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근로자의 상품 선택에 따라서 수익률이 좌우되고, 그 수익률에 의해 퇴직급여액도 영향을 받는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어떨까? DC형 퇴직연금의 경우 최근 5년과 10년 수익률은 2.56%, 2.26%였다.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우수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투자에 대한 비전문성 혹은 무관심이 문제인 것일까?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손실회피 편향은 원리금보장상품 선호라는 현상으로 발현된다. 장기적으로는 실적배당상품의 수익률이 더 우수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 때문에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DC형 퇴직연금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율은 81.9%에 달했다. 참고로 DC형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의 장기 연환산 수익률은 5년2.14%, 10년 2.13%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답 자체는 간단하다. 괜찮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간 정부와 자산운용사들의 노력으로 괜찮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TDF(Target Date Fund)다. TDF는 은퇴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의 비중을 생애주기 자산배분곡선(Glide Path)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다.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의 비중은 낮추고 채권 등 위험도가 낮은 자산의 비중을 높여 은퇴 자산을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하는 구조이다.
문제는 장기수익률이 우수한 실적배당상품들에 퇴직연금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아무리 외쳐도 투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데에 있다. 앞서 말한 ‘손실회피’ 성향 등 비합리적인 심리적 편향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심리적인 편향은 심리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석이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넛지(Nudge)>라는 책에서 그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 방법은 책 제목과 같은 ‘넛지’다. 본래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특정 행동을 유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즉,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강제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넛지’다. 세일러 교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제시했을까? 그는 ‘관성’을 이용하라고 충고했다. 사람들은 한번 정한 결정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이용하면 사람들을 올바른 선택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실제로 통했다.
미국은 근로자에게 디폴트 옵션으로 제공되는 상품을 근로자가 아닌 회사가 고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으로 기업이 적격디폴트투자상품(QDIA)을 디폴트옵션으로 설정할 경우 손실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지 않는 법적요건도 갖추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큰 법적 부담없이 장기적으로 근로자의 퇴직연금 자산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TDF같은 상품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현재 미국은 DC형 퇴직연금 거의 대부분이 QDIA를 디폴트옵션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 중 80% 이상이 TDF이다.
한국에도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디폴트 옵션은 미국과 이름만 같고, 형식은 매우 다르다. 한국은 일단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디폴트옵션 상품 중에서 하나를 회사가 아닌 근로자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 과정도 쉽지가 않다. 일단 디폴트옵션 제도를 적용할지 아닐지에 대한 선택부터 해야 한다. 이후 자신의 위험성향에 따라 초저위험부터 고위험에 이르는 상품 중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근로자라면 이 선택이 쉬울 리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한 여러 개의 금융 상품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 근로자가 무엇을 주로 고르게 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서 원리금보장상품을 주로 선택하게 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2분기말 디폴트옵션 선택 현황을 보면 금액 기준으로 볼 때 초저위험 디폴트옵션 상품의 비중이 89.2%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는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이성을 믿지 말고 제대로 된 ‘넛지’, 제대로 된 ‘디폴트옵션’ 제도를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올 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의 개선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성공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윤치선 미래에셋자산운용 지식콘텐츠팀 수석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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