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발행사가 공모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반면, 사모채 발행은 거래 당사자에 한해서 정보가 오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보 공개가 제한적이다.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 도입 후 공모 시장을 중심으로 한 채권 시장이 활성화됐지만 여전히 사모 조달에 의존하는 기업도 상당하다. 롯데그룹 계열사와 코오롱그룹 계열사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SK그룹 계열사들도 눈에 띈다.
이들 그룹 내 다수 계열사들은 공모 수요예측 절차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좋지 않은 기업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시장이 해당 기업들이 처한 현재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공모채 시장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공모채 시장이 사모채 시장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 결정을 내렸겠지만 그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국내 채권 시장은 우량채(AA급 이상)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실상 대기업 위주로 돌아간다. 그 자체가 신용등급 상향 평준화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상황이 어렵다는 핑계로 사모채 발행에 열을 올리면 국내 회사채 시장은 더욱 왜곡되기 마련이다.
기업이 정보 공개를 꺼리는 가운데 시장이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모 조달에 의존하는 기업은 스스로 평판을 깎아내린다는 의미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 정보에 대한 투명성이다. 그간 사모조달에 의존해온 그룹 계열사들을 보면 유독 주가 하락이 두드러진다. 각 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 코오롱 주가는 10년전 대비 낮은 수준이며 최근 SK 주가 역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사모 조달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정보 공개를 꺼리는 기업일수록) 주가 하락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하지만 정보 공개를 꺼릴수록 투자자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 정보 공개를 꺼리는 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신뢰 회복도 어렵고 높은 밸류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적어도 상장사라면 사모채 발행(장기 CP 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급한 상황에서 선택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선택이 습관적이라면 투자자 또한 해당 기업을 ‘습관적’ 정보 미공개 기업으로 보게 된다.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해당 기업에 독이 되는 행위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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