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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부동산,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기사입력 : 2019-12-10 10:40

(최종수정 2019-12-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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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감정원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 지인 A씨 이야기

최근 한 대기업의 일본 지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한국의 본사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오랜기간 도쿄에서 근무한 탓에 고국에서 일하는 게 그리울 법 했지만, 그는 20년 직장 생활의 상당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만큼 그냥 일본통으로 남고 싶어했다.

그런데 대략 3년 전 도쿄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서울 복귀를 바라고 있었다. 당시 재미 없는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그는 변해 있었다.

"그냥 도쿄에 눌러 앉을까 해. 서울 아파트 값은 정말 미친 것 같아. 서울이 도쿄보다 비싸야 하는 이유가 있나? 서울에서 아파트 살 돈이면 도쿄 훨씬 좋은 곳에서 살 수 있어."

아, 지인은 몸 담고 있는 기업에서 해외 근무를 많이 한 탓에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해 두지 못했다. 장똘뱅이처럼 떠돌면서 해외영업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가 변한 게 아니라 '서울'이 변한 것이었다.

"도쿄도 지역별로 다르지만 신쥬쿠 중심부도 15억 정도면 좋은 곳에서 살 수 있어. 서울 강남이 20억, 30억씩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한국 복귀)을 접었어. 도쿄에서 제일 비싼 시부야의 10년 아파트 가격이 1.1억~1.3억엔 수준이야. 우리 공급평형 30평형이 그 정도야."

그는 강남 집값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 더 예를 들었다.

"신쥬쿠 방위성 옆 꽤 좋은 맨션 24평이 9천만엔이 안돼. 한국은 서울 아파트 산 사람은 땡 잡은 것이고, 못 산 사람은 졸지에 바보가 된 것 아닌가? 리먼 사태보다 더 센 게 와서 서울 아파트가 무너져야 나 같은 사람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겠군."

일본의 맨션은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한다. 일본은 우리처럼 공급평형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아파트 크기와 관련해 '평' 개념을 사용하지만, 일본은 제곱미터 단위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아무튼 도쿄 중심가 중 한 곳의 우리 30평형대에 해당하는 물건을 그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지인이 외지에서 느끼는 서울 아파트 가격은 스트레스였다.

# 지인 B씨 이야기

최근 한 대기업의 중국 지사에서 서울로 복귀한 지인 B씨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B씨는 20년 남짓한 직장 생활의 절반 이상을 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이른바 '중국통'이 됐으나 본사의 부름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울 시민이 돼야 했다.

이미 상당기간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베이징에서 근무했지만, 2년 남짓 사이에 '크게 뛰어버린' 서울 아파트 가격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객지에서 열심히 살았지. 아이 셋을 키우면서. 그런데 지금의 서울 아파트를 살 돈도, 그럴 의향도 없어."

B씨 역시 유명 대기업의 수출 전사로서 해외 영업현장을 누비느라 서울 아파트 가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서울의 공기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차가웠다.

사실 중국 대도시의 부동산 값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서울, 도쿄 등 아시아 주요도시를 찜쪄먹을 정도다. 그가 최근까지 가지고 있던 감각은 이러했다.

"대략 내가 있던 북경이 10억원대 후반에서 20억원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아. 중국 대도시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돈 없는 사람이 살만한 데가 못 돼."

그는 북경에서 돌아온 뒤 간신히 아파트 전세를 마련한 뒤 낯선 서울 분위기에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중국 투기자본의 무서움도 잘 안다.

부동산과 관련한 중국 자본은 '폭력적'이었다. 중국 자본 때문에 캐나다, 호주 부동산 등이 몸살을 겪은 적이 있으며, 홍콩은 중국 부동산 투기자본 때문에 서민의 삶이 무너져 내렸다.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750만 가까운 인구 중 중국 본토인이 100만을 넘어설 정도로 중국화되고 있다. 그러면서 홍콩 서민의 삶은 파괴돼 갔다. 많은 홍콩의 '서민'들은 월세를 감당하느라 미래를 포기해야 했다.

올해 내내 홍콩 시위가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가운데 사실 홍콩 젊은이나 서민들의 분노 역시 부동산 가격 급등, 노동가치 폭락과 맞물려 있다.

북경에 오랜기간 머물렀던 B씨는 최근 10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해서 재미 본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 부동산 투기에 신물이 났던 그가 한국 정부에 한마디했다.

"최근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화가 많이 났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 그리고 잘 하고 있다는 말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분 같아."

■ 역대 정부 부동산 정책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박근혜·이명박 정부 대비 서울 아파트 '폭등'

해외 생활을 오래한 A와 B씨는 서울의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뛰어버린 아파트 값 때문에 좌절했으며, 지난 달 대통령의 답변에서 또 한번 낭패감을 느꼈다.

