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기관 갈등은 중구청이 제출한 5764억원 규모의 2024년 사업예산안을 중구의회가 80억원 삭감한 5684억원으로 수정 가결하면서 진행됐다.
반면에 길기영 중구의회 의장은 ‘필요한 사업에 집중했을 뿐’이라고 반발하면서 중구청과 중구의회가 정면대결하는 양상으로 번지게 됐다.
구는 의회의 예산삭감을 지적하는 현수막을 관내 곳곳에 걸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운데 중구 주민자치위원장, 직능단체장 등 주민 300여명이 지난 12월26일 중구민회관에서 중구의회 부당한 예산삭감 주민 규탄대회를 열고 “주민 주거 환경을 개선시키지도 못하면서 설계 예산을 깎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구민들의 혈세를 심의·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중구의회 입장에서 중구청이 크게 맞받아치고 나오자 심기가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길성 중구청장 “주민생활 직결되는 예산, 원칙·기준 없이 삭감”
중구에 따르면, 중구의회가 삭감한 80억원 가운데, 주민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사업예산도 포함됐다. 삭감으로 인해 운영이 불가능할 예정으로,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이번 재의는 지방자치법 제121조(예산상 집행 불가능한 의결의 재의 요구) 제2항에 따른 것이다.
구 관계자는 “이번 재의 요구는 부당한 예산삭감으로 최소한의 기능 유지도 어려워진 일부 사업의 필수예산을 조속히 확보해 안정적인 구정 운영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며 “이대로면 주민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사업의 운영이 불가능해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재의요구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재의요구 대상은 5개 사업이다. 대상 사업은 ▲폐기물 처리 수수료 15억원 ▲중구시설관리공단의 전출금 및 구민회관 위탁사업비 11억5000만원 ▲공영주차장 및 견인시설 운영을 위한 위탁사업비 10억원 ▲중구문화재단 출연금 5억원 ▲의류패션지원센터 민간 위탁비 2억8000만원 등이다.
구 관계자는 “특히 폐기물 처리 수수료는 쓰레기 처리를 위해 마포자원회수시설 및 매립지에 반입하는 데 필요한 수수료로 다른 대안이 없는 필수경비사업”이라며 “쓰레기가 제때 처리되지 못하는 것은 주민들의 주거환경과 위생 및 건강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도시 미관이 저해되고 악취가 발생하는 것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보육·체육·공용 주차장 등 총 111개 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시설관리공단의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경우와 공영주차장 운영·관리가 원활하지 못할수도 있다는 우려다.
주민들의 생활과 편의를 위해 마련된 각종 시설들의 운영이 중단되거나 노후 시설을 제때 보수하지 못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중차대한 주민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의류패션지원센터의 민간위탁비 삭감은 중구의 영세 봉제 업체들을 춥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맨몸으로 내모는 격이라는 게 중구 측 지적이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업의 예산을 ‘원칙과 기준 없이’ 삭감하는 것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불합리한 의회 행태”라며 “이번 재의요구를 통해 이를 바로 잡고 구민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반드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길기영 중구의장 “의회의 고유권한인 예산 심의의결권 무시한 여론전”
중구의회는 집행부가 의회의 고유권한인 예산 심의의결권을 무시하고, 일부 삭감이 있었던 것에 대해 비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중구의회 길기영·윤판오·이정미·송재천·조미정 의원 5인은 구랍 27일 중구의회 본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중구청이 관 주도하에 주민규탄대회를 열고 의회가 독단으로 예산을 삭감해 주민 불편을 주도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길기영 의장은 “의회는 예산안 심의 과정 중 기준과 명분 없이 마구잡이로 예산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다. 의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구민의 혈세를 검토하는 만큼, 꼭 필요한 사업에만 예산이 쓰이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집행부는 본인들이 계획안 예산안 중 단 1원도 삭감하지 않고 의결하라고 떼쓰고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의회를 무기력하게 하려는 것과 같고, 지방 의원을 선출할 의미도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중구청이 이번 예산안 가결을 마치 여·야 정당대결로 몰아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판오 부의장은 “집행부는 이번 예산안 의결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주도로 이뤄진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이번 예결위원장이자 국민의힘 소속 소재권 의원 주재 하에 예산심의가 이뤄졌다”며 “이 과정에서 의장을 제외한 여야 의원 8명이 참석한 예결위에서 여야 동의 하에 삭감하기로 한 예산은 74억3800만원했다. 수정안으로 5억600만원을 추가 삭감한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과거 사례 비추어볼 때 고금리 고물가 시대를 감안하고, 최대한 존중해서 최소치를 삭감한 것이지만, 마치 200억원 이상이 삭감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지난 2020~2022 3개년도 매년 500억원 삭감된 당시 중구청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의문이다. 집행부는 의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해 삭감한 것으로 알리고 것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미 운영위원장은 “최근 봉제소공인 271명의 연병부를 받고 이들과 소통을 나눴다.
