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건설은 업계 전체가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며 건설업계 리딩 컴퍼니의 저력을 재확인시켰다.
국내에서도 남양주 왕숙 국도47호선 이설공사, GTX-C 등 수도권 교통망을 건설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연이은 수주로 수주잔고는 전년 말 대비 4.9% 상승한 92조6977억원을 기록해 약 4.4년치의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하며 중장기 성장의 발판을 공고히 했다.
특히 작년 막판, 공작부영 리모델링 사업을 따내며 포스코이앤씨를 제치고 5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1위 왕좌를 지키기도 했다.
또한 지속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지불능력인 유동비율은 186.5%, 부채비율은 118.6%를 기록했다. 신용등급도 업계 최상위 수준인 AA-등급으로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해외실적 전년대비 2배가량 성장, 사우디·우크라·북미 시장까지 종횡무진
국내에서도 여전한 저력을 과시하긴 했지만, 현대건설이 지난해 특히 두각을 드러낸 곳은 해외 현장이었다.지난 6월 수주에 성공한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 콤플렉스 패키지 1(에틸렌 생산시설)과 패키지 4(유틸리티 기반시설)’ 수주 계약이 그 주인공이다.
아미랄 프로젝트는 사우디 국영 석유·천연가스 기업 아람코(Aramco)가 발주한 사우디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 건설사업이다. 사우디 유전의 중심지인 담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70㎞ 떨어진 주베일에 위치하며, 기존 사토프 정유공장과 통합 조성된다.
본 프로젝트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등급의 저부가가치 원료를 활용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설비와 최첨단 폴리에틸렌 생산설비, 부타디엔 추출설비, 기타 기반시설 등의 건설을 포함한다.
현대건설은 이 초대형 프로젝트 중 패키지 1과 4의 공사를 수행한다. 패키지 1은 아미랄 프로젝트의 핵심인 MFC(Mixed Feed Cracker, 혼합 크래커)를 건설하는 공사로, 공정 부산물을 활용해 ‘화학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165만톤 생산하는 설비다. 패키지 4는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주요 인프라 외 기반설비, 탱크, 출하설비 등을 포함한 시설(Utility & Offsite) 건설공사다.
현대건설은 본 프로젝트를 설계·구매·건설 등 공사의 전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턴키(Turn Key) 방식으로 수주했다. 이는 현대건설의 세계적인 기술력과 설계·조달·시공(EPC)의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로서 우수한 품질이 곧 최고의 경쟁력이자 마케팅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 7월 현대건설은 폴란드 바르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와 공항 확장공사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며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에도 발을 디뎠다.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은 수도 키이우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9㎞ 거리에 위치하며 전국 여객 수송량의 62%, 화물 수송량의 85%가 집중된 우크라이나 최대 공항이다.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는 종전 후 활주로를 현대화하고, 신규 화물 터미널 등을 건설하기 위해 현재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인천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페루 친체로공항 등 다수의 국내외 공항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한 기술역량과 전후(戰後) 국가 재건사업을 주도해 온 저력을 토대로 공항 확장사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핵심 교통 허브인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의 조속한 정상화를 적극 지원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가속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향후 고속철도 및 국가 기반시설로 협력 범위를 넓히고 에너지 인프라 사업 추진 기반 또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수주 행진은 이어졌다. 8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PIS펀드(플랜트·인프라·스마트시티 펀드), SK에코플랜트·현대건설·탑선은 EIP자산운용이 조성 예정인 미국 텍사스 콘초(Concho) 태양광 프로젝트 펀드 투자계약 및 사업권 인수계약(MIPA: Membership Interest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미국 텍사스주 중부에 위치한 콘초 카운티(Concho County) 지역에 459MW 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구축, 전력을 판매하는 사업이다. 여의도 면적 6배, 축구장 약 1653개에 해당하는 1173만5537㎡(약 355만평) 부지에 약 6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초대형 태양광 프로젝트다.
