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인상파 화가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드가, 마네, 피사로, 시슬레의 7인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동 시대에서 모네, 르누아르와 대등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상파 화가로 카유보트가 있다.
모네의 수련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알려져 있고 미술사가들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었다, 국립 미술과 전시회에서도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 끌만큼 유명한 그림이다.
몇 세기에 걸쳐 수많은 철학자와 화가, 심리학자 등이 美와 인기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모네와 카유보트의 작품에만 초점을 맞추어 색감 처리라든가 붓 터치만 들고파서는 똑 같은 재능을 가졌는데 한 사람은 유명해지고 한 사람은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1848년에 파리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 법조인에서 엔지니어로 방향을 틀었다가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던 중 자신에게 화가로서의 재능과 열정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1875년에 파리 미술아카데미에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출품했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비쳐 드는 가운데 상체를 드러낸 사내들이 텅 빈 방안에 깔린 짙은 갈색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깎아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한 비평가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누드를 그리려면 아름답게 그려라. 아름답게 그리지 않으려면 아예 그리지 마라”.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고집쟁이’라 불렸고 카유보트 자신도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자신이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안 카유보트는 그때까지 수집한 70여점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며 이를 국립 미술관에 전시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고, 1894년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증 목록에는 모네의 유화 작품 16점, 르누아르 작품 8점, 드가 작품 8점, 세잔 작품 5점, 마네 작품 4점, 피사로 작품 18점, 시슬레 작품 9점 등이 포함돼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카유보트가 생전에 수집한 이들 작품은 수십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 비평가와 유력 정치인을 포함한 엘리트 계층은 너저분한 개인 소장품을 국립 미술관에 내건다면 국립 미술관의 ‘도덕적 해이’라고 주장하였고 미술대학 에콜 데브자르의 일부 교수는 교수직 사퇴를 불사하고 전시에 반대를 했다.
카유보트의 유언을 지켜주고 싶었던 유가족과 정부간에 줄다리기 끝에 르누아르의 중재로 정부가 절반만 받기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1879년에 결국 이들의 작품이 뤽상부르 박물관의 신축 전시실에 걸렸다. 유럽 전체에서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국립 미술관에 전시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비난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작품을 보겠다고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상파 화가 작품을 둘러싼 오랜 실랑이가 오히려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모은 것이다.
사람들은 친숙한 것에 이끌린다
그로부터 1세기가 흐른 뒤 코넬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커팅은 수백권의 책에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15,000점 이상이 등장하지만 카유보트가 지원한 단 7명의 화가가 다른 화가들보다 훨씬 더 많이 거론된 사실을 발견했다.
7명 화가의 그림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이 덜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학생 들에게 7인의 화가 그림과 동 시대에 활약한 무명 화가의 그림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7인의 화가 그림을 1번 보여줄 때 무명화가의 그림은 4번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151명의 학생에게 51쌍의 그림을 보여주고 선택을 했더니 학생들은 덜 유명한 화가 그림 41쌍을 선택하였다.
무명작품이 반복 노출이라는 ‘마법’에 걸리자 유명 작품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카유보트가 유명하지 않은 것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출’이라는 선물을 그의 인상파 친구 7인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성공한 CEO의 네트워크 관리를 지원하면서 경험한 공통적인 사항은 관계를 맺은 사람에 대해서는 당장 현안이 없더라고 꾸준히 안부를 전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3년 동안 연락이 없으면 서로 잊혀지지만 1년에 한번씩이라도 식사를 같이 한다면 신뢰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좋은 정보도 교환하고 꾸준한 협력관계가 유지 될 수 있다.
성공해서 인맥이 많은 것이 아니라 평소에 좋은 인간관계가 사라지지 않게 노력 한 결과 성공의 기회도 더 많아 진 것이다.
인용자료: 히트 메이커스 / 데릭 톰슨 저
윤형돈 FT인맥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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