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이 음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하이트진로음료로 적을 옮기기 전 조운호 대표가 웅진식품에서 악전고투로 빚어낸 제품들이다.
◇ 취임 3년 차, 올 상반기 흑자전환 확신
지난해 하이트진로음료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조 대표가 생수 판매로 굳어진 기존 하이트진로음료의 포트폴리오를 비생수(음료) 판매로 재편한 이후 비생수 매출 비율은 전체 19%에서 32%로 높아졌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도리어 25억원에서 53억원으로 증가했다. 초기 설비투자가 집중된 탓이다.
조 대표가 부임하기 전 하이트진로음료는 10년간 적자 상태에서 허우적거렸다. 은행원 출신이자 웅진그룹에서 회계를 담당한 ‘재무통’ 답게 조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하이트진로음료 ‘수익구조 바꾸기’에 돌입했다. 먼저 ‘규모의 경제’인 생수 사업 부문은 설비 증설로 그 기반을 갖췄다. 설비 투자를 바탕으로 올해 석수 점유율은 8% 성장해 삼다수, 아이시스에 이은 ‘넘버 3’가 될 것으로 조 대표는 내다봤다.
유통 조직을 키우기 위해선 신제품이 절대적이다. 조 대표는 음료 포트폴리오를 짜고 블랙보리를 론칭했다. 론칭 첫해 판매 실적을 두고 주변에서는 놀랐지만, 조 대표는 “내 생각보단 덜 팔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음료 시장에는 ‘첫해에 성공하면 둘째, 셋째 해는 2~4배까지 매출이 늘어난다’는 셈법이 있다. 통상 음료를 출시하면 매출이 150억원일 때, 광고비는 40~50억원이 투입되는 탓이다. 진짜 실적은 판촉비가 빠지는 둘째 해부터다.
석수와 블랙보리의 매출 신장이 전체 실적을 견인할 만 하지만 장래성이 가장 밝은 것은 토닉워터다. 지난해 12월 깔라만시와 애플 2종을 새롭게 출시한 이후 1월부터 3월 말까지 토닉워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했다. 특히, 일명 ‘쏘토닉’(소주+토닉워터) 문화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내에서 고조되면서 탄력을 얻었다.
“올해 토닉워터 매출은 블랙보리와 비등하게 150억 이상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트진로의 유통망을 통해 업소를 겨냥하면 더 많이 팔릴 수도 있다. 유흥시장의 경우 5만 군데 납품되면 1000억원의 신규 매출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다. 참이슬이 들어가 있는 업소에만 토닉워터가 들어가도 성공인 셈이다. 토닉워터 하나로 최대 1조까지 매출을 올릴 수도 있다.”
◇ 5월 말 ‘트레이더 조’ 정식 수출...‘세계무대’ 향해
올해는 조 대표 개인에게 더욱 뜻깊은 해다. 다음달 말 블랙보리는 미국 대형마트인 ‘트레이더 조’에 들어가게 된다. 당장 하이트진로음료 실적에도 청신호이지만, 조 대표 음료 일생의 숙원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조 대표의 꿈은 가장 한국적인 음료인 곡물 음료를 세계 시장에서 어엿한 음료 카테고리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1년 내내 그 작업에 매진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내 500여개에 달한다. 첫 오더가 15 컨테이너다. 이렇게 한 번 코드가 잡히면 다른 제품은 넣기가 쉽다. 또 글로벌 시장의 강국을 뚫는다는 의미도 있다. 나에게는 ‘신제품 수출 좀 했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24년 동안 해왔던 ‘우리 음료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원년’이 되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국 들어가면 나머지 국가는 들어가기가 더 쉬워진다.”
생산량이 뒷받침 되느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운이 좋다고 답했다. 블랙보리는 음료 주입 시‘무균 충전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본래 삼양사가 점유하고 있는 이 설비 시장에 동원도 진출하면서 3억개를 생산할 수 있는 케파가 확보됐다고 했다. 좋은 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조 대표는 강조했다.
