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신용길닫기신용길기사 모아보기 생명보험협회장이 가장 강조한 부분은 소비자 신뢰 회복을 통한 보험업 본질 제고였다.
국내 보험업계가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정부의 복지 강조 보험정책 기조,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시대 새로운 먹거리 발견 등 수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는 만큼, 생보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신용길 협회장의 어깨는 무겁다.
신 협회장이 걸어온 100일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가 임기 3년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는지 조명해보고, 앞으로 생명보험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찰해본다.
당초 손해보험협회 협회장에 관료 출신인 김용덕닫기김용덕기사 모아보기 회장이 선출된 것을 두고, 손보협회보다 규모가 큰 생보협회는 그보다 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임명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돌았다. 생명보험협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 중에는 양천식 전 수출입은행장과 진영욱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 굵직한 인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생명보험협회 회장추천위원회는 신용길 KB생명 사장을 차기 생명보험협회장으로 단독 추천했다. 보험업계 및 금융권은 ‘의외의 인사’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관피아’, ‘올드보이’ 논란 등 금융권 임원들에 관 출신 인사들이 내려오는 것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의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신 협회장을 두고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아우르는 업계 전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최적의 인재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신 협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현재 생명보험업계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업계와 협회가 추구해야할 과제를 압축하여 제시했다.
그는 현 시장상황에 대해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와 급격한 고령화, 그리고 재무건전성 제도 강화 등으로 인해 생명보험산업의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금융업권간 경쟁이 심화되고 소비자중심의 정책 패러다임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협회장은 생명보험업계의 대응방향으로 3가지의 핵심 과제를 밝혔다. 먼저 IFRS17 및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 등 보험사 재무건전성 제도 강화에 대한 연착륙 유도와 선제적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어서 ICT,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 변화를 생보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새로운 계기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사회공헌활동 등 사회적 책임의 성실한 이행과 불합리한 관행의 혁파를 통한 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 “실손보험료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 다른 현안 산적”
신용길 협회장은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케어'와 실손보험료 인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이나, 현 단계에서는 인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를 확인해 인하 여력이 있으면 인하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미지수”라고 선을 그었다.
신 협회장은 생명보험업계가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인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대비에 무엇보다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신 협회장은 간담회에서 "두 가지 제도가 한 번에 도입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최초인데, 이는 보험업계에게 있어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므로 다시 한 번 검토해달라고 당국에 건의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신 협회장은 생보사별로 처해있는 상황이 모두 다른 만큼, 각 생보사 CEO들에 대한 개별 면담을 실시해 회사별 현황과 고충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 형식적 업무보고 탈피, “회원사들이 원하는 현안 다루자”
신용길 생보협회장이 취임 이후 보인 첫 행보는 회국내에서 영업 중인 25개 생명보험사 본사를 모두 방문하는 일이었다. 신 협회장은 생보사 CEO들을 만나 업계 현안을 논의하고, 정부에 건의할 사항을 직접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창 전 협회장을 비롯한 역대 협회장들은 대부분 직접 발품을 팔기보다는 연말 총회나 연초 사업발표회 등을 통해 CEO들과 접촉해왔던 전례와는 다른 파격 행보다.
더욱 눈에 띠는 것은 신 협회장이 이들 회사를 방문할 때 협회 관련 부서 및 홍보부 임원 대동도 거의 없이 방문한 점 역시 회원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불필요한 허례허식과 지나친 격식을 싫어하는 신용길 협회장의 성향이 엿보였다는 후문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신 협회장이)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생보업계에 몸담았던 전문가인 데다가,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기보다는 본인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취적인 성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대외적 행보만이 아니라 협회 내부에서의 업무 처리 역시 불필요한 절차를 걷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협회장은 기존의 틀에 박힌 형식적 보고 대신 업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정부에 시급히 건의할 ‘업계의 피부에 와닿는’ 사항만을 보고하라고 각 부서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보고할 부분이 없는 부서는 보고를 생략해도 좋다’는 지시도 있었다고 전해졌다.
신용길 협회장은 과거 교보생명과 KB생명 사장을 지내던 시절에도 기존의 낡은 방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KB생명 사장 재임 당시 “KB생명이 그간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에 기대어 편하게 살아왔던 게 사실”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보험사로서 독립적인 이익 기반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협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발언이 무색하지 않게 방카슈랑스 위주의 판매 채널을 혁파해 설계사 채널을 재건하고 회사 체질 개선을 통해 미래 성장을 위한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열렸던 생명보험협회의 2018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역시 신 협회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전했다. 신 협회장은 기자들의 날카롭고 민감할 수 있는 질의에도 본인이 나서서 당황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답변을 이어가 간담회 참여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자칫 민감할 수 있는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과의 역학관계를 묻는 질문에 "저는 민간 출신이고 손보협회장은 장관급이다 보니 주위에서 많은 관심과 우려를 표명한 것 알고 있다"며, "하지만 힘이 세고 약하냐는 가십거리 수준의 얘기일 뿐 서로가 가진 장점을 잘 살리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일축하기도 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신 협회장이) 과거 보험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것을 싫어하는 확고한 취향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하며, “본바탕은 소탈하면서도 챙길 것은 확실하게 챙겨가는 예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 역시 “일반적인 경우 협회장을 직접 만날 기회는 간담회와 같은 큰 자리에서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격의없이 직접 찾아와 인사를 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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