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피츠버그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도로와 다리, 5세대 통신망 등에 투자하는 대규모 계획을 공개했다.
미국 재건(Build Back Better)을 위한 바이든의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은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바이든의 재건 프로그램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1단계는 이번에 발표된 아메리칸 잡 플랜(American Jobs Plan)이다. 인프라 시설 개선, 기후 대응 강화 등 물적 인프라(Physical Infrastructure)가 골자를 이룬다.
2단계는 아메리칸 패밀리 플랜(American Families Plan)이다. 일자리와 보육, 헬스케어 등 인적 인프라(Human infrastructure)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플랜은 수 주후에 다시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가에선 이 규모가 1조~1.2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인프라 투자와 세금 인상
또 제조업 부흥을 위한 지원 3,000억 달러, 클린식수·청정전력 2,110억 달러, 부동산 접근성 확대 2,130억 달러, R&D 투자강화 1,800억 달러, 1,000억 달러, 노동력 강화 1,000억 달러, 학교·보건·보육 1,250억 달러 투자가 준비됐다.
2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지출은 10년에 걸쳐 이뤄지며 재원조달은 세금 등으로 이뤄진다.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인상(21→28%), 글로벌 무형자산소득 최저한세(GILTI) 인상(10.5→21%), 법인 장부소득(book income) 최저한세(15%) 적용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 바이든, 일단 빅테크 기업들에게 위협구
이번 플랜은 그 이름(American Jobs Plan)에서 보듯이 고용 창출력이 큰 제조업과 보건 서비스업 등을 지원한다. 대신 빅테크들은 다소 긴장해야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1일 연설에서 거대 상거래·IT 기업인 아마존의 세금 회피 문제를 비판하면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향후 정책에 따라 기업들의 희비가 갈릴 것이란 시각도 보인다.
하건형·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정책에 따라 향후 산업별, 기업규모별로 유불리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제조업, 중소기업은 긍정적인 반면 IT 서비스업, 대기업에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아마존 등 기대기업, 다국적 기업들이 조세 회피처를 이용해 각종 세금 공제 혜택을 누렸던 만큼 IT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빅테크들은 유효법인세율 상승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 바이든 '기술의 미국' 재건 공언…중국 견제와 MADE IN AMERICA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촉구하면서 연구개발을 대대적으로 늘려 명실상부한 세계 1등국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바이든은 또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다짐하면서 국산품 애용도 강조했다. 세금을 회피하는 다국적 기업의 납세를 촉구하면서 자국 생산 제품(Made In America)에 대한 공제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 유인을 키울 수도 있다.
바이든은 "수십년 전 미국은 GDP의 2%를 연구개발에 썼다"면서 "지금은 1%도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연구개발에 대한 공적인 투자가 지난 25년간 줄곧 감소해온 나라였으며, 이 때문에 뒤쳐졌다고 했다. 세계가 점점 미국을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미국이 배터리, 바이오, 컴퓨터칩, 클린 에너지 등을 주도해 나가면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정책방향은 상당히 중요하다.
■ 고용 강조하면서 중산층 복원 약속한 바이든
지난 3월 기준 미국의 모든 고용자수는 팬데믹 사태 이전에 비해 8~9백만명 가량 줄어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영구 실업자 발생 등으로 전염병 이전으로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인프라 대책이 고용 확충 프로젝트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일자리 투자"라며 "수백만개의 일자리,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이 계획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미국을 더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들고 우리의 안보 이익을 촉진할 것"이라며 "아울러 향후 수년간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를 이기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쉽지 않은 정치 프로세스와 경제적 영향
미국 금융사들은 코로나에 대항하는 경기 부양책인 'American rescue plan' 입법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당이 통 크게 합의해 처리하기보다는 조정 절차로 진행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다.
국제금융센터는 "민주, 공화 합의를 통해 8월 휴회 이전에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2022 회계연도 예산안과 결부된 조정법안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센터는 "2022년 회계연도 예산안 상정시 2단계 투자안과 함께 조정법안으로 부의될 소지도 거론된다"면서 "필리버스트 룰 폐지 혹은 개정이나 조정절차 개선 등의 방안도 제기되고 있으나 역풍 가능성도 있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아울러 공화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만큼 투자 규모가 조정될 수 있으며 경제적인 영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을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설에서 "리딩 이코노미스트들은 이제 올해 우리 경제가 6%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올해 아동빈곤율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지금은 재건에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미국 성장률이 올해 7%를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은 가운데 일단 단기적으로 지나친 기대보다는 중장기적인 생산성, 잠재성장률 향상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관점들도 제시된다.
국금센터는 "입법과정에서의 규모 조정 가능성, 8년에 걸친 분산 지출, 수요가 아닌 공급측면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어 단기 부양효과는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생산성 및 잠재성장률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1단계 투자계획에 따른 연간 투자는 2,500억 달러(GDP 1.1%)이고 법인세는 연1,250억 달러 증가하기 때문에 순지출 규모는 연 1,250억 달러, 즉 GDP의 0.5%라고 분석했다. 인프라 투자가 지속될 8년차까지는 순부양효과가 기대할 수 있으나 9~15년차엔 연 1,250억달러의 법인세 증가가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이 단기적으로 더 적극성을 띈다면 경기부양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점도 제시된다.