이 같은 수주행진 결과 현대건설은 올해 11월말 기준 지난해 26억9505만달러에서 2배가량 늘어난 56억8894만달러의 수주고를 달성, 근소한 차이로 삼성물산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역시 윤영준 사장은 “민간 투자 위축으로 국내 시장이 다소 정체되는 반면, 해외시장은 고유가의 영향으로 대형 플랜트 공사 발주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시장 흐름에 맞춰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립하고, 핵심 역량을 재정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해외사업 쪽으로 우리의 역량을 집중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현대건설의 해외시장 공략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가리지 않는 SMR 사업 광폭행보, 윤영준 사장의 ‘기술경쟁력’ 강조
현대건설의 올해 실적을 견인한 또 하나의 분야는 소형모듈원전(SMR)을 비롯한 신사업 파트였다. 올 한해 현대건설은 공공기관·민간 기업들과 협력을 통한 에너지, 농업 등 신사업 발굴에 집중했다.
SMR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그린 에너지 분야의 게임체인저이자 '꿈의 원전'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SMR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것으로 발전용량이 300MW급 정도인 소형 원자력발전소를 말한다.
실제로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오는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2500억~4000억 파운드(400조~650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캐나다 SMR 로드맵 보고서는 오는 2035년까지 연간 150조원 이상의 SMR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지난 7월 신에너지 사업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기존 플랜트 사업본부에서 독립한 NewEnergy 사업부를 최영 전무를 수장으로 독립 사업부로 신설, 글로벌 사업 확대에 따른 대응력을 강화했다. 최 전무는 신고리 원자력,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등 30여 년 동안 국내외 원전 현장을 거친 원전 전문가로 꼽힌다.
NewEnergy사업부는 대형원전, SMR의 영업부터 설계, 수행 등 원자력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원자력사업실, 신재생사업과 송변전사업을 담당하는 에코-원(ECO-One)사업실 등으로 꾸려졌다. 최 전무가 이끄는 NewEnergy사업부는 가속화 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의 전문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2월, 현대건설은 윤영준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총 3조1000억 원 규모의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 주설비 공사의 계약 서명식을 가졌다.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 주설비 공사는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일원에 1400MW급 원전 2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공사기간은 착공일로부터 약 115개월이다.
현대건설은 두산에너빌리티, 포스코이앤씨와 함께 이 공사에 참여하며, 주간사인 현대건설의 수주 금액은 전체 규모의 55%에 해당하는 1조7157억원에 이른다.
현대건설은 신한울 4호기에 적용하는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을 새울 2호기, UAE 바라카 1~4호기, 신한울 1·2호기에 성공적으로 시공한 이력이 있다.
현대건설은 미국 원전 전문기업인 ‘홀텍 인터내셔널’과 함께 2029년 3월까지 우크라이나에 SMR 파일럿 설치에 이어 향후 최대 20기 배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으며, 작년 10월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전력공사(Ukrenergo)와 송변전 신설 및 보수공사에 관한 협약을 맺는 등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재건사업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유럽시장은 최근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탄소중립산업법’ 혜택 대상에 원자력발전 기술을 포함하는 등 대형원전 추가 발주 및 SMR 구축 논의가 활발한 지역이다. 현대건설은 이번 협력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스템 복원은 물론 유럽지역 원자력사업 진출 타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대건설은 한국농어촌공사와 ‘스마트 농업 기반 조성 및 해외 진출을 위한 MOU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충남 서산시에 보유한 간척지 내 농지에 농업바이오단지와 스마트팜 인프라를 조성한다.
또한 해외 농업 생산기지 인프라 조성사업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현대건설은 현재 추진 중인 해외 스마트시티 개발사업에 한국농어촌공사가 보유한 스마트팜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연계해 K-스마트팜(한국형 지능형농장)사업을 특화시키며 다양한 국가로의 해외 진출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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