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부터 위기 상황에 대비해 추가 자본을 쌓는 ‘스트레스완충자본제도’ 도입에 따라 주요 금융지주의 자본비율 관리가 한층 타이트해질 전망이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스트레스테스트(위기상황분석) 결과에 따라 최대 2.5%포인트 추가 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고금리 장기화 등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에 대비해 손실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 4대 금융지주와 시중은행의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스트레스완충자본제도 도입에 따른 규제 수준을 웃돌고 있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의 올해 6월 말 기준 CET1비율은 각각 13.59%, 13.05%로 13%를 상회하고 있다. 하나금융의 CET1비율은 12.79%, 우리금융은 12.04% 수준이다.
현재 CET1비율 규제 기준은 바젤III에서 지정한 기본적립비율 4.5%에 자본보전완충자본 2.5%, 경기대응완충자본 1% 등 8%다. 금융체계상 중요 은행·은행지주(D-SIB)에 해당하면 1%포인트의 추가 자본 적립 의무가 부과된다.
여기에 추가로 도입되는 스트레스완충자본제도는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사전에 충분한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적용 대상은 국내 17개 은행 및 8개 은행지주회사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은 독자적 자본 확충이 어렵고, 위기 상황 발생 시 정부의 손실 보전 의무가 있는 만큼 대상에서 제외됐다. 새로 설립된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은행 설립 이후 2년간 유예기간 부여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1일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을 위한 '은행업감독규정' 및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 및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시행세칙' 일부 개정안 규정변경을 예고했다.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및 금융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올해 말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그간 금융당국은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해 지난해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논의를 거쳐 ‘은행 건전성 제도 정비방향’을 발표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이번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은 이에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예상손실전망모형 점검체계 구축을 위한 근거 마련을 위해 지난해 11월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을 완료했고 올해 5월부터는 경기대응완충자본 1% 부과 조치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부터 국내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에 대해 바젤 필라2 제도에 따라 내부자본적정성 평가(ICAAP)를 포함하는 리스크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리스크평가 결과를 토대로 추가 자본 적립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주기적으로 은행에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해 손실흡수능력을 점검하고 있으나 지금까지는 테스트 결과가 미흡해도 개별 은행에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직접적인 감독 조치를 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부터 금리 상승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해도 은행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보다 직접적 감독수단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미국·유럽 등 해외 주요국에서도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포함한 자본 적정성 평가 등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추가자본 적립 요구 등의 감독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금융위는 스트레스완충자본제도의 원활한 도입을 위해 은행권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논의와 위기상황분석 모형 정교화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시범운영을 실시했다. 추가 자본 부과 수준 등에 대한 은행 등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올 연말 부과될 스트레스완충자본은 은행별로 약 1.5~2.5%포인트 내외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미 대부분 금융지주와 은행이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을 감안한 규제 비율을 웃도는 수준으로 CET1비율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새 제도 도입이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최대 스트레스완충자본 2.5%를 적용해도 시중은행지주 11.5%, 지방은행지주 10.5%의 자본 비율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 2분기 기준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은행이 없다”며 “제도 도입 관련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은행권은 2.5%포인트 부과를 반영한 기준으로 자본비율을 관리하고 있다”며 “실질 영향력이 크지 않은 만큼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총주주환원율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대 금융의 CET1비율은 올 3분기 기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3분기 중 상당폭 하락해 은행들의 CET1 비율이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원달러 환율 약 10원 하락시 은행 평균적으로 약 0.03%포인트 내외의 CET1비율 상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요인이 동일하다면 3분기에 환율 요인만으로도 약 0.2%포인트 내외로 CET1비율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등 일부 금융지주는 CET1비율이 13%를 하회하고 있어 자본 비율에 크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CET1비율이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에 따른 규제 비율 11.5%에 금융사 자체 버퍼 1.5%포인트를 더한 13% 이상은 돼야 금융당국의 눈높이를 충족하는 안정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4대 금융지주는 CET1비율 13% 유지를 목표로 자본 비율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연간 기준 CET1비율은 KB금융이 13.59%, 신한금융이 13.17%, 하나금융이 13.22%, 우리금융이 11.99% 수준이다.
하나은행은 올 상반기까지 기업대출 잔액 확대를 공격적으로 추진해왔지만 하반기 들어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 충분한 대출 성장을 기록한 만큼 하반기엔 RWA 관리를 통해 CET1비율 관리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박종무 하나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 상반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RWA 관리를 통해 CET1비율이 4분기 말 전년 수준을 소폭 상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하나금융의 하반기 CET1비율이 13%를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나금융은 환율상승과 큰 폭의 대출성장에 따라 올 상반기 CET1비율이 13% 미만을 하회했으나 대출성장 조절과 원달러환율 하락 반전, 이익증가 등이 반영되면서 하반기 13% 상회가 확실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도 “하나금융의 3분기 CET1비율은 환율 하락과 대출 성장 둔화 영향으로 13%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현재 CET1비율이 12% 초반 수준인 데다 보험사 인수합병(M&A)을 앞두고 있어 자본 확충 압박이 더 큰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지난 8월 말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결의하고, 중국 다자보험그룹 측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우리금융은 동양생명 지분 75.34%를 1조2840억원에, ABL생명 지분 100%를 2654억원에 각각 인수할 예정이다. 인수 가격은 1조5493억원이다. 당초 시장 예상보다 인수 가격을 4000~5000억원 낮췄지만 ABL생명의 낮은 건전성 지표 등을 고려하면 인수 이후에도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이달 초부터 우리금융 정기검사에 착수해 보험사 M&A 관련 자본 적정성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올해 말 12.2%, 내년 12.5% 달성을 CET1비율 목표로 하고 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금융의 CET1비율 12.5% 상회는 올해는 어렵고 내년에는 대출성장 축소 및 RWA 관리를 통해 달성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아란 한국금융신문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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