1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발언'에 대해 놀랐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그에 따른 서울 아파트 폭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많은 서울 시민들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했던 것이다. 물론 서울 아파트 폭등으로 평생 일해서 벌 수 있는 돈 이상을 번 사람에겐 이번 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당시 대통령의 발언은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적지 않게 회자되고 있다. 당시 상황을 한번 더 복기해보자.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방어 논리'에 가득차 있었다. 우선 한 중년 여성이 던졌던 질문과 대통령의 답변을 보자.

"부동산 문제는 투기꾼을 잡는 과정에서 역차별을 당했습니다. 서민들의 융자를 살펴주세요."

질문자 질문의 요지는 '대출 문제'였다. 투기를 하려는 사람은 아니고, 아마도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지역 등 규제 지역에 집을 한 채 가진 사람이 이사를 가려는 목적이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질문의 요지와 어긋났다. 대통령의 답변은 이러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이유는 역대 정부가 부동산을 경기 부양수단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건설경기 만큼 단기간 경기 부양을 하는 게 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정부는 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 부양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질문자의 내밀한 사연은 알 수 없으나 대출이 잘 안 되니 살펴달라는 요청에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뒤 '역대 정부의 부동산을 활용한 잘못된 경기부양'을 비판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많이 이상했다.

이미 많은 집 없는 서울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 폭등으로 꿈을 버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박근혜 정부 시절 주택대출 규제 완화, 저금리 등으로 부동산 상승 에너지가 응집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만큼 문재인 정권이 초기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급 확대를 배제한 각종 규제책은 가격을 오히려 더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권 출범 뒤 2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 지난 정부의 탓을 하는 모습이 이젠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이미 중반부로 왔다. 건설경기로 통해 억지로 경기를 부양해선 안 된다는 말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의해 온 '정책 방향'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자, 그러면 답변과 관련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과 관련해 서울 아파트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따져보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보자.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서울 아파트는 4억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3.9억원 수준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엔 4.4억원 정도였다. 지금의 서울 아파트에 대한 감각으로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수치이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엔 5.8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가을 시점 현재 8억원대 초반으로 가격이 잡혔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9년 3개월간 서울 아파트는 채 2억원이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출범 후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2억 5천만원 가까이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2억원이라는 돈은 평범한 직장인에게 작은 돈이 아니다. 매년 2천만원씩 10년을 모아야 장만할 수 있는 돈이다.

■ 전월세 문제,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양극화, 그리고 실수요자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이제 집 없는 서울 시민, 혹은 아파트를 가지지 못한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 대통령의 발언들을 다시 모아보자.

"대부분의 기간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고요,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서민들의 전월세는 과거에는 미친 전월세였는데, 우리 정부에선 전월세는 안정돼 있지 않습니까? 지금 서울 쪽의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정부가 강도높게 합동조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정부는 여러가지 방안을 갖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잡겠습니다."

우선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들 중 아파트를 욕심 내는 사람들이 많다)은 대부분 기간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상당수 서울 시민들이 폭등한 아파트 값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자화자찬성 발언은 참 듣기가 민망했다.

서울은 한국 인구의 20%가 살고 있는 최대 도시이며, 전국 부동산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곳이다.

또 모두가 알다시피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차이는 더 벌어졌다. 서울과 지방 가격차 확대는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울산 등 일부 지방도시의 집값 하락은 경기가 크게 침체된 데 따른 것이다. 정부의 안정화 노력과는 관계 없었다. 서울과 비서울간의 격차가 자꾸 벌어지는 게 바람직한 현상인가?

대통령이 전세가격 안정을 거론했지만, 향후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매매가와 전세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신호를 잘못 해석하다가 큰 코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세가와 매매가의 상호작용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전세가의 경우 말 그대로 사람이 들어와서 사는 가격, 즉 실사용 가치다. 반면 매매가격엔 실제 사용가치 외에 교환가치가 덧붙여져 있다.

따라서 전세가가 위로 못 오르는 상황에서 매매가격이 크게 오른다면 우선 거품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매가격이 견조하고 전세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오른다면 다르게 해석해야 할 수 있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반 상승하는 때는 견조한 주택가격 상승기다. 최근 전세가가 꿈틀거렸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서울 아파트가 2차 분출의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라고 보고 있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2차 서울 아파트 폭등의 조짐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또 실수요자를 배려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사실 주택 정책과 관련해 각 정부는 쉽게 '실수요자를 위하겠다'는 말을 해왔다. 이와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규제지역 같은 경우엔 대출규제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 바람에 실수요자가 대출을 받는 게 힘들어진 면이 있다고 하셨는데, 실수요자의 주택구입에는 어려움이 없도록 검토하겠습니다."

