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금융안정보고서(Financial Stability Report)를 통해 지나치게 단기차입의 비중이 높은 은행들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후 4개월 후 영국 역사상 19세기 이후 처음으로 뱅크런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된 노던록(Northern Rock)은행을 염두에 둔 경고이었을 것이다. 질문의 요지는 이 보고서가 분명히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 Agency)에 전달되었을 텐데 뱅크런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관한 것이었다.
만약 경험이 풍부한 직원이 그 보고서를 읽고 사태의 심각성을 상부에 보고했다면 영국 금융감독청이 노던록의 뱅크런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역사적 경험과 금융안정 담당 부서의 전형적인 행태에 비추어 볼 때 노던록의 뱅크런을 방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면 언젠가는 결국 위기가 발생하지만 정확한 발생 시점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역사적 경험에서 나타나고 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 따르면 금융위기 발생이 매우 임박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년 후에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금융위기 발생 시점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면 정책당국은 금융위기 발생에 관한 사전적 판단에 있어서 1종 오류(type-1 error)와 2종 오류(type-2 error)를 범할 가능성에 봉착하게 된다. 1종 오류는 실제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데도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오류이다. 2종 오류는 실제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고 잘못 판단하는 오류이다.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발생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1종 오류의 기회비용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위기를 발생한다고 잘못 예측한 2종 오류의 기회비용보다 크다.
1종 오류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악영향이 크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은 1종 오류를 범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해 위기 방지를 위해 노력했는데 금융위기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금융당국이 적절히 대응해 위기를 방지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금융위기를 발생할 것이라고 잘못 예측해 괜한 소동을 일으킨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자산 가격 버블을 사전에 방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버블 붕괴 이후에 수습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는 소위 ’그린스펀 독트린(Greenspan doctrine)‘도 이러한 측면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발생에 대한 사전적 판단이나 선제적 대응과 관련해 좋은 사례가 1997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금융위기(financial crisis)와 외환위기(currency crisis)가 동시에 발생한 쌍둥이 위기(twin crises)라고 생각한다. 당시 통화정책 집행의 실무를 담당하면서 늘 고민했던 사항은 정책금리를 인상해야 하는지 아니면 인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약세 방지를 위해서는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대폭적인 금리 인상은 가뜩이나 늘어난 부실대출로 생존이 어려워진 은행들의 수익성 하락과 기업들의 줄도산 등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한국이 IMF 프로그램에 들어간 직후와 같이 정책금리를 법정 최고한도이었던 25%까지 인상해 외환위기를 방지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살인적인 고금리로 인해 부채비율이 높은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금융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았을 것이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외환위기를 막았다고 칭찬받기는 커녕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금융위기에 대한 조기 대응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중앙은행 등 정책당국이 위기 발생 초기에 이상 증후를 과소 평가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안일한 대응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선입견이나 생각을 입증해줄 수 있는 정보만을 선호하는 성향 즉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6년부터 2006년까지의 기간 동안 주택가격이 실질 가격 기준으로 2배 가까이 상승했지만 미 연준 등 정책당국은 위기 발생 조짐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대응했다. 워싱턴에 근무했던 2004년과 2005년 미 연준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등 주요 정책당국자에게 주택시장의 과열현상에 대한 의견을 사석에서 물어보면 모두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게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위기의 조짐에 대해서 안일하게 인식한 것은 다음과 같은 논리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첫 번째 논리는 미국 역사상 주택가격이 전국에 걸쳐서 동시에 하락한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논리는 주택가격에 버블이 형성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세 번째 논리는 주택가격이 버블이 형성되었다고 판단되더라도 통화정책을 통해 버블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대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한데 이러한 대폭적인 금리 인상은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설사 버블이 발생하더라도 버블이 붕괴된 후에 통화정책 기조의 완화를 통해서 버블 붕괴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충분히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금융위기에 대한 조기 대응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금융안정을 담당하는 정책당국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시인하고 조기 대응하는 것은 과거 자신들이 감독을 잘못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본 고이즈미 정권에서 의원직 없이 경제재정 장관과 금융 장관을 역임한 다케나카 헤이조 전 게이오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구조개혁의 진실’에서 금융청이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로 과거 금융감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현 상황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관료조직 특유의 무오류성에 대한 집착을 들고 있다. 그가 말하는 소위 관료의 무오류성은 관료는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과거의 오류를 제거하는 것은 새로운 진실이나 사실을 입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책당국이 위기 가능성을 미리 간파해 대응조치를 취하려고 했으나 그 대응조치가 다른 경제 현안문제의 해결과 상충되거나 우선 순위에 밀리게 됨에 따라 좌절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인 1925년과 1927년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물가는 안정되거나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 당시 연준의 통화정책을 이끌었던 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 뉴욕 연방은행 총재가 통화 긴축을 통해 자산 버블을 예방하려고 한 조치가 좌절되었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일본도 1989년 5월 정책금리를 처음 인상하기 오래 전부터 일본은행 내부에서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한다. 당시 미에노 야스시 수석 부총재는 일본 경제가 과열되고 있어서 통화 완화 기조를 변경할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해 왔으며 실제로 1987년 8월부터 일본은행은 시장 금리의 상승을 유도해 정책금리인 공적 할인율을 인상하려 시도를 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의 주가 폭락의 여파가 일본 주식시장에 파급되고 엔화가 급격한 강세로 전환되면서 1988년 초까지 이러한 시도가 좌절되고 말았다.
1989년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는 기준금리를 과감히 인상해 자산가격의 거품을 꺼트렸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하면서 미에노 총재는 과도한 통화 긴축으로 일본의 장기불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버블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미에노 총재의 통화 긴축이 없었더라도 버블은 다른 이벤트를 계기로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이었을 것이다.
금융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금융 리스크는 규제를 피해 계속 규제가 약한 부문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인센티브가 큰 정책당국자들이 리스크에 대한 혼돈과 과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미 연준 의장으로 재임해 연준 역사상 최장수 의장인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William McChesney Martin, Jr.) 의장의 말대로 “중앙은행은 파티가 한참 무르익으려는 순간에 펀치 그릇(punch bowl)을 치우는 샤프롱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현대의 정책당국은 파티를 한창 즐기고 있는 국민들의 반발과 자신들의 판단 오류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두려워 마틴 의장의 1955년의 충고를 따르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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