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또 다른 친한 지인이 월세방을 떠나면서 보증금을 빼는 과정에서 집주인이 ‘집을 더럽게 썼다’고 억지를 부리며 보증금 500만원 돌려주기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뭔가 부숴먹었거나 벽에 못이라도 박았으면 모를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보증금 500만원을 못 돌려주겠다는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다행히 이 지인은 치열한 법리다툼 끝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부동산 기자로 나름 오래 출입하다 보니, 주변 지인들이 집을 구할 타이밍이 되면 종종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 헌데 그런 사례들을 직접 보고 듣다 보면 인간에 대한 애정 자체가 식어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전국 청년들을 눈물 짓게 하고 있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만 해도 그렇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사자성어가 있듯, 공인중개업자나 악성 임대인들이 작정하고 사기를 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걸려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대상이 사회생활 경험조차 얼마 없는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라면 더 설명할 것도 없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 4명 중 3명이 30대 이하 청년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97.4%는 전세보증금이 3억원 이하였다는 점을 봐도 전세사기의 대다수는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은 주거 소외계층을 상대로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다수 부동산정책은 주로 다주택자·건설회사 등 ‘가진 자’의 입장만을 좀 더 보호할 뿐, 약자에 대한 배려는 형식적으로 대충 끼워넣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부동산은 꾸준히 우상향하며 ‘부동산불패’라는 이론을 만들어냈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 격차와 불신을 점점 키워왔다.
혹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속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제도를 한 번 움켜쥔 세력이 이를 영원히 이용하며 세습까지 한다면 그 독점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출발지점에도 서지 못한 청년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올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6명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새는 먹잇감과 둥지가 없으면 결코 알을 낳지 않는다. 하물며 둥지를 찾는 새들을 붙잡아 깃털과 날개를 뽑고 하늘을 날아갈 원동력조차 잃어버리게 한다면 어떨까. 기울어진 부동산으로 쌓아올려진 이 나라의 미래는 이미 누란지세에 이르렀다. 슬프게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몫일 것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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