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보다 능력이 인정받는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고졸 취업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올해엔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선취업 후학습’ 지원 사업이 펼쳐진다는 설명도 나와 있다.
자세히 봤더니 참담하다
“졸업생 취업률은 10%포인트 급락하며 5년 만에 70%대가 무너졌다. 학령인구 절벽이 임박한 상황에 엎친 데 덮친 악재로 직업교육체제 자체가 무너질 판이다.” (<‘사면초가’ 특성화고..’정책 피해자로 몰린 사회적 약자’ 베리타스알파 2018년10월26일>
서울의 한 특성화고의 경우 예년이면 수능 전후로 110명 이상이던 취업자 수가 올해는 30여 명에 그친다고 한다. 조기 취업을 향해 3년 동안 애썼던 학생들 다수가 진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기 직전이다. 공기업, 사기업 모두 채용을 줄인 탓이라지만 취업에 성공했다가도 중도 포기한 사례 몇을 들어 보면 취업자 수만 맞춘다고 될 일도 아니다.
중견 보험사에 입사했지만 반년 쯤 지나 선임 직원도 없는 한 점포로 발령이 났고 소비자 대면 업무 등을 처리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빠듯할 정도여서 그만 뒀다는 경우도 있다.
정말 실화냐 궁금해서가 아닌데
젊은 층 말글살이에서 쓰는 “레알?” “실화냐?” 반문을 문재인 대통령과 핵심 보좌진들은 듣고 있기나 할까. 지지층에서 ‘그러면 그렇지’ 이탈하는 레알과 실화 사이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 교체 카드로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실망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전형적(典型的)인 장면이 며칠 지나지도 않은 14일에 생중계 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닫기김동연기사 모아보기 부총리 사이의 팀웍을 문제삼는 질에 김호철 청와대 정책실장의 답변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당일 질의 응답 내내 웃음을 머금은 김 실장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 경기가 둔화됐을 뿐이라 했다. 국민 체감경기의 준엄함을 질타하자 정부도 걱정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조기취업 설레임이 단박에 날아간 채 감정노동 최일선에 방치되다 시피 고초를 겪다가 사표를 던진 선배와 아예 그런 취업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특성화고 1년 차이 선후배 중에 누가 더 안타까운지. 고졸 실업자와 대졸실업자, 20~30년 꾸렸던 가게 문을 닫는 사람의 눈물과 퇴직금 전부를 걸었다가 빚 갚으려 아파트마저 처분한 ‘초짜’ 창업자의 눈물. 비교가 가능은 한가.
이 사회 눈 돌리는 곳마다 가슴 멍울이 짙어지고 눈물은 차고 넘치는데 이젠 전임 정부 9년 탓을 할 수도 없는데 태연한 신색이다.
‘녹색’과 창조’의 실패, ‘포용’은?
사람 사는 게 비슷해서 역사 상황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된다는 담론이 아직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최근 들었던 한 인문학 강좌에서 조선후기 과거시험 응시자가 당시 한양 인구보다 많을 때가 적지 않았고 심지어 최고치는 26만 명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납세와 균역 의무에서 벗어나 특권을 누리는 ‘사족(士族)’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비록 낮에는 농공(農工)에 종사하더라도 밤이면 유가 경전을 공부하기 때문에 ‘업유(業儒)’ 남성 비중이 한 마을에 7~8할에 이르는 곳이 허다했던 사실을 서양학자들은 경이로워한다는 이야기.
납세와 군역의 가혹함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사회구조를 기형화 시킨 것을 두고 일부 역사비평가들은 당시 지배층의 탐욕,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를 지적한다.
21세기 우리 사회와는 다른 점과 닮은 점이 공존하는 게 사실이다.
사설 입시시관 광고에 세칭 명문대 합격자 뿐 아니라 사관학교 경찰대 교대 합격자 수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전공을 불문하고 사시와 행시에 목을 매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가, 자생력이 뿌리째 썩어가던 조선 후기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것은 학자들의 몫일지 모른다.
하지만 ‘포용 경제’ ‘사람중심’ ‘소득주도’ 담론의 정당성만 강조하지 말고 사회 실정이 어떤지 그래서 무엇부터 풀어나갈 것인지 살피고 당장 할 일과 길게 가기 위해 단계마다 달리 펴야할 정책을 구분하는 일, 말로하는 설득과 실증적 효과를 입증해서 공감대를 넓혀야 하는 일을 나누어 추진하기에 행정부와 청와대는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생명 존중이 빠졌기에 실패했던 ‘녹색성장’, 민간의 창의성 대신 만기친람 군림하려다 무엇하나 남기지 못한 ‘창조경제’ 실패를 따라가지 않는 방법.
만고불변 政事의 기본에 충실해야
어렵고 낯선 외래 패러다임을 찾아서 포장할 시간에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만고불변의 책무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고민하는 일이 먼저이지 않은가.
포용성장이니 사람중심 경제나 소득주도(소주) 성장이니 새롭고 시쳇말로 ‘따끈따끈한’ 용어 혹은 패러다임에 혹하겠다는 생각은 대통령 본인도 품은 바 없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정부에게 모든 역할과 책임이 귀속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기업 오너들과 경영진의 각성도 따라가지 않으면 세상 나아질 것은 없다. 이 대목에서 벌써 10년도 전에 ‘지속가능경영’ 패러다임을 은행 경영에 녹여내려 했던 전직 CEO 사례가 생각이 난다.
“글로벌 우량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재무적 성과가 우수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윤리경영, 사회공헌, 환경경영을 아우르는 지속가능경영 면에서도 앞서가야 한다.”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 저서 <CEO레터>)
지속가능경영 맥락과 통하는 요즘 기업 총수 행보로는 최태원닫기최태원기사 모아보기 회장 예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장이 실현하고자 했던 것 가운데 ‘고용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업덕목은 요즘 경영계에서 크게 희석돼 있다. 일자리 문제는 대통령과 행정부만 뛴다고 될 일이 아니고 기업이 나눠져야만 실현 가능한 숙제다. 경세제민 정부와 기업 함께 가야 모두가 산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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