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의 혼선
하지만 정작 당정 협의를 거쳐 발의된 것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었다. 이낙연 대표의 법 제정 공언은 사전에 당론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었고 정부와의 협의도 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발언 후에 검토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잉입법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특히 인허가 기관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물린다는 부분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방향을 잡았던 여당은 이후 다시 흔들리게 된다. 우선 민주당이 산안법 개정으로 가닥을 잡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산업안전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형사 처벌하는 내용이 빠진 채 산안법 개정안이 이뤄지면 산업재해를 막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산안법과 재해기업처벌법
산안법 개정안은 기업 대표이사에게 중대 재해 발생 대책과 근로감독 지적사항에 대한 확인의의무를 지우고 있다. 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사업주 형량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정했다.
산안법 개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가장 큰 차이는 안전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에 있다. 산안법 개정안이 사업주에게 근로감독 지적사항에 대한 확인의 의무를 지우는 수준인 데 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입증의 책임을 원청 경영자와 기업 법인에 부여했다. 사고 발생 시 원청 경영자가 자신의 안전의무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처벌 수위는 '하한선'을 두어 처벌이 명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했다. 물론 정의당이 내놓은 법안과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도 이름은 같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지만 내용은 약간 다르다. 정의당이 내놓은 법안은 사업주가 안전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천만 원 이상 10억 원 이하 벌금',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 원 이상 벌금'이다. 법인에 대해서는 '1억 원 이상 2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도 포함됐다. 정의당 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3~10배로 정했고, 민주당 안은 5배로 정했다. 다만 민주당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4년간 적용을 유예하도록 했다.
당론 결정하지 못하는 여당
사실 여당이 더 곤혹스러워진 것은 여론의 향배보다는 야당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공감을 표하면서 민주당은 산안법 개정안을 밀고 가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법안을 민주노총과 함께 발의한 정의당과 협력하기로 했다. 결국, 난처해진 여당은 산안법 개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사이에서 아예 당론을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낙연 대표는 산안법 개정안까지 포함해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한 뒤 당의 방침을 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산안법 개정안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과징금 부과가 산재예방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란 취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물론 기업 부담을 높일 것을 우려한 재계의 의견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재계는 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원하청에 공동책임을 지우거나 최고경영자를 형사 처벌하는 내용은 과잉입법이자 일종의 보복 입법이라고 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정의당의 국회 1호 법안이다. 국회 청원제도에 따라 248개 시민단체가 10만 명 이상 시민들의 동의를 받아 제안돼 상임위에 곧장 회부된 법안이기도 하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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