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산업에 대해 윤석열(尹錫悅)정부가 대대적인 구조 개편에 나설 태세다. 은행들이 과점(寡占) 체제를 이용해 서민과 소상공인(小商工人)들로부터 막대한 대출이자를 챙겨 자신들의 돈 잔치를 했다는 뉴스가 여론의 공분(公憤)을 샀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금융 실세이자 군기반장(軍紀班長)을 자처하는 이복현 원장의 한마디는 은행과 금융지주사엔 사실상 법이나 마찬가지다. 피감기관(被監機關) 은행 입장에서는 사정 칼자루를 쥔 금융당국 수장의 으름장이 결코 가벼울리 없어서다.
이복현 원장의 최근 행보(行步)가 새로운 관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대통령의 '은행업 과점 체제' 지적 이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과 내부통제(內部統制) 개선은 물론 이사회 직접 개입까지 가능해야 한다는 식으로 내달린다.
경영방식에 이어 이제는 금융시장 판도도 바꾸려 하고 있다. 대통령 한마디에 이복현 원장은 신규 플레이어 유입으로 기존 과점 체제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메기'를 풀어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이복현 원장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스몰라이선스와 챌린저 뱅크 도입안은 강력한 의지를 엿보이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적폐인 지금의 과점 체제는 외환위기(外換危機)와 글로벌 금융위기(金融危機)를 거치면서 은행 산업 경쟁력과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정부 주도로 부실 은행들을 통폐합(統廢合)해 육성한 결과다. 그때는 합쳐놓고 돈 잔치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다시 쪼개 늘리자는 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금융산업 재편(再編)은 그렇게 뚝딱 진행될 일이 아니다. 구조 개편은 단순히 돈 잔치 해법(解法)이 아니라 은행 산업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긴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같은 마구잡이식 때려잡기라면 새로운 관치라는 비판의 목소리만 커질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신관치(新官治)가 아닌 시스템 정비가 우선이다. 예대금리와 가산금리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금리 담합 등 시장 지배적(支配力) 행위를 꼼꼼하게 규제해야 한다. 공적 역할에 걸맞은 사회공헌(社會貢獻)을 할 수 있는 길도 제도화해야 한다.
은행이 고작 담보대출(擔保貸出)이나 하며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밖에 없는 맥락(脈絡)이 있다. 한국은 세계 7대 경제 대국이지만 해외에서 자국(自國) 은행이 없어 프로젝트 수주가 어렵다. 그 결과 외국은행이 모두 프로젝트를 받아가게 된다.
우리나라 은행이 자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덩치만 커졌을 뿐 선진화된 금융이나 수익구조의 변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수조 원의 은행 이익은 대부분 담보 잡는 이자 장사에서 나왔다.
정보통신(情報通信) 기술 발달 덕에 적정 규모가 커져 이익잉여금(利益剩餘金)이 늘어난 부분도 있지만 시중은행이 글로벌 은행처럼 IB나 인수금융에서 돈을 벌었다고 보기 어렵다.
숫자를 늘리는 경쟁이 아닌 효율적 경쟁 방안을 지혜롭게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은행권이 사회의 고통 분담과 공공성(公共性) 수행 요구를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선진 금융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다. 수익성만 따지다 보니 어느새 은행은 수조 원 움켜쥔 밉상이 된 것도 맞다. 하지만 공공성만 강조하다 보면 안정성(安定性)이 흔들린다. 금융당국 역할은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 균형을 잘 잡아주는 감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복현 원장 역시 전 근대적 관치(官治)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과도한 경영 개입은 자제하고, 규제완화(規制緩和)와 합리적 감독을 통해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은행의 바람직한 역할 정립에 힘써야 한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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