사실 부동산 시장에서 실수요자와 투자자(혹은 투기꾼)의 구분은 쉽지 않다. 집의 유무, 혹은 집의 갯수만으로 이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더 좋은 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시적 2주택자가 되더라도 투자자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또 전세에 살면서 부동산 투기(투자)를 하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똑 같다. '실수요자'의 대출 편의성 강화를 시도하다가 정책이 일관성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 규제가 공급을 위축시킬 때는 또 다른 왜곡 우려 있어

대통령의 발언 중 '부동산 가격은 어떤 방법으로든 잡겠다'고 한 발언은 또 잘못된 규제책만 내놓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불러 일으켰다.

사실 공급이 동반되지 않는, 혹은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는 계속된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특정한 계급(계층)에게 횡재의 기회를 안겨줄 수도 있다.

지난 9월 30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당시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보겠다.

"분양가상한제로 현금 부자들이 아파트 로또를 맞았습니다. 분양가상한제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가격이 급등한 겁니다. 분양가상한제 발표 후 반포 A단지가 1.8억, 개포 R단지가 2.8억이 올랐어요. 분양가상한제가 사람도 잡고 있습니다. 대신 기존 재건축 조합원들에게는 수억원의 부담이 생겼어요."

경제학자 출신의 이 의원은 분양가상한제만 하면 아파트 가격이 잡힐 것으로 생각하는 이 정부의 수준이 한심하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삼성동 R단지, 역삼동 C단지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어요. 분양만 받으면 5~6억원씩 법니다. 계약금, 중도금 10억 이상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고 있어요. 분양가상한제가 집값을 올렸다는 사실은 지난 40년간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예외없이 집값을 올리고 (부동산 대신) 경제를 잡았습니다. 현금 부자들은 앉아서 5~6억원을 벌었고 재앙이 초래된 것이죠."

분양가상한제로 시세보다 싸게 분양을 받고 이 규제에 따라 공급이 위축되면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분양시장 뿐만 아니라 다른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급을 더욱 왜곡시킬 수도 있다.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할 경우 아파트 공급 위축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규제를 실시할 때는 공급이 위축되지 않게 방어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 정책이 서투르면 투기꾼이나 운 좋은 사람들이 정책을 비웃으면서 이익을 취하는 법이다.

■ 서울 아파트 폭등,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서울 내 아파트 공급'..주택보급율 100%는 쓸모없는 통계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공급을 늘리라'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정부는 경기도 30만호 건설 등을 얘기했다. 서울의 아파트 폭등이 문제라고 할 때 '서울 내 공급'에 대해선 뾰족한 답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지방은 공급이 많았고 서울은 공급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지방 아파트 가격의 안정과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이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볼 수 있다. 한국 부동산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물량을 대거 투하해 버리면 아파트 가격은 안정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문재인 후보를 강력히 지지했던 한 지인은 "정부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사는 일산 시민들과 함께 데모를 하기도 했다.

이 지인은 아주 오래 전 집을 마련할 즈음 일산과 분당 두 신도시 중 일산을 선택한 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만 직장 생활을 했고 서울 입성의 꿈을 끝내 버리지 못하던 지인은 '두 번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젠 일산의 지인이 분노한 대통령의 '무주택자를 위한 부동산 공급 대책' 관련 발언을 살펴보자.

"여전히 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30만호, 3기 신도시 포함해서 공급 물량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요. 특히 주거에 대한 복지 차원이 필요한 신혼부부용 주거 45만호, 청년주거용 75만호, 이런 공급정책들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신혼부부는 시가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구입하거나 공공임대을 얻었다는 그런 식의 좋은 체감 반응이 나타나고 있고요. 청년들의 경우는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는데, 그러나 여러 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자가보유 못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거죠."

우선 서울의 아파트 값 폭등이 문제인데, 대통령은 '경기도에' 물량을 '충분히' 공급한다는 답을 했다. 지인이 '남의 다리 긁는 소리'라고 주장했던 지점이다.

지난해 경기도에 물량이 늘어난다는 정책 발표에 과연 서울 아파트가 안정이 됐는가. 서울의 용산, 강남의 남은 땅,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 등을 활용할 방안을 찾지 않고 경기도를 통해 해결하려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주택보급율이란 통계는 사실상 별 필요가 없다. 자연공실율이 10% 이상 돼야 정상적인 매매가 이뤄진다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이 직장을 옮겨 다닐 때는 늘 마찰적 실업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집을 사고 파는 데도 여유분이 있어야 한다.