이들은 본인들에게 지원되는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만 알고 의회를 찾아온 것이었지만, 사실은 봉제센터 운영 전반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자 여·야가 합의로 삭감한 내용”이라며 “당시 예결위원들은 예산이 민간위탁으로 넘어가기 전에 일단 삭감해서 바로 잡아보자고 다같이 한뜻으로 합의했다. 집행부의 봉제산업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예산삭감이라는 주장은 받아드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조미정 복지도시위원장은 “육아종합지원센터 관련 민간위탁 동의안을 상정하지 않은 것은 구민의 의견을 좀 더 경청해야 했기 때문에 미뤄 놓은 것”이라며 “중구도 민간위탁으로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 이에 관내 학부모들이 직영·민간위탁을 동시에 경험을 한 만큼, 그들의 찬성·반대 목소리를 충분히 검토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재천 의원은 “김길성 구청장이 예산을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며 “어린이집 보수와 관련해 시설관리공단과 집행부 예산이 일부 중복된 점을 확인해 이를 일부 삭감했지만, 집행부는 어린이집 원장 등 교육자들을 선동해 피켓을 들게 했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교육자인 원장들은 부끄러운 줄 알고, 이 기회를 삼아 각성해야한다”며 “인위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려는 행위를 지금당장 중단하고 각성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양 기관 갈등 예견…시정 전문가 “집행부·의회 주목적, 주민봉사 명심해야”
이러한 양 기관 갈등은 이미 지난 2022년 7월부터 예견돼 있었다. 중구청을 비롯해 어느 지자체든 집행부와 의회 간 갈등은 늘 있어왔지만 중구처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치 전쟁처럼 이어져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갈등의 시발점은 지난 7월 민선8기 및 제9대 의회 출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선8기 중구청장 자리에 국민의힘 소속 김길성 구청장이 당선됐고, 제9대 중구의회는 국민의힘 5석, 더불어민주당 4석으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었다.
중구의회는 2022년 7월6일, 제271회 임시회 1차 본회의를 열고 의장단을 선출할 예정이었다. 관례상 의장은 국민의힘 내부 합의에 따라 최다선 의원(재선)인 길기영 의원과 소재권 의원 중 한 명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 5명간의 의견이 엇갈리며 정회가 수차례 거듭됐다. 이어 차수 변경을 거쳐 같은 달 11일 3차 본회의를 열고 제9대 전반기 의장단 선출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고,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은 길기영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됐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소재권·양은미·허상욱·손주하 의원은 의장 선거 과정에서 야합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힘 서울시당은 지난해 10월 윤리위원회를 열어 길 의장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확정 의결하며 당원에서 제명 처분했다.
국민의힘 소속 나머지 4명의 의원은 길 의장 당선 과정을 ‘야합’, ‘날치기’라며 문제 삼고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에 ‘의장선출 결의 및 부의장선출 결의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10월 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구의회의 구성은 국민의힘·민주당 각 4명, 무소속 1명이 됐다. 의회 내 갈등은 고질적인 것이 됐고, 구청과 의회의 관계에까지 번진 모양새다.
길기영 의장은 “당시 소통하는 의회, 구민만을 바라보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과의 협치가 중요했던 상황이었다”며 “서울행정법원의 결과를 토대로 다시금 소통 분위기로 만들고자 김길성 구청장에게 공문을 통해 면담도 신청했지만, 구청 측에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집행부는 지금이라도 의회와 함께 공정하게 투명하게 머리를 맞대고 주민을 위해 고민하자”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정전문가는 이같은 중구의 갈등에 대해 “구청장의 당과 의회 다수당이 같을 때는 구청과 의회가 한목소리를 내기가 수월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구청장이 하는 사업이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며 “충분히 이해가 되는 사항이지만, 주민을 위한다면 사안별로 협조할 것은 손을 잡고, 같은 당이더라도 지적해야할 부분에선 바로잡아야 하는 게 기초의회의 주 목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현태 기자 gun1313@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