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청와대는 새해 첫 달을 업무 보고로 흘려보내지 않고 1월부터 정책을 집행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다른 부처들도 12월에 업무보고를 마쳐야 했다. 늦어도 1월초까지는 마무리 됐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후 별다른 설명 없이 추가 업무보고를 미뤘다. 그러다 이제 와서 나온 얘기가 나머지 부처는 서면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대면 보고를 받은 곳은 작년 말에 보고를 받은 7개 부처뿐, 18개 정부부처 가운데 11곳이 서면 보고로 대체하게 됐다. 구체적으로는 총리실에서 각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내용을 취합해 정리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들은 서면 보고를 마쳤고 총리실과 청와대 해당 수석실에 보고한 상태다. 각 부처는 준비한 업무보고를 언론에 발표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올해처럼 많은 경제부처들이 서면 보고를 한 것은 전례가 드물다. 업무 보고가 3월에 이뤄진 것도 이례적이다. 청와대는 워낙 시간이 부족한데다 국정 현안이 많아 서면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선 개각이 있었다. 개각을 앞둔 정부 부처의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기는 어렵다. 새로 임명된 장관한테 업무보고를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곧 바뀔 장관에게 보고를 받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로 청와대는 후속대책 논의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일정 조율이 업무보고를 할 시간을 도저히 잡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바쁘기는 했지만 시간을 굳이 내려면 못 낼 것은 아니었다. 중소·벤처기업, 대기업·중견기업, 혁신벤처기업, 자영업·소상공인 대표와의 만남 등 대통령의 경제행보는 활발했다.
당연히 새해 업무계획은 각 부처가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이미 보고한 내용과 겹친다. 새해 예산안을 짜면서 이미 정부가 추진해야 할 주요정책과제들은 정리가 끝난 상태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연말에 발표하는 새해 경제정책방향은 새해 예산안의 주요 사업과 함께 정책 과제를 정리해 놓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업무보고를 내놓는다고 해서 작년 말에 발표한 경제정책방향과 다른 내용이 들어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내용이라고 해야 별게 없는 업무보고를 하느라고 괜히 공무원들을 밤새워 일하게 만드는 것도 잘하는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부 부처들이 해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업무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서실에서도 굳이 억지로 시간을 잡아서 장관으로부터 대면 보고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북문제에 집중하느라 경제문제에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에 목숨을 거는 공무원 조직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이번처럼 지각 보고가 없었던 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2001년에는 1월 15일 시작된 업무보고가 4월 18일에 끝났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과 김대중 대통령의 해외순방, 개각 등으로 늦춰진 탓이었다. 그래도 서면보고는 아니었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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