뭉뚱그린 주택보급율 100% 통계는 실상을 왜곡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이 많이 있는지 여부지만, 모든 주택을 다 더해서 가구수보다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공실율이 얼마다라고 말해주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어리석은 정부..문제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인데..

글의 서두에서 예로 든 지인 A씨와 B씨는 서울의 '좋은 아파트'를 원한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해서 많은 물량이 공급된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공급은 부족하고 그마저도 A씨나 B씨가 원하는 공급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아파트, 좋은 아파트에 살기를 원하는데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는다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백반을 먹고 싶은데, 왜 자꾸 라면이 잔뜩 쌓여 있다는 말만 하는가.

공급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공급해야 한다. 서울 시민의 거주 형태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정부는 수도권 30만호(3기 신도시), 신혼부부용 45만호, 청년주거용 75만호와 같은 얘기나 160만호의 공급이 예비돼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를 들이밀면서 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 정부의 태도는 석연치 않다.

서울의 아파트 값이 오른 것은 서울에 양질의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에도 못 미치는 물량을 공급하면서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란 전용면적 84㎡라 이하의 아파트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평범한' 주택은 이런 수준이다.

84㎡는 전용면적 25.7평으로 공급면적 기준 33~36평의 아파트를 말한다. 60~83㎡는 전용면적 19~24평으로 공급면적 기준 29~32평 아파트다. 59㎡는 전용면적 18평 남짓으로 공급면적 기준으로 약 23~28평 아파트를 의미한다.

최근 문제가 된 아파트는 전용 59㎡나 84㎡, 혹은 더 넓은 100㎡ 크기의 물량들이었다. 이런 물건들이 부족한 데 정부는 예컨대 39㎡ 이하의 주택을 공급하면서 상당한 공급이 이뤄진다는 식의 얘기를 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공적 임대주택이나 희망타운 모두 크기가 작다. 사람들이 84㎡를 원하는데 자꾸만 작은 평수만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 예컨대 신혼부부라고 '차별'하면서 39㎡에 살라고 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신혼 부부는 가족을 늘려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마치 '좁은 집'만 원하는 것처럼 마음 대로 가정해서 정책을 펴는 것은 상황을 오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청년 1인가구를 위한 물량을 공급한다면서 신도시의 아파트 용지에 원룸을 공급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일하는 청년이 멀리까지 가서 좁은 원룸을 살도록 하는 게 맞는 정책인지 모르겠다. 서울시의 상업용지 등을 이용해서도 청년을 위한 원룸 공급은 가능하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작은 평수로만 공급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신혼부부에게 인심 쓰는 것처럼 말 하지만, 좋지 않은 물건만 공급하려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저출산 문제가 해결 되겠는가.

신혼부부는 가족을 늘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3~4인용 주택이 필요하며, 전용 59㎡ 이상을 공급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보자.

"기존의 주택정책은 4인 가구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요즘은 1인 가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1인 가구 비중이 30% 정도 됐습니다. (그에 맞는 물량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1인 가구용 물건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지면 더 큰 평형을 원한다. 신혼부부도 언제까지나 신혼부부로 남아 있지도 않는다. 그들이 작은 평형에서 더 잘 견디는 뛰어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 부동산,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198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진실을 흥미롭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영화엔 '애정 없는 완벽한' 부부, 아내 몰래 처제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 남편의 비리를 밝히는 남편의 친구, 그리고 진실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듯하지만, 진실은 은폐돼 있다. 비밀 혹은 진실은 비디오테이프라는 저장 장치에 담겨 있다.

인터넷에서 '국민과의 대화' 방송 녹화본을 구해 보면서 오래 전 이 영화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다시 느껴졌다.

대통령의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보이는 부동산 정책 홍보와 자신감, 이를 위선이라고 느끼는 많은 서울 시민들, 그리고 진실의 박스인 비디오테이프를 찾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또 다른 불안도 엄습한다. 아파트를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엔 혹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제 평균 10억 이상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사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반면 이미 폭등해 버린 뒤 꼭지를 잡는 것 아닌가 하는 또 다른 불안도 있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증권사 객장에 아이 업은 엄마, 농부 등이 나타나면 끝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건이 좋지 못한 젊은 사람들마저 서울 아파트 투기 위엔 답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폭등, 그리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이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중대한 실책이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꿈을 뺏은 뒤 모두가 '카지노판 딜러'가 되라고 종용하는 정책은 낙제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그리고 성실한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평범하고 소중한 가치는 서울 아파트 폭등으로 이미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정부는 '자신 있다'고 말한다. 이미 큰 판이 한번 돌았는데, 뭘 자신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 자신감이 미래의 집값 안정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반사회성, 혹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근거없는 용기와 같은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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