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해외금리연계 DLF 투자손실(6명)에 대해 40~80%의 배상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분조위는 이번 DLF 사태에 따른 피해에 대해 과거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책임을 물었다.
분조위는 "그간 불완전판매 분쟁조정의 경우 영업점 직원의 위반행위를 기준으로 배상비율을 결정했지만 이번 분쟁조정은 본점 차원의 과도한 수익추구 영업전략과 내부통제 부실이 대규모 불완전판매로 이어져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점이 배상비율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 불완전 판매..'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부적합한 상품을 팔거나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했을 때는 불완전 판매 논란이 일곤 한다.
은행 등 금융사는 투자자의 '손실 감내 수준'을 확인한 뒤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 DLF 가입이 결정되면 은행직원이 서류상 투자자성향을 '공격투자형' 등으로 임의작성해 적합성 원칙에 문제가 있었다.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들이 고객의 투자목적, 투자경험, 투자기간, 위험선호 정도 등을 파악해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모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적합성 원칙 배제'가 가능하지만, 금융당국은 대법원이 자본시장법 제정 이전부터 적합성 원칙을 판례를 통해 인정해왔다는 점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분조위는 또 위험이 높은 상품을 팔면서 '손실확률 0%', '안전한 상품' 등으로 강조할 뿐 '원금전액 손실 가능성' 등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설명의무'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설명의무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이 투자를 권유할 때 상품의 내용, 위험성, 투자성과 등에 대해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설명책임에 대해 '상품의 특성, 위험성 뿐만아니라 고객의 투자경험과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해야 한다"고 본다.
분조위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본사에서 판매 직원들에게 제대로된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판매 독려만 했을 뿐 직원교육 등에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손해배상비율이 과거보다 올라갔다.
지난 2014년 7월 동양증권의 CP·회사채 불완전판매 등 기존 분쟁조정 사례 때처럼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30%의 룰을 적용하지만, '내부통제 부실책임 등'(20%)과 '초고위험상품 특성'(5%) 등 25%를 가산하고 은행의 책임가중사유, 투자자의 자기책임사유 등을 감안해 배상비율을 산정하기로 한 것이다.
즉 손해배상비율은 기본배상비율(30%)에 내부통제 부실책임 등(25%)을 거한 뒤 가감조정을 거치는 형태다.
■ 은행 손실 제한적..다른 상품, ELS 판매 등에 대한 영향 불가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독일국채, 영ㆍ미 CMS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해서 만든 DLF의 전체 판매액은 각각 4,012억원, 3,938억원이었다.
9월 25일 기준 중도환매, 만기상환으로 손실이 확정된 금액은 각각 471억원, 746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9~10월 금리가 급락할 때의 물량은 만기가 도래했으며, 앞으로 만기가 돌아올 물량은 현재 시장금리가 올라와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감원에서 11월 8일 예상한 손실률과 평균 배상률 65%를 가정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잔여금액에 대한 충당금 적립액은 각각 389억원, 456억원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김도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별 전체 가중평균 배상비율은 50% 내외일 것"이라며 "배상금액은 금융지주 연간 이익의 2~5%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투자자 보호 강화 분위기 속에 파생결합상품 등 원금손실 우려가 큰 금융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수 있다. 즉 투자자는 이런 상품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평가해 접근을 꺼릴 수 있고 은행은 당국의 규제로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선 안 그래도 저금리 때문에 팔 상품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상품 구색을 갖추기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은행들의 '다양한 수익성 확보 전략'과도 관계가 컸다. 수수료 수익 확대 등의 목표를 내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다시 우리은행은 KPI(핵심성과지표) 지표를 크게 개선하는 쪽으로 손을 봐야 했다.
이 사태가 은행 영업을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게 만들 수 있다. 저금리 시대 이후 국민 금융상품으로 각광받았던 ELS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혜진 연구원 "은행권 전체적으로 2019년 11월 기준 판매액 50조원을 상회하는 ELS 판매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점증됨에 따라 은행의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감소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수수료 감소 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자체가 다양화되지 않은 가운데 그 동안 수수료 기여 비중이 컸던 일부 고위험상품군에 대한 판매가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이번 사태가 터진 뒤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조치가 더욱 강화될 경우 DLS 발행시장이 위축돼 증권사들의 여전채 운용한도 축소로 인한 투자 수요가 감소 가능성도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 8월 이후 DLF 손실 우려로 인한 여전채 급매도가 출현해 크레딧 채권의 수급 부담이 가중되기도 했다. 다만 현재는 이미 악재가 상당히 반영돼 있는 측면도 있다.
이혁재 DB금투 연구원은 "스프레드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채 수급 우려는 이미 DLS 사태가 불거졌던 9~10월 일정부분 선반영된 측면도 있다. 향후 그 영향은 더 줄어들 것"이라며 "파생금융상품 이슈에 따른 여전채 수요 감소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파생결합증권 잔액은 117.4조원(ELS 76조, DLS 41.4조) 수준"이라며 "이는 채권 현물로 헤지되며, 이 가운데 여전채 비중은 16.7%(13.6조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현실적으로 완벽하기 어려워..규제만 강화한다면 금융상품 위축
은행 등을 방문해 상품에 가입할 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판매 담당 직원이 상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고객들 중엔 형식적이고 지루한 설명을 건너뛰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은행 대출상품에 가입했던 A씨는 "온갖 서류 다 읽고 확인했다는 내용에 서명하려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형식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니, 은행 직원이나 고객 모두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A씨는 DLF 사태와 관련, 은행 직원이나 투자자 모두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완벽한 이해'를 전제로 상품을 팔게 한다면 복잡한 상품은 발매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사태로 은행이 입을 손실은 제한적이지만 향후 복잡한 상품 판매 위축 등이 나타나거나 ELS나 DLS처럼 주가,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다.
아울러 이번 보상에 정서적인 요인이 많이 감안됐다면서 규제 강화가 가져올 금융 위축을 우려하는 시각들도 있다.
은행과 증권사 모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B씨는 "분명 이번 사태는 은행들의 잘못이 컸지만, 고객도 책임이 있다"면서 "금감원이 치매 고객의 예를 들었는데, 너무 특수한 케이스를 부각시킨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비슷한 사태와 비교할 때 보상 비중이 상당히 높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은행원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위험이 0%라고 했겠느냐.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유사 사태와 비교할 때 상품 가입 고객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또 특정 금융상품을 중심으로 사고간 난 뒤 규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후진적인 관치금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들도 있다.
그간 이번 DLF 사태를 규제 강화의 계기로 삼는다면 사모 펀드 등이 더욱 위축돼 금융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나오곤 했다.
한편 여당 쪽에선 금통위원을 지낸 최운열 의원이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규제 일변도로 나간다면 금융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감성적 대응을 경계한 적이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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