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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은행 예금보다 못한 퇴직연금, 이대로 괜찮을까?

기사입력 : 2019-06-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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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평균 수익률 1.01% 불과… 10년 장기수익률도 3%대 그쳐

자산배분 규제 완화 절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도 검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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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국 김민정 기자] 지난해 국내 퇴직연금은 19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2005년 근로자들의 보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수익률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88%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바닥 수준이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고령화 시대, 우리의 노후를 책임질 믿음직한 자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던 퇴직연금인 만큼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90조 규모의 적립금 불구 1%대 수익률 기록

최근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18년도 퇴직연금 적립 및 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전년보다 12.8% 증가했다. 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 1.99%의 절반 수준인 1.01%였다.

전체 퇴직연금 가운데 90.3%가 원리금보장형상품이었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실적배당형상품은 18조 3,0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원리금보장형상품의 수익률은 1.56%, 실적배당형상품의 경우에는 -3.82%를 기록했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비교적 선방했지만 실적배당형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전반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을 나타냈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1.49%를 기록한 2017년보다 지난해 수익률이 0.07%포인트 증가했다. 실적배당형의 경우에는 2017년 6.58%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이 1년 만에 10.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퇴직연금수익률이 낮았던 데는 주가하락 등의 영향으로 실적배당형의 수익률이 하락한 것 등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 코스피지수의 경우 2017년 말 2467.49였지만 2018년 말에는 2041.04로 17.3% 하락했었다.

5년·10년간 연환산 수익률(총비용 차감 후)은 각각 1.88%, 3.22%였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각각 1.94%(5년), 3.07%(10년)인데 반해 실적배당형은 각각 1.48%(5년), 4.80%(10년)를 나타냈다.

금감원은 “퇴직연금시장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원리금보장형 위주의 자산운용 및 저금리 기조에 따라 수익률이 여전히 저조한 실정”이라며 “지난해의 경우 주식시장 하락으로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됨에 따라 연간 수익률이 전년도보다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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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운용규제 없애는 것이 첫걸음

사실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은 제도 도입 이후 이어진 고질적인 문제다. 이에 전문가들은 각종 운용 규제, 금융사들의 경쟁을 저해하는 현재의 계약구조 등의 제도 개선 없이는 10년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의 첫 단추는 자산배분 규제를 푸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현재 퇴직연금 감독규정은 해외주식·파생상품·부동산·채권 등에 대한 투자비중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주식 등의 실적배당형 상품을 전체 자산 중 70%까지만 담을 수 있다. 확정기여형(DC형)의 경우 사모펀드·리츠·주가연계증권(ELS) 등의 자산은 아예 투자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규제가 곧 안전’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위험 자산에 일정 비중 이상 투자하지 못하고 주식이나 후순위채 등 고위험 자산에는 투자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 같은 양적인 규제가 없다”며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원리금 보장 상품 선호 현상이 높고 운용 상품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분산투자를 활용한 장기 운용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퇴직연금 운용을 맡은 금융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를 토대로 성과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현 구조에서는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가입자를 끌어들인 후 큰 노력 없이도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목된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운용된다. 기업이 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퇴직금 관리나 운용을 위탁하는 식이다.

근로자 참여가 제한돼 있고 운용 주체와 연금 수급자가 달라 상당수 운용 주체는 수익을 내는 데 적극 나서지 않는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는 기업이 사외에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독립된 신탁기관을 설립하고 신탁기관 내 자산운용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 근로자로 구성된 기금운영위원회를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여러 기업 퇴직연금을 묶어 국민연금처럼 ‘대형 기금’으로 만들고 투자 전문가들에게 기금 운용을 맡기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논리다.

매년 성과를 평가해 위탁운용사를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치열하게 수익률을 관리한다.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사학연금 등의 장기수익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선진국 퇴직연금의 경우 대부분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그 중 호주는 기금형 제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992년 도입된 호주의 기금형은 최근 5년간(2013~2017년) 평균 9.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호주의 기금형에는 산업형, 소매형, 기업형 등을 포함한 총 5가지 유형이 있다. 호주는 사실상 자산운용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이 덕분에 호주는 글로벌 투자와 대체투자 비중을 높일 수 있었고 높은 성과를 낸다는 평가다. 한 예로 호주 산업형 기금 중 규모가 가장 큰 ‘오스트레일리안 슈퍼’의 경우 해외주식 투자는 34%, 인프라 투자는 12%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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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도입도 눈앞

디폴트 옵션 도입 역시 수익률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이는 연금 가입자가 특별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업자가 알아서 가입자 성향에 맞게 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선진국에서는 가입자 대부분이 디폴트 옵션 상품을 선택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과 스웨덴의 경우 DC형에 가입한 근로자 가운데 각각 80%, 92%가 디폴트 옵션 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한다.

우리나라도 디폴트 옵션 도입을 둘러싸고 노동부와 금융위 간 이견이 상당 부분 좁혀져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상당 기간 동안 노동부와 금융위의 의견 차이로 정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금융위는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디폴트옵션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노동부는 노후소득 확보수단이 반드시 디폴트 옵션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

하지만 여당 내 관련 논의가 진척되고 자본시장 정책 역할이 대두되면서 양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관련 법안 검토와 관계자 논의 등을 통해 디폴트 옵션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자산운용업계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디폴트 옵션 도입이 확정된다면 다음 수순은 디폴트 옵션 적격상품 지정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TDF(Target Date Fund, 타깃 데이트 펀드) 시장을 중심으로 기대감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TDF는 생애 주기에 맞춰 자산을 자동으로 분배하는 투자 상품이다.

20~30대에는 주식이나 신흥국 자산 등 수익 극대화에 주력하다, 50~60대에는 채권과 선진국 자산 등 안정적 수익에 집중하는 식이다.

정부 내 논의가 진전돼 디폴트 옵션 적격상품으로 TDF가 선정된다면 TDF 시장은 급속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과 함께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면서 TDF가 적격상품 중 하나로 지정되자 해당 시장 성장이 본격화했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디폴트 옵션을 도입한다고 해도 상품 선정은 어디까지나 개별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며 “민간 영역에 특정 상품을 채택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도는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놓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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