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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5(월)

석유화학 구조조정 돌입…에쓰오일 ‘시한폭탄' 터지나

기사입력 : 2025-08-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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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대산·울산 치열한 생존 경쟁
에틸렌 370만t 감축 등 구조조정
에쓰오일 “샤힌 가동 180만t 추가”
중국발 증설 이어 공급과잉 우려

석유화학 구조조정 돌입…에쓰오일 ‘시한폭탄' 터지나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지난 21일 발표된 석유화학 구조개편안은 ‘기업이 자구책을 내놓으면 정부도 지원한다’로 요약된다.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제품 나프타 분해시설(NCC)을 최대 25% 감축하면, 정부가 금융지원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일단 국내 업계는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편안이 실제 자구책 마련에 속도를 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기업들이 이미 2~3년 전부터 NCC 가동 중단 등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획기적’이라 부를 만큼 의미부여는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대단위 석화단지가 합작투자를 통해 운영되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점이 대책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

호황 땐 문제 없던 합작사, 불황 오니...
전남 여수 산업단지에는 국내 3대 NCC 업체 LG화학·롯데케미칼·여천NCC가 모두 모여있다. 국내 에틸렌 총생산능력 가운데 49%인 627만톤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갖춘 최대 석유화학 산단이다.

여수산단 내 가장 큰 규모로 운영 중인 업체가 여천NCC다. 에틸렌 229만톤, 프로필렌 129만톤 생산능력을 갖췄다. 최근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 직면하며 업계 긴장감을 키웠다.

여천NCC 위기는 이 회사 지분을 50%씩 보유한 대주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서로 충돌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여천NCC는 2021년 4분기부터 2025년 2분기까지 1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현금보유량은 이미 2023년부터 바닥이 났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330%까지 치솟자 한화·DL에 지원을 요청했고, 올해 3월 한화·DL이 각각 1000억원씩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천NCC가 6월에도 1500억원씩 총 3000억원 자금을 추가로 요청하자 대주주 간 갈등이 본격화했다.

한화는 자금 대여를 승인했지만, DL이 추가 자금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해욱닫기이해욱기사 모아보기 DL 회장은 지난달 말 “디폴트에 빠져도 답이 없는 회사에 돈을 넣을 수 없다”고 발언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DL이 2주 만에 입장을 바꿔 추가 자금 대여를 결정했지만, 갈등 불씨는 여전하다는 게 업계 전반 평가다. 두 그룹이 여천NCC 원료공급계약을 두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원 방식이 유상증자가 아닌 자금 대여라는 점도 미봉책”이라며 “업황 반등 기대감이 낮은 상황에서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천NCC는 합작회사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특히 호황일 때 과도한 배당과 무리한 투자를 진행한 것이 재무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여천NCC는 2017~2021년 5년간 총 2조700억원 배당금을 지급했다. 2019년에는 약 9000억원 수준 신규 투자도 결정하며 재무부담을 키웠다.

롯데·HD현대는 구조조정 속도?
충남 대산 산업단지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NCC 통폐합을 논의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에 넘기고, HD현대가 현금 또는 현물을 추가 출자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롯데·HD현대는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평가다. 정유 사업도 하는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프타로 자체 NCC를 통해 추가적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 이미 2014년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NCC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운영하고 있다. HD현대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6대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3년째 이어진 적자에 지난해 에셋라이트(자산경량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주요 매각 대상은 NCC를 포함한 기초화학 부문이다. 70%에 이르는 기초화학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다.

지난해 롯데케미칼 유동성 이슈가 발생했을 때 롯데그룹이 직접 나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할 만큼 재무 위기 해소가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다.

HD현대와 롯데케미칼도 통폐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HD현대는 지난달 31일 실적발표에서 “롯데케미칼과 설비 통합은 다양한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롯데케미칼은 이달 8일 “일반적으로 NCC 통합은 의미 있는 현금흐름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9조 유치 샤힌 프로젝트, 시한폭탄 되나?
울산 산단에서는 SK이노베이션 계열사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SK 측이 대한유화에 대해 흡수합병, 설비 통합 운영 등을 제안했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현재 울산에서는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한순간에 벼랑으로 몰 수도 있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에쓰오일(S-OIL)이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함께 9조원을 투입해 정유·석유화학 통합설비를 짓는 ‘샤힌 프로젝트’다.

내년 준공을 앞둔 샤힌 프로젝트는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180만톤으로, 대한유화(90만톤)와 SK지오센트릭(66만톤)을 합친 것보다 크다.

에쓰오일이 다른 국내 석화 설비 인수가 아닌 신설 투자를 선택한 이유는 신기술 도입을 위해서다.

기존 NCC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남는 부산물을 기반으로 화학제품을 생산하지만, 에쓰오일 프로젝트는 원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기술(TC2C)을 도입한다. 아람코 원천기술로 기존 설비보다 원료 수율이 3배 이상 높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경우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 공급 과잉 문제가 현재보다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아람코 원유 원가 경쟁력까지 더해져 기존 업체들보다 확실한 경쟁 우위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석유화학 업계는 샤힌 프로젝트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요 10개 석화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위해 최대 370만톤 규모 에틸렌 생산량 감축하겠다는 자구책에 합의해지만, 에쓰오일은 오히려 180만톤 생산능력을 추가하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발 증설로 글로벌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상황에서 국내에서조차 신규 물량이 쏟아진다면 가격 하락 압박으로 인해, 기존 업체들의 경영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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