값 안정을 기대하겠느냐는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 막강 공직자도 불로소득을 원한다..노 실장의 합리적(!) 선택
공직자 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노 실장은 서울 반포동 한신서래 전용면적 46㎡와 충북 청주 가경동에 전용 135㎡를 가진 2주택자다. 청주는 최근 6.17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어떤 집을 팔아야 할까.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 있는 집을 팔 때는 양도세 중과를 각오해야 한다. 양도세 최고세율이 42%인 가운데 다주택자는 2주택자인 경우 10%p, 3주택자 이상인 경우 20%p를 더한 세금을 내야 한다.
법원등기부는 노 실장이 서울 반포 한신서래 전용 46㎡의 작은 아파트를 2006년 2억8천만원에 산 것으로 기록해 뒀다. 한신서래 전용 46㎡는 작년 10월 10억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는 최근 무려 15억원을 호가했다.
지방의 기준시가 3억원 이하 아파트는 중과세 여부를 판단할 때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노 실장이 보유한 청주 아파트 전용 135㎡는 지난달 중순 2억9600만원에 거래됐다.
청주 아파트 시가가 3억원을 넘으면 다주택자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울 아파트를 팔면 세금이 크게 증가한다. 이런 경우라면 서울 아파트에서 12억원 이상의 이익이 났기 때문에 양도세를 6억원 가량 두들겨 맞는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청주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 노 실장이 2003년에 산 청주 아파트는 1억원도 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청주 아파트를 처분하면 노 실장은 1주택자가 돼 일단 9억원까지 비과세를 받는다.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보유기간에 따라 최대 80%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는다.
청주 아파트만 팔아 놓으면 향후 서울 아파트를 팔 때 노 실장이 내야 할 세금은 1천만원 남짓한 수준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노 실장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청주 흥덕을 국회의원을 할 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자신의 시집을 산자위 산하 기관에 판매해 구설수에 오른 흔치 않은 경험을 갖고 있다.
이처럼 평소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의 노 실장이 괜히 서울 금싸리기 땅에 있는 집을 팔아 화를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노 실장이 '똘똘한 한 채'의 미덕을 모를 리 없었다.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아파트값 주도 성장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이 3억원(52%) 폭등했다면서 정부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당시 경실련은 정부가 아파트 가격 안정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쳤으며 '불로소득' 주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특히 "대통령이 취임 이전으로 집값을 낮출 것을 약속하고 청와대 비서실장도 다주택자는 집을 팔라고 했지만, 청와대 참모와 세종시 관료들은 반대로 움직였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의 이 말이 뼈에 사무쳐 노 실장이 '과감한' 결단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불로소득만 490조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 부동산 전체로 확산하면 불로소득은 1천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한국경기가 안 좋다고 하는데, 한국의 재산은 이런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빠르게 불어났다.
경실련은 전국적으로 약 2,500조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해 유례없는 불로소득 주도성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25% 올랐지만, 문재인 정부는 단 3년만에 가격을 52% 올랐다고 분석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명박 정부 시절 3%가 하락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1.3억원(29%) 오르고 문재인 정부에선 3.1억원 뛰었다는 것이다.
약 160만 채에 달하는 서울 아파트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이명박 정부 -35조원, 박근혜 정부 155조원, 문재인 정부 493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 부동산 고수열전 보는 듯한 청와대의 재테크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났던 작년 11월 9일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부동산 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급등시키는 데 자신 있다는 말을 대통령이 잘못 말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노 실장이 다시금 청와대 다주택자들에게 부동산 매도를 권고한 뒤 경실련은 이날(2일) 청와대 현직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가 28%에 달한다면서 비난했다.
특히 수도권 내 2주택 이상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의 주택가격은 2017년 11.8억원에서 2020년 현재 19.1억원으로 7.3억원(62%) 폭등했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청와대 다주택 참모와 장관부터 즉각 교체해 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시세를 40% 반영하는 불공정한 공시지가는 인상하지 않은 채 보유세 강화를 주장하는 정부, 바가지 분양을 근절하는 분양가상한제 말만 하는 정부에겐 더 이상 집값 잡는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청와대 사람들의 '신기에 가까운' 부동산 재테크 비법에 대해 전수 받고 싶어한다.
정하성 전 정책실장의 아파트는 2017년 1월에 17.9억원에서 2019년 1월 27.8억원으로 단 2년만에 거의 10억원이 오른 바 있다. 김수현 전 실장의 아파트는 같은 기간 9억원에서 19.4억원으로 10억원 넘게 올랐다. 김상조닫기김상조기사 모아보기 현 실장의 아파트도 수억원이 올랐으나 좀더 분발해야 한다. 전임 실장들에 비해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의겸 전 대변인도 뛰어난 재테크 실력을 과시했으나 '상대적으로' 염치가 있어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올려 놓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변인은 2018년 7월 흑석동 25.7억원 상가건물을 매입해 1년 5개월 뒤 8.8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 기부천사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청와대의 낯짝도 두껍고 맷집도 센 진정한 고수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기엔 미흡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다수의 청와대 인재들이 뛰어난 재테크 실력을 과시하며, '소득주도 성장'의 열매를 따먹었다.
이들이 숭배한 소득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땀이 만든 '노동소득'이 아니라 아파트값 급등에서 발생한 자본소득이었다.
■ 한국은행, 계속 부동산은 정부가...?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물가 설명회'를 통해 오르지 않는 물가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로 인해 아파트 재급등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 부분은 '정부가 할 일'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물가가 안 올라서 걱정인 한은이지만, 주택가격은 소비자 물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당시 이 총재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 상황에서 그간 진정 기미를 보였던 주택가격이 다시 오름세를 보이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어서 우려의 시각으로 현재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입장에선 경기와 물가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신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선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경기와 물가상황을 고려해볼 때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자산가격을 포함한 금융시장에서의 불균형 위험은 거시건전성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면서 대처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매우 강한 만큼 앞으로 정책효과 그에 따른 시장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은 총재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일부에선 "한은이 부동산을 포기했다"고 평가했고, 한은을 두둔하는 쪽에선 "무능한 정부 때문에 한은도 욕을 먹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리를 내려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싶었으나 요즘 부동산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저금리에 반응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일각에선 금리와 부동산의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치가 올라가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내놓는다.
2019년 하반기 아파트가 다시 급등할 때 한은은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내렸다. 올해 3월 금리 인하 때는 코로나19로 경제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투자자(투기꾼)들이 한숨 돌렸다가 5월 다시 금리를 내리자 자신감을 얻고 아파트 매매에 나섰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은은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에 기대를 걸었으나, 정부 부동산 정책을 언제나 뒷북을 쳤다. 아파트값이 잡힐 리가 없었다.
특히 올해 4월 '친정부' 인사들이 금통위원에 합류한 뒤 대통령의 경제교사라는 조윤제 위원이 주식을 처분하거나 신탁하지 않아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부동산 급등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수십억대의 자산가이자 부동산 부자들인 금통위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왔다. 사람들도 저금리가 아파트 급등의 배경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조윤제 위원의 주식도 문제였지만, 부동산 자산가들인 금통위원의 금리 결정도 못 믿겠다. 정권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겐 기본적인 염치란 게 있는데, 놀랍게도 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없다"고 말했다.
공직자가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정책을 편다면 장삼이사들의 인생사는 더욱 어려워진다.
주식이야 오르면 그만이지만, 아파트 값 급등은 서울의 집을 못 가진 '절반'의 계급 강등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자꾸만 비생산적일 곳으로만 돈이 흘러가면 한국경제의 미래도 더욱 어려워진다.
아파트값 급등으로 한국사회 불신의 영역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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