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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에 피어난 일상…노원, 철도유산 문화공간으로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④]

기사입력 : 2026-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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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가고 철길만 남아…노원구 특별한 길
걷고 쉬고 축제 공간으로 바뀐 경춘선의 오늘

▲ 경춘선의 흔적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주변으로 나무와 녹지가 이어져 있다. 철도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꾸며졌다.이미지 확대보기
▲ 경춘선의 흔적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주변으로 나무와 녹지가 이어져 있다. 철도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꾸며졌다.
[한국금융신문 주현태 기자] [공익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기차가 다니던 길에 이제는 사람이 걷는다. 폐선된 지 16년이 지난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은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산책과 문화, 여가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뀌었다. 기자가 직접 철길을 따라 걸으며 그 변화의 풍경을 들여다봤다.

지난 9월 28일 오전, 초가을답지 않게 쌀쌀한 날씨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여러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찾은 서울 노원구 화랑대철도공원 일대는 아침과는 딴판이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면서 가을을 느끼기에는 다소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월요일 오후 화랑대철도공원은 의외로 한산했다. 공원 내 도서관과 노원기차마을·식당 등이 휴관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산한 분위기와 달리 이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적지 않다.

화랑대철도공원은 단순한 근린공원이 아니다. 폐선된 경춘선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철도의 역사를 현재의 문화공간으로 이어놓은 장소다.

경춘선은 1939년 개통돼 서울과 춘천을 잇는 철도 역할을 했다. 오랜 시간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철길은 2010년 폐선되면서 본래의 기능을 멈췄다. 하지만 철길이 사라졌다고 그 공간의 역사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원구는 폐선된 경춘선 구간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공원화 사업을 추진했고, 2017년에는 약 6㎞ 구간의 경춘선숲길을 조성했다. 철길과 철도시설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주민들이 걷고 쉬는 선형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기차가 달리던 길에는 산책로가 들어섰고, 옛 철도시설에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더해졌다. 철길 옆으로 녹지가 이어지고 카페와 상업공간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철도공간은 주민들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노원구에 따르면, 계절마다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고, 철도공원은 때로는 공연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철길 인프라가 다시 한 번 길어지기도 했다. 노원구는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광운대역 보행육교를 잇는 약 870m의 경춘선숲길 연장 구간을 조성해 개방했다. 기존 구간과 연결되면서 월계동에서 공릉동을 지나 화랑대까지 약 6.8㎞의 녹지축이 이어졌다.

과거에는 기차가 달렸고, 지금은 사람이 걷는다. 철길을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공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철길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겨둔 채 그 위에 오늘의 일상을 얹은 셈이다.

폐선된 경춘선 철길과 옛 역사 건물을 활용한 기차 테마공원이 조성됐다. 기차카페와 '익스프레스 노원', 불빛정원 등 다양한 시설도 들어섰다. 노원구립기차마을에서는 기차를 주제로 한 전시와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2026 노원기차마을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미니기차와 모형 기차 조종, 키링과 책갈피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철길의 역사를 기억하는 '메모리얼 스테이션'도 운영됐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실제 열차가 오가던 철길의 기억을 되짚는 공간이 된다.

철길 위에 피어난 일상…노원, 철도유산 문화공간으로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④]이미지 확대보기
철길 위에 피어난 일상…노원, 철도유산 문화공간으로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④]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여름에는 철도공원이 물놀이장으로 변신했다.

화랑대철도공원에서는 7월부터 한 달간 '2026 꿀잼 워터파크'가 운영됐다. 수영장과 유수풀, 에어슬라이드, 회전물썰매에 더해 50m 에어바운스형 워터슬라이드와 클라이밍풀 등이 마련됐다.

기차가 달리던 공간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철도의 과거만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 이곳의 변화이기도 하다.

철길을 박물관 안에 가둬놓는 대신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고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화랑대철도공원 내 취재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들에게 조심스럽게 철길의 현대공원화에 대한 말을 건넸지만, 두 차례 거절당했다. "아이 때문에요"라는 짧은 답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 번쯤 거절당하자 기자도 잠시 시무룩해졌다. 이에 결국 홀로 셀카를 찍으며 자연스러운 현장 모습을 연출해봤다. 평소 해보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문득 아내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덩치가 커서 위압감이 있다"며 다이어트를 권했던 기억이다. 그동안은 건강미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날만큼은 그 말을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취재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원을 둘러봤다. 그리고 공원 끝자락에서 뜻밖의 귀인을 만났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송일식 씨(66세)는 화랑대철도공원을 "서울 전역에서 어르신들이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송씨는 이날 공릉역에서부터 화랑대철도공원까지 약 1시간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가 꼽은 장점은 단순했다. "전부 평지잖아요. 철길을 직접 밟으면서 걸을 수 있는 것도 재미있고요. 화장실도 잘 돼 있어서 어르신들이 다니기 좋습니다."

