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주의에 대한 투자업계의 인식이 1년 만에 사뭇 달라진 듯하다. 작년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던 행동주의가 정기 주주총회 이후 '찻잔 속 태풍' 같은 '박한' 평가를 받았던 것을 기억해 보면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내년(2024년) 초 주총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펀드들은 연말부터 ‘몸 풀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상법 상 주주제안 안건은 주총 개최일 6주 전까지 제출돼야 하는데, 통상 정기 주총이 3월에 몰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늦어도 새해 초까지 개선 요구안 전달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금투업계에서 행동주의펀드 지향을 강하게 밝힌 대표적인 토종 운용사로는 KCGI자산운용이 있다.
한국의 기업 순이익 대비 배당 및 자사주 매입소각 비율, 즉 주주환원율이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국 대비해서 현저히 낮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KCGI자산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해 올해 8월 공개 주주서한 송부 등을 거쳐 최근 11월 그룹 회장의 이사회 분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경영구조 개선, 자사주 전량 소각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팰리서캐피털(지분율 0.62%) 등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받았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행동주의를 통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스코어링(scoring)을 바탕으로 주주가치 확대가 예상되는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주주가치액티브 ETF(상장지수펀드)’를 최근 12월 상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100여 년 행동주의가 태동했지만, 한국에 행동주의가 본격화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역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SK-소버린 사태’가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한국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가 도입되면서 토양이 만들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0년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에 뛰어든 ‘동학개미 운동’으로 소액주주 정책과 맞물려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너(owner) 중심 경영, 밸류에이션 저평가, 낮은 주주환원율 등은 한국 증시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행동주의가 정상적 기업경영을 방해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곤란한다. 또 자칫 적대적 M&A(인수합병)으로 흐르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상장기업들이 PBR(주가순자산비율) 1 미만, 장부가에 못 미치는 저평가 종목이 수두룩한 한국 증시 현실에 대해 함께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행동주의 자체는 도구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내년 정기 주총이 ‘최대주주와 소액주주의 1주가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가 안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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