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늦은 SUV 전환
현대차·기아가 지난 2014~2016년 내놓은 신차들을 살펴보면 자신들 강점 강화에 집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력 성능을 높이면서도 연비 효율을 향상한 다운사이징 엔진을 주력 모델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다만 세단→SUV로 바뀌는 트렌드를 주도할 새로운 상품 개발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2015년 나온 쌍용차 티볼리가 소형SUV 시장을 주도했으나, 코나, 스토닉 등 현대차·기아 소형SUV는 2017년에서야 나왔다. 이는 현대차·기아가 2010년대 후반 글로벌 판매 부진에 빠지게 된 원인이 됐다는 평가다.
디자인도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이 시기 대표적 신차는 쏘나타(LF)·아반떼(AD)·그랜저(IG), K5(JF)·K7(YG) 등이다. 이전 사이클에서 글로벌 호평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인지 풀체인지임에도 외관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 당시 현대차는 자연스러운 곡선을 강조한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2.0’를 디자인 철학으로 내세웠다.
디자인·플랫폼 혁신
2018년 신차 교체기를 맞은 현대차·기아 전략은 ‘심기일전’으로 요약된다. 상황이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 감소로 위기감이 감돌았다.가장 먼저 손을 댄 게 새로운 SUV 라인업 확충이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아 텔루라이드(북미) 등 대형SUV를 선보였다. 소형SUV 인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 베뉴, 기아 셀토스 같은 모델도 추가했다. 제네시스는 GV80·GV70 등 SUV 모델을 라인업에 처음 추가했다.
디자인 방향성도 재정립했다. 현대차는 ‘센슈어스 스포티니스(감각적인 역동성)’, 기아는 ‘오퍼짓 유나이티드(상반된 개념의 융합)’를 각각 2018년, 2021년 선보였다. 제네시스는 자신의 로고를 딴 ‘두 줄’ 램프를 패밀리룩으로 삼아 브랜드 차별화를 강조했다. 낮은 자세와 넓은 실내공간이 구현 가능한 새로운 3세대 플랫폼(N3·M3·K3) 개발을 통해 디자인 완성도와 상품성도 높였다.
‘역사상 최다’ 예고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3분기 글로벌 자동차 산업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경기침체 우려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영향인데 내년에도 수요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하지만 현대차·기아는 자신감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신차 사이클이 근거다. 당장 내년 풀체인지가 예정된 신차는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아 셀토스·텔루라이드 등 볼륨 모델이 있다. 현대차 대형 전기SUV 아이오닉9, 기아 픽업트럭 타스만, 인도 전용 경형SUV 시로스 등 기존에 없던 차종도 선보일 계획이다.
내년 신차 사이클 핵심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현대차는 지난 8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2’를 2025년 1월부터 양산 차량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글로벌 각국이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은 하이브리드를 확장하려는 현대차그룹에 기회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는 현재 준중형·중형급 차량에 어울리는 1.6 가솔린 터보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만 보유하고 있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소형부터 대형까지 차급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가 언급한 내년 1월 하이브리드 양산차는 2세대 팰리세이드로 2.5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이승조 CFO 전무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면서도 “약속한 중장기 영업이익률 8~9%는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기아 주우정 CFO 부사장은 “2025~2026년 기아 역사상 가장 많은 신차가 나올 것”이라며 “제품 경쟁력이 바탕이 된다면 높은 수익성도 계속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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