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주주환원 탓에 '한국 주식은 사는 게 아니다', '믿을 수 있는 미장(美場)으로 간다'는 자조적 표현까지 나오는 실정 속에서 한국증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해묵은 고질병을 풀어야만 하는 과제에 봉착해 있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상황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원인을 쫓아가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도통 풀어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실제, 이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대전제는 상장사의 자율적 참여다. 상장기업은 강제력 없이 기업 특성에 맞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시장과 소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2월 처음 공개된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안에 대해 일각에선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물론, 강력한 추진 동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생각해보면, 인센티브에 따라 기업 스스로 주주환원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하는 정공법이 장기적으로 더욱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증시의 주주환원율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오랜기간 지속돼 왔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환원은 기업의 재량이나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거수기라는 멸칭(蔑稱)을 받는 이사회의 변화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한국 증시에서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CEO(최고경영자)가 아니어도, 최대주주라면 회사 경영을 마음대로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관념이 지배하는데 이것이 문제다"고 꼬집었다. 기업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밸류업 프로그램 후속 조치들을 통해 이 같은 변화기조에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3월 연기금, 기관 등 수탁자들의 책임 이행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개정에 나섰다. 개정 가이드라인은 '투자대상회사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시행·소통하고 있는 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명시토록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 개정은 지난 2017년 도입 이후 7년 만이다.
올해 상반기로 예고된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오는 5월까지 최대한 일정을 앞당겨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대비 훨씬 더 구체적인 안이 나올 것으로 시장은 기대한다.
기업, 정부, 그리고 다음은 투자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법/제도 개선은 물론 기업의 인식과 관행의 개선, 그리고 투자자의 적극적 역할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속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잘못하면 되돌아 가야 된다. 실제, 많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100미터 달리기보다, 마라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증시가 양적 성장을 넘어서 질적 성장을 이뤄나가길 기대해 본다.
정선은 한국금융신문 기자 bravebamb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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