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우리나라의 의료 및 보험체계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고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이러한 체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정부와 보험업계, 의료계 사이에 메울 수 없는 불신의 벽이 생기고 말았다는 점이다.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 소비자 편익 증진을 위한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를 주제로 열린 포럼은 각 측의 불신 문제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를 시작으로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하거나 자동화해 국민의 편의를 늘리자는 주장은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의료계의 반발을 비롯한 수많은 이해관계 충돌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걸음마조차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구 전산화로 인해 국민들의 건강권이나 재산권 등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병원과 보험사가 의료정보를 주고받는 동안 환자의 민감한 병력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보다는 다른 부분이 먼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름아닌 ‘돈 문제’다.
실손보험의 청구 전산화 및 간소화가 이뤄지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병원별로 다른 ‘비급여 항목’에 대한 통일이 필수불가결하다.
비급여 진료비란 국민건강보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의료기관이 정하는 진료수가에 의해 환자 본인이 부담하여야 하는 진료비 항목을 말한다.
이 같은 항목은 통상적으로 일반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실손보험 등 개인상품을 통해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올해 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8년 병원별 비급여 진료비용’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도수치료 최저금액은 5,000원인 반면 최고금액은 50만 원에 달해 무려 100배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병원들은 환자를 받을 때 실손보험이 있는지 물어본 뒤, 이를 악용해 과잉진료나 의료쇼핑을 환자에게 권유하는 등 폐단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손보험을 통한 보험사기 사례는 해마다 규모와 금액을 늘려가며 보험업의 신뢰 추락에 적잖이 기여하고 있다.
물론 돈 문제는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문제다. 국민의 편익을 위한답시고 의료계에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작금의 의료계는 문제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국민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방패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심평원의 전산망을 이용하면 해결이 가능하고, 청구 과정에서 발생할 서류비용 등도 보험업계가 부담할 용의가 있다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의료계는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
해마다 정부와 의료계는 건강보험, 실손보험 등의 현안을 놓고 의정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무언가가 ‘원만히 해결됐다’는 소식은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의료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의사협회는 매번 “정부는 협의에 진정성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정부는 매번 의료계에게 쩔쩔 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식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적어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료계가 국민을 인질로 삼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원론적으로 대변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장호성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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