JP모간은 1단계 투자계획이 2조 달러로 통과될 경우 약 6조달러 수준인 정부 고정자산의 30%에 해당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 채권시장, 국채발행과 경기회복 강도 주시…시장은 안심할 수 있을까
바이든 정부가 지난 번 1.9조달러 경기 부양책에 이어 이번에 2.2조 달러의 신규 부양책을 내놓은 가운데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원도 큰 관심사다.
일단 재정 적자는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일부 보전을 할 계획이다. 이번 계획에 따라 지출은 8년 동안 사용되고 비용 충당은 15년에 걸쳐 이루어질 예정이다.
하건형·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증세를 할 경우 15년 내에 2.2 조 달러 규모의 신규 재정적자 보전이 가능할 것"이라며 "연평균 1,500 억달러의 수입이 확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 우려하던 수준의 적자 확대는 면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규모가 축소될 여지도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재정 부양책이 제시될 때마다 펀더멘탈 개선뿐만 아니라 국채 수급 부담 등에 시장금리 상방 압력이 부상할 수 있으나 이번엔 증세가 동반돼 국채 발행 부담이 미미하다"면서 "초기 8년 연평균 재정적자 추가가 1,250 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9조달러 1단계 재정 부양책과 달리 이번에는 예산조정 절차를 통한 민주당의 단독 처리가 불가능하다"면서 "공화당 합의가 필요하나 현재 증세에 반대하고 있어 통과 시기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가 되고 규모 역시 감축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바이든 표 2차 경기부양책이 나왔지만, 증세까지 동시에 발표해 수급 부담에 따른 금리 상승 압력은 완화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부채 증가를 과소 평가할 수 없고 경기가 반등하는 가운데 적극적인 부양책이 따라 나올 수 밖에 없어 이자율 시장이 안심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보인다.
다른 증권사 딜러는 "올해 미국 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물가도 한 단계 더 뛰어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예상보다 부양 규모가 적다든지, 세금을 늘리기 때문에 수급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 크게 무게를 두면서 접근하기도 어렵다"면서 "미국 시장 역시 경계감을 나타내면서 금리가 1.75%를 향해 다시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증세로 재원 마련을 하더라도 상당히 긴 기간 동안 빚을 내서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게 바이든의 전략"이라며 "재정사정은 나빠질 수 밖에 없으며, 금리도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 관게자는 "바이든표 뉴딜은 고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3월 고용지표가 개선되면 통화정책 정상화 압력이 보다 커질 것"이라며 "세금 악재가 있지만, 주식까지 경기 부양기대로 상승 흐름을 이어간다면 채권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주식시장, 바이든 정책 수혜주 등 관심…세금 문제도 계속 지켜봐야
2주 전 통과된 1.9조 달러 부양책과 이번 부양책엔 큰 차이가 있다. 또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의 정책과 이번에 발표된 정책의 성격은 다르다.
코로나 국면에서 5차에 걸친 부양책은 가계 소득 지원을 통한 구매력 강화에 초점을 뒀다. 즉 소비를 늘리는 목적이 컸다.
반면 이번 대책은 대규모 토목공사가 동반되는 등 각종 인프라 구축에 방점이 찍혀 있다.
통신 인프라나 제조업 강화, 연구개발 확대, 첨단기술 경쟁력 강화, 에너지 전환 등이 강조됐다. 즉 이번 정책은 산업 차원의 접근 성격이 강하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대책은 즉각적인 부양 효과를 위한 소비 지출이 요구됐던 지난 날과 달리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올라왔음을 의미한다"면서 "인프라 투자, 미래 기술과 산업 등 플러스 알파를 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바이든이 중국을 이기겠다고 했다. 인프라, 토목에 관한 부양책이면 시클리컬 업종의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미국 시장에서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상승한 점은 중국과의 첨단산업, 제조업 경쟁, 그 속에서 반도체 굴기를 표명한 미국의 의지가 재확인된 결과"라며 "미국 입장에서 내수와 대외 정책은 불가분의 관계임이 증명된다"고 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선 올해 경제회복 전망을 반영한 경기민감주의 선전이 이어졌다. 아울러 인프라 투자 기대감을 이미 주가에 반영한 측면도 크다. 주요 산업재 종목은 올해 시장 대비 큰 폭으로 아웃퍼폼하고 있다.
김재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그러나 "산업재 섹터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상승 모멘텀 혜택을 얻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투자안 발표와 향후 진행에 따른 본격적인 실적 반영은 추가적인 주가 상승 요인"이라고 밝혔다.
인프라 투자안 중에서 도로, 교량, 철도 등 육상교통 재건 투자 규모는 기존 투자규모 대비 큰 폭으로 증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450억 달러에서 약 600억 달러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봤다.
그는 건설 장비 1위 사업자인 캐터필라(CAT), 장비렌탈 1위 유나이티드 렌탈(URI), 골재, 아스팔트 등 건축자재 대표 제조사 불칸 머티리얼즈(VMC), 미국 대표 철도운송 회사인 유니온 퍼시픽(UNP), 북미 조강 생산량 1위 사업자인 뉴코(NUE) 등이 추가적으로 수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세율 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따라 채권시장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역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 문제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안영진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 당시 35%에서 21%로 법인세율을 내리면서 상장기업들의 EPS가 14% 가량 낮아지는 효과를 경험했다"면서 "21%에서 28%로 인상하는 경우 9% 가량의 EPS 감소 효과가 예상돼 주식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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