“콜라와 커피, 홍차 등 기존 음료는 다 카페인이 들어있다. 이때까진 사람들이 카페인이 좋은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카페인의 부작용이 지적되면서 카페인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나고 있다. 전 세계가 카페인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리음료는 콜라(카페인 든 음료)를 잡을 수 있는 음료다. 일본에서 보리차가 8000억까지 급성장한 배경에도 카페인 문제가 있었다.”
블랙보리가 북미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이후, 다음 바톤은 ‘쏘토닉’이 이어갈 것이라고 조 대표는 기대했다.
“저도수 시대, 혼술(혼자 마시는 술) 시대와도 쏘토닉은 잘 맞는다. 소주를 저도수 만드는 방법이 쏘토닉이다. 쏘토닉을 ‘문화’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소주가 판매되고 있는 모든 나라에 쏘토닉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게 될 수 있다는 명제를 나는 응용하고 싶다. 유럽은 토닉워터 시장이 10조 정도 되는데 그냥 카피를 하면 안 되고, ‘자기화’해야 한다.”
◇ 20년 일본 녹차 성공 사이클, 한국도 똑같아
조운호 대표는 블랙보리를 역사에서 착안해 디자인했다. 그가 음료 산업에 처음 뛰어든 1995년 당시 2조5000억원 규모의 음료 시장에서 해외 음료는 90% 이상을 차지했다. 조 대표가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을 성공시킨 이래 후발 주자들이 따라붙으면서 현재 곡물 음료 시장은 3500억원까지 확대됐다.
“곡물 음료 역사가 20년 흘렀고 전체 시장이 3500억원에 이르는데, 보리차 시장은 500억원밖에 안 된다. 거기에 착안해 보리 음료를 만들었다. 내가 하늘보리로 보리 음료 구현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 1000년의 역사 인이 배겨 있는 보리의 숨결을 멀리한 게 아닌가. 한국의 숭늉 문화를 짚어보면 보리 숭늉이 원조이고 대가 끊어지면서 대신한 게 보리차다. 예컨대, 하늘보리는 보리차 티백을 음료로 만든 것이고, 블랙보리는 숭늉 문화를 계승해 숭늉 맛에 가깝게 만든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보리차를 만들어 낸 결과, 지난해부터 블랙보리와 더불어 그의 전작인 하늘보리 매출도 덩달아 증가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헛개차, 마테차, 옥수수차, 혼합차 등 다른 차 종류의 매출은 뚝 떨어졌다. 조 대표는 이 원인 역시 역사에서 찾았다.
“일본은 차 음료를 40년 전에 상업화했는데 현재 시장규모가 9조원에 달한다. 초기에는 우롱차, 홍차, 블랜딩차가 잘 나갔다.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나서 잘 팔리던 우롱차가 빠지고 녹차가 급성장하게 된다. 녹차가 음료판에서 성공하기까지 왜 20년이나 걸렸을까? 일본인들은 녹차를 집에서 물처럼 마신다. 흔해빠졌으니까 돈 주고 사먹기 아까웠던 것이다. 수질 문제가 부상하며 생수를 사 먹기 시작하면서 녹차 매출도 치고 올라오게 된다. ‘이왕 물 사먹을 바에야 녹차를’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하늘보리가 나온 지 정확히 20년 됐다. (갑작스러운 보리차 매출 상승은) 일본과 똑같은 패턴이다.”
