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임 20주년을 맞은 서경배닫기서경배기사 모아보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을 향한 의지를 재다짐 했다.
태평양은 1945년 회사 창립이후 화장품 업계 1위를 지켜왔지만, 1986년 화장품 수입 개방으로 90년대 초부터 점유율이 하향세를 그렸다. 이 때문에 당시 국내 화장품 업계는 사양 산업으로 인식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재무구조 부담이 커지자 태평양은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다. 당시 사장이었던 서 회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태평양증권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자, 태평양돌핀스, 태평양패션 등 계열사를 잇따라 매각했다.
그는 “1990년대 초 당시 회사는 창업 이래 줄곧 1등을 유지해왔다는 안일함에 사로잡혀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실패했다”며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화장품과 건강사업이라는 판단 하에 선택과 집중으로 아모레퍼시픽 설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2006년 태평양에서 사업부문을 분할해 아모레퍼시픽을 설립했다.
서경배 회장은 20년 동안 아모레퍼시픽을 이끌며 국내 화장품 브랜드 1위 기업으로 일궈냈다. 취임 이후 21세기 기업 비전을 ‘미(美)와 건강 분야의 브랜드 컴퍼니’로 정하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선별해 회사의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가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매출액이 1996년 말 기준 6462억 원에서 2016년 말 6조 6976억 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동기간 522억 원에서 1조 828억 원으로 21배 성장했다.
1996년 당시 94억 원이었던 수출액은 2016년 1조 6968억 원을 기록하며 약 181배 성장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판을 마련했다.
올해 초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뷰티업계 최초로 미국 패션·뷰티 전문 매체인 WWD(Wome n’s Wear Daily)가 선정한 세계 100대 뷰티기업 중 7위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 서 회장은 ‘처음처럼’을 2017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초심을 되새겼다. 그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무모할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했던 창업자의 정신을 기억하고 어떤 역경도 반드시 극복해낸 역동적인 DNA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태평양’ 넘어 유럽·미국으로 사업영토 확장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인 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하우스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중국과 홍콩에 진출한 이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와 미국, 캐나다까지 현재 14개국에 총 5500여개(타 유통채널 입점 포함)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중국이 매장수 3852개, 미국과 캐나다가 1177개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경배 회장의 중국 진출은 남들보다 한 발 앞섰다. 중국시장 개방이 가속화되기 전인 1993년, 선양 현지법인을 설립해 백화점과 전문점에 ‘마몽드’와 ‘아모레’ 브랜드를 공급했다. 당시 소비자 조사를 통해 ‘고급화 전략’ 마케팅 흐름을 읽은 서 회장은 본격 중국 진출에 앞서 홍콩을 테스트 무대로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했다.
중국 진출은 성공적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해외 매출의 62%를 중국에서 올렸다. 중국 매출은 2011년 1891억 원에서 지난해 7657억 원으로 연평균 61% 성장률을 기록했다.
모든 해외사업이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특히 유럽시장 중 프랑스는 뼈아프다. 서 회장은 1988년 화장품 브랜드 ‘순’을 통해 처음으로 프랑스 수출길에 올랐다.
당시 17개 종합병원의 피부과 전문의와 공동 연구 개발을 거쳤으며, 프랑스 현지 중개상들을 통해 유통망을 확보했기 때문에 기대감이 컸다. 1990년에는 프랑스 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91년에는 1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여성들의 화장 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으로 프랑스 소비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파트너사의 매각으로 인해 프랑스 판매권을 상실한 아모레퍼시픽은 위기를 맞으며 브랜드를 전면 철수시켜야 했다. 당시 부사장이던 그는 “상황파악을 위해 프랑스 현지로 바로 달려갔지만 남아있는 건 약국 구석에 먼지 덮인 순 제품이었다”며 “당시 분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에 서 회장은 절치부심의 자세로 올해 다시 한 번 프랑스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프랑스 파리 현지 최대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설화수 단독 매장을 내고 본격적인 유럽진출을 선언했다. 중화권, 아세안, 미주 3대 축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을 전개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은 중화권에 이어 앞으로 아세안과 미주 시장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의 최약점으로 거론되는 중국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중국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중화권에 90% 이상 집중된 해외 사업 구조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돼 왔다.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1준기 영업이익은 3785억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방한 관광객 유입이 급감하자 면세점 영업이익이 역신장 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 아낌없는 R&D 투자…성장의 밑거름
서경배 회장의 R&D(연구개발)과 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뷰티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밑거름이 됐다. 특히 프랑스나 미국 화장품을 모방하지 않고 아모레퍼시픽이 최초로 독자 개발한 ‘에어쿠션’은 수많은 미투(Metoo)제품을 탄생시키며 화장품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화권에서 많은 인기를 끈 ‘슬리핑 마스크 팩’과 ‘부스팅 에센스’, ‘에어쿠션’, ‘투톤 립바’ 등 기존 화장품과 다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연간 1300억 원이 넘는 개발비용을 과감히 투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기초 과학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1954년 한국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했으며, 서 회장은 지난해 3000억 원 규모의 개인 보유주식을 출연해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기초 과학 연구는 선대 회장의 뜻”이라며 “과학은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원동력이었으며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을 있게 해준 근간”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 아모레퍼시픽은 본래 둥지인 용산 신사옥으로 복귀하며 ‘제2 용산시대’를 앞두고 있다. 옛 사옥이 오래됐을 뿐 아니라 회사의 물리적 성장을 위해서는 회사의 증축이 필요하다는 서 회장의 판단아래 용산사옥의 재건축이 이뤄졌으며 총 5200억 원이 투자됐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은 시대의 격동을 이겨내며 개성에서 서울 회현동으로, 부산 피난지로, 서울 후암동으로 옮겨다닌 끝에 1956년 용산에 터를 잡고 역사를 써왔다”며 “신사옥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꽃을 피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으로 원대한 기업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민정(26)씨는 올해 1월 평사원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다. 창업주 서성환 전 회장과 서 회장의 뒤를 이어 3세 경영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경영 수업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정씨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해 7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컴퍼니에 입사해 사회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학 력 〉
- 1985년 2월 연세대 경영과 졸업
- 1987년 7월 코넬대 경영대학원 졸업
〈 경 력 〉
- 1987년 7월 태평양 입사
- 1992년 1월 태평양제약 사장
- 1994년 1월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
- 1997년 3월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
- 2006년 6월 태평양 및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사장
- 2013년 1월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신미진 기자 mjshin@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