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 사업을 최종 선정했다. 23개 사업으로, 전체 규모는 약 24조 원에 이른다.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목적이라고 한다. 예비 타당성 조사는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그러니까 1999년에 도입됐다. 국고 300억 원 이상이 지원되는 대형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제도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용을 검토해서 재정 투입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도 도입의 이유다. 경제성이 부족하다면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내용을 보완하도록 해서 예산 낭비를 막자는 목적이다.
예비타당성조사에는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가 다 포함돼 있다. 정성 평가는 보건, 복지, 환경, 교육, 문화적인 효과처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을 심사하기 위해서다. 원칙대로 하자면 꼭 나라에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정부가 정성 평가 기준을 좀 달리 조정해서, 규정대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 사회 공동체 유지와 약자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런 정공법은 선택하기 어려웠다.
물론 토건 사업이라고 해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토건 사업이든 뭐든 필요한 일은 하는 게 옳다. 낡은 도로와 교량, 철도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일은 해야 한다. 남북교류 활성화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늘려야 한다. 게다가 이런 사업을 통해 일자리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고 정부도 이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법규 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거의 모든 법이 그렇듯이 예외 조항이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예비 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
17개 시·도가 타당성 조사 면제를 요청한 사업은 모두 33건이었다. 서울 1건, 16개 시도가 각 2건씩이었고 규모로는 모두 60조원을 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침은 광역 지방자치단체별 로 1건 정도씩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초에는 정말 시도별로 하나씩 해서 17개 정도의 사업을 골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최종 선정과정에서 조금 늘어나 23건이 됐다. 대신 사업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줄었다.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업비 4조7천억 원으로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이 김천에서 거제를 잇는 남부 내륙철도사업이라는 데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건 당연하지만, 여론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야당의 반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앞으로다. 2014년 이후 지난 5년 동안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은 사업은 단 1건도 없었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이제 지역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집단 시위, 로비 또는 정치권을 통한 압력이 그 방법이 될 것이고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 집단이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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