용인에서 노원까지 찾아온 이유도 흥미로웠다. 유튜브 '슬기로운 캠핑생활'을 보고 크게 달라진 철길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송 씨는 과거 이 일대를 찾았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주변이 지금처럼 개발된 곳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송씨는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까지 계승한 부분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취재를 마무리하려던 기자에게 한 가지 조언을 더 건넸다.

"화랑대철도공원에서 끝내면 안 돼요. 철길 따라서 공릉동 카페거리와 도깨비시장까지 한번 걸어가 보세요. 그래야 철길을 따라 현대화된 다양한 것들 볼 수 있습니다."

장미터널(봄철 화려하게 피었던 장미꽃은 이제 대부분 떨어짐)을 지나 도깨비시장까지 걸어봐야 경춘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시장에 도착하면 칼국수집도 꼭 들러보라는 당부까지 이어졌다.

취재원에게 미션을 받은 만큼, 경춘선숲길을 따라 도깨비시장까지 걸으며 철길이 오늘날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철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는 한산했던 공원이었지만 철길로 들어서자 산책하는 주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철길 주변에는 나비와 새, 산 등을 형상화한 시설물이 자리했고, 양옆으로는 나무와 녹지가 이어졌다.

이동 중에 느낀점은 옛 철길은 더 이상 기차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산책을 나온 주민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 등 각자의 방식으로 철길을 이용하고 있었다. 과거의 철도시설과 현재의 생활공간이 한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철길 옆 이따금씩 나무와 녹지로 이어진 길도 있었다. 주변 주민들이 이곳을 자주 걷는다면 자연스럽게 운동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철길을 둘러싸고 있던 돌벽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새롭게 조성된 공간 안에서 과거의 철도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었다. 그 길에서 '그리운 등대'라는 이름의 등대 모형도 만났다.

등대는 한자리에 묵묵히 서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추억을 품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과거의 철길을 기억하는 공간에 현재의 사람들을 맞이하는 상징물이 놓인 셈이다. 그 옆에는 경춘선 티켓 모형도 있었다. 과거 열차표의 기억을 현대의 문화 플랫폼으로 이어놓은 장치였다.

숲길과 철길을 따라 25분가량 걸으니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양옆으로 주택가가 나타났고 카페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공릉동카페거리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철길과 카페거리가 만나 공릉동 일대에는 어느새 '공리단길'이라는 이름까지도 생겼다. 철도 유산을 중심으로 산책로와 상업공간, 주거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경춘선숲길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여가를 담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철길을 없애고 새로운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다. 철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둔 채 그 위에 오늘의 일상을 얹었다.

조금 더 걷자 송씨가 말한 도깨비시장이 나타났다. 정말 철길 바로 옆이었다. 시장 상인에게 칼국수집 위치를 물었다. "조금만 더 가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칼국수집 앞에는 7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 일정까지 고려하면 더 기다리기는 어려웠다. 결국 송씨가 건넨 마지막 미션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칼국수 한 그릇까지 먹었다면 완벽했겠지만, 이날 경춘선 취재는 아쉬움과 배고픔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철길 위에 피어난 일상…노원, 철도유산 문화공간으로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④]이미지 확대보기
철길 위에 피어난 일상…노원, 철도유산 문화공간으로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④]이미지 확대보기
경춘선숲길을 걷다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철길의 역할은 달라졌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철길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산책로와 공원, 문화 콘텐츠를 더해 오늘의 생활공간으로 바꿨다.

철도 유휴부지가 더 이상 남겨진 땅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도시를 잇는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노원구가 경춘선에서 되살린 것은 철길만이 아니다. 기차가 달리던 시절의 기억을 남기면서도 사람들이 걷고 쉬고 커피를 마시며 축제를 즐기는 일상이다.

기차가 떠난 철길에는 이제 사람이 다닌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과거의 철도 역사와 오늘의 일상이 미래로 달리고 있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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