웅진식품에서 처음 하늘보리를 기획할 때만 해도 조운호 대표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지금이야 생수를 구입해 마시는 게 일반적이지만, 20~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당시 조 대표는 수도관의 수명은 30~40년에 불과하며, 수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질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물 사 먹는 데 돈 아끼지 않는 시대’에 정확히 안착하자 흔한 가정 음료 ‘보리차’의 매출은 전체 차 시장을 견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 아이디어 재탕?...카테고리 생각하면 ‘새 발의 피’
조운호 대표에게 ‘회사 옮기고 아이디어 재탕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과거 회사에서 하늘보리를 만들고 새 회사에서 블랙보리를 만든 것을 비꽈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대표는 서슴없이 “조운호가 아이디어 고갈됐다는 소린 개별 제품과 카테고리를 구분 못 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자체 개발한 용기(容器)론 전문가다. 상업 음료의 역사는 용기의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밖에서 들고 다니며 음료를 마시기를 원했다. 이 욕구가 담는 그릇의 개발을 이끌었다. 상하지 않게 실외에서 보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용기 역할의 핵심이다. 니즈(needs)가 용기를 탄생시킨 것을 두고 그는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라 부른다.
“이 용기에 딸기, 포도, 자두 등을 담는 기업들의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안 담아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230년 동안의 다양한 시도들이 음료 ‘군’을 탄생시켰다. 오렌지 주스로 대표되는 과일음료, 콜라・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커피음료, 차음료 등이 그것이다. 나는 23년 전에 여기 존재하지 않던 곡물 음료 군을 개발해냈다. 즉, 곡물 음료 카테고리는 아침햇살, 하늘보리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곡물 음료 제품이 만들어질 때,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의 수준이 될 것이다.”
조 대표는 단기적인 제품의 탄생・소멸에 궁극적인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이러한 제품들이 모여 카테고리를 견고히 하는 장기적인 계획에 비전을 두고 있었다. 이는 조 대표의 ‘소명’이기도 하다. 코카콜라와 싸워서 넉넉히 이길 ’사람을 이롭게 해주는 한국인의 음료’를 만든다는 것. 웅진식품에서 주변의 만류와 강압에도 불구하고 제품 출시를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소명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20년은 도입기나 다름없다. 제품 하나 만드는 것도 도전인데,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배짱이다. 어떤 형태든 간에 곡물음료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 ‘용기에 담을 차 = 조운호 차기작’은 무궁무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한국의 곡물음료 시장이 성숙해져 가는 게 곡물음료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과 꼭 같은 의미일까? 1500원이 넘어가는 차를 물 대신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건 흔한 풍경이 됐다. 곡물음료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은 ‘개척해야 할 소비자’는 여전히 많은가. 이는 하이트진로음료의 성장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일본 음료 전체 시장 40조인데, 한국은 4조를 약간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수는 2.5배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왜 음료 시장은 9배 차이가 날까? 이 수치는 우리에게 잠재 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숨어있는 시장이 뭘까? 탄산음료, 주스, 커피 성장률은 지난 20년 동안 25%에 머물렀다. 그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20년 동안 국내 전체 음료 시장은 80%가 늘어났다. 생수와 차가 주역이다. 한국 전체 음료 시장은 7조까지 클 수 있다. 숨어있는 2~3조를 찾아내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용기론’에 입각해서 아직 용기에 안 담은 것들을 찾으면 답이 보인다.”
블랙보리 이후 조 대표의 차기작은 그간 용기에 담기지 않은 한국의 모든 차가 될 게 분명하다. 초록매실, 아침햇살, 가을대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그는 매실의 특색에 주목했다.
“매실은 아시아 연합의 공통 코드다. 매란국죽(사군자)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매화의 열매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밖에 안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매실 종자가 한 두개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수십개에 달한다. 일본은 매고(매실 고등학교)가 있어 늘 종자 개발을 한다. 지금 매실음료를 세계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 음료 개발을 등한시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성장이 정체됐을 때 종자를 바꿔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 He is…
△ 62년 전남 해남 출생 / 88년 경성대 졸 / 2006년 연대 경영대학원 졸업(MBA) / 81년~90년 제일은행 / 90년 웅진그룹 기조실 / 95년 웅진식품 마케팅부 부장 / 99년 웅진식품 대표이사 / 2005년 웅진식품 부회장 / 2006년 세라젬 그룹 부회장 / 2009년 얼쑤 대표이사 사장 / 2017년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이사
구혜린 기자 hrg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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