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0억원 규모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디스커버리펀드와 관련해 판매사인 IBK기업은행(행장 윤종원닫기윤종원기사 모아보기)이 47억원의 과태료 제재를 받았지만 피해자들의 원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에 ‘봐주기 징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피해 발생 후 3년이 흘렀지만 배상 문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지부진했던 합의가 매듭을 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금융위는 기업은행의 설명의무 위반을 비롯한 불완전판매 행위와 투자광고규정 위반행위 등에 대해 자본시장법 등 위반으로 기관 업무 일부정지 1개월, 과태료 47억1000만원, 임직원 제재 등을 결정했다. 정지된 업무는 사모펀드 투자 중개 업무, 사모펀드 매수로 신탁재산을 운용하는 신탁계약 신규체결 업무다.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는 2019년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펀드가 환매 중단되면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디스커버리 펀드는 미국 ‘다이렉트랜딩글로벌(DLG)’이 발행하는 사모사채에 투자한 상품이다. 이 펀드 운용을 맡은 미국 운용사 DLI가 실제 수익률과 투자자산의 실제 가치 등을 허위로 보고한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돼 자산이 동결됐다.
이번 제재에 김도진닫기김도진기사 모아보기 전 기업은행 행장에 대한 제재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금융위는 기업은행의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사법부 판단에 대한 법리검토와 관련 안건들의 비교 심의 등을 거쳐 추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펀드 피해자들 "국책은행 봐주기"…특혜 의혹도
금융당국의 결정에 대해 펀드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이 제재를 지연한 끝에 ‘봐주기 징계’로 끝냈다고 성토했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기업은행에 대한 징계는 다른 사모펀드와 달리 봐주기 징계로 최종 결론내렸다”며 “검사를 두 차례나 하고 결과는 이제껏 발표도 하지 않았다. 결국 금융위의 제재결과는 피해자보다 국책은행을 봐주기 위해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기업은행의 펀드 판매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디스커버리운용사는 등록 6개월도 채 안 된 판매실적도 업력도 없는 운용사였다”며 “국책은행 기업은행이 무엇 때문에 리스크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위탁판매를 개시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특히 유력 인사에 대한 특혜 의혹을 상세히 조사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펀드에는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의 형인 장하성 중국대사 부부가 60억원, 김상조닫기김상조기사 모아보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4억여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일반 피해자들 대다수가 만기 전에는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에 투자한 데 반해 장 대사와 김 전 실장 등 유력인사들이 투자한 펀드는 만기 전에도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한 개방형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펀드 판매 규모가 장 대사의 청와대 근무시기(2017년 5월~2018년 11월)에 막대하게 증가했고,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대규모로 판매한 것을 두고 장 대사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11일 장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소환해 장 대사 등 고위 인사들의 투자 경위와 손실 보전 여부 등을 조사했다. 다만 장 대사와 김 전 실장 모두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장 대사는 지난 10일 입장문에서 “펀드 가입과 관련해 공직자윤리법 등 법률 위반사항이 없다”며 “펀드 손실을 보전받은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김 전 실장도 “공직자 재산 등록 시 투자 내역을 성실하게 신고했고 관련법상 의무를 위배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은 펀드 가입 후 환매 받지 않았다고 해명을 냈지만 장 대사는 대사로 임명되기 전 디스커버리자산운용사 사무실에 자주 왕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고객들에게 '장하성 정책실장의 친동생이 판매하는 상품'이라면서 마치 청와대 든든한 배경인 것처럼 안전성만 강조하고 고객들을 현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펀드의 명칭과 가입 시점, 판매 및 연계된 금융사, 환매 받지 않고 다른 증권사로 이전하게 된 경위와 신탁계약 변경 여부, 회수된 금액이 있는지, 현재 시점 기준으로 돌려받지 못한 손실금액을 명쾌하게 공개해 모든 의혹을 해소해달라”고 촉구했다.
배상 합의 평행선…"분조위 결정대로" VS "100% 배상"
펀드 피해배상을 둘러싼 은행과 피해자들의 갈등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업은행은 배임 등의 이유로 금융당국의 분쟁조정 결과에 따라 피해를 배상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5월 기업은행에 대해 불완전판매 등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 40~80%의 배상비율로 자율조정을 하라는 제시한 바 있다. 금감원의 부문검사 결과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를 중소기업·개인 고객에게 판매하면서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나지 않는다’, ‘수익률 3.x%’ 등 문구로 안전성과 수익성을 호도하는 불완전판매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한 상품선정·판매, 판매 과정의 미흡한 내부통제 문제도 드러났다.
당시 분조위는 “기업은행은 투자자 성향을 먼저 확인하지 않고 펀드 가입이 결정된 후 공격투자형 등으로 사실과 다르게 작성했고 미국 채권 등에 투자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강조하고 관련 위험요인 및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누락했다”며 “특히 상품선정 및 판매 과정의 부실, 공동판매제도 관련 내부통제 미흡 등으로 고액·다수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책임도 크다”고 판단했다. 펀드 피해 고객 절반가량은 해당 조정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나머지 피해 고객들은 금감원 조정안을 거부하고 피해 원금 100%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의 또다른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은 판매자 책임을 인정해 분쟁 조정이 아닌 사적화해 방식으로 100%를 배상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기업은행과 디스커버리운용사는 사모펀드 설정, 판매, 운용, 사후관리 등 전 과정에서 사기판매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투자증권 방식으로 100% 보상하라”며 “정부와 국회는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판매를 반면교사로 삼아 온전한 피해배상이 이뤄지도록 하